정복규의 한국 성씨를 찾아서- 97 경주손씨(慶州孫氏)
정복규의 한국 성씨를 찾아서- 97 경주손씨(慶州孫氏)
  • 정복규
  • 승인 2013.08.06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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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손순은 신라 개국 당시 6부촌장의 한사람

손사성·손중돈·손제석·손홍익·손우익·손용민등

시조 손 순(孫順)은 신라 개국 당시 6부촌장의 한 사람인 대수촌장 구례마의 후손이다. 손사성은 조선 세종 때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하고 계성군(鷄城君)에 봉해졌다. 그의 아들 손 욱과 손 소(孫昭) 형제가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가문의 기틀을 다지기 시작했다.
손 소는 조선 초기 사헌부 감찰을 지냈다. 그는 세조 5년 김종직과 함께 문과에 급제했으며 주부와 병부좌랑 등을 역임했다. 그 뒤 성주목사와 공조참의를 거쳐 계천군(鷄川君)에 봉해졌다. 안동부사와 진주목사도 역임했으며 특히 문장과 글씨로 명망이 높았다.
손 소의 둘째 아들로 탁월한 문장력과 경륜에 밝았던 손중돈은 김종직의 문인이다. 그는 성종 때 문과에 급제, 양산군수 등을 지냈다. 그 뒤 사복시정 (司僕寺正)에 올라 연산군의 폭정으로 간관(諫官)들이 거의 다 쫓겨날 때 파직당했다. 중종반정 후에 복직, 상주목사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주민들이 생사당(生祠堂)을 지어 그의 공덕을 추모했다. 공조판서, 이조판서를 지내고 도승지를 3번, 대사간을 4번, 경상, 전라, 충청, 함경도 관찰사를 지내고 우참찬에 이르렀다. 1517년(중종 12) 성절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현대 인물은 손정규(한성여자사범학교교장), 손제석(문교부장관), 손열호 동양석판회장, 우석문화재단이사장), 손정수(흥창물산사장), 손진곤(판사), 손석기(대구매일신문논설위원), 손경호(경주상공회의소회장), 손동만(경북도교육위원), 손진원(대유산업 회장), 손도익(경동탄광회장), 손가호(대구방송국차장), 손현수(대현실업 회장), 손장익(안동대교수), 손복조(구일산업 회장), 손술곤(동민산업 회장), 손선익(왕표회장), 손진창(명성사장), 손삼곤(경북농촌진흥원장), 손영을(전매청장), 손태준(경북대의대학장), 손만호(대구상고교장), 손장락(의학박사, 손의원장), 손정목(법학박사, 서울시립대대학원장), 손승원(손정형외과의원장), 손희원(육군준장), 손진수(해군준장), 손봉호(철학박사, 서울대교수), 손일수(신영치과의원장), 손성수(부산지검집행과장), 손특익(대원외국어여고교장), 손홍익(부산지법부장판사), 손우익(시인), 손동하(울산중고재단이사장), 손인호(경남대교수), 손정호(한국법령편찬회장), 손종락(경북대교수), 손정익(칠성제화.칠성목재 사장), 손영규(안동대교수), 손경옥(경진직물 사장), 손우익(경북대교수), 손병태(한의원장), 손정락(전북대교수), 손홍락(삼덕물산 부사장), 손문호(청주사대교수), 손수달(광명전기 사장), 손진익(한국산노프코 사장), 손동진(화가, 서울대교수), 손승철(강원대교수), 손관익(덕일보육원장), 손석호(중앙선관위기획관리실장), 손순천(의학박사, 병원장), 손승익(상주사벌고교장), 손중호(삼창물산 사장), 손중호(조흥은행지점장), 손윤목(국회보사전문위원), 손익곤(풍창산업 사장), 손창호(세무서장), 손진인(재일실업가), 손종수(예천군수), 손홍균(서울신탁은행전무), 손기락(금성사부사장), 손용민(문학박사) 씨 등이다. (무순, 전·현직 구분 안 됨)
집성촌은 경북 경주시 강동면 인동리, 경북 경주시 강동면 단구리, 경북 경주시 안강읍 육통리, 경북 예천군 용문면 일원, 경북 군위군 효령면 내리리, 경북 군위군 소보면 송원리, 경북 상주시 공성면 거창리, 경북 문경시 동로면 마광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61명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78,450명이다. 서울 11,289명, 부산 8,502명, 대구 10,625명, 인천 2,249명, 광주 165명, 대전 884명, 울산 5,220명, 경기 10,090명, 강원 3,116명, 충북 2,007명, 충남 1,022명, 전북 348명, 전남 532명, 경북 19,032명, 경남 3,255명, 제주 114명이다. 대구, 경북 지역에 가장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