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느낌”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느낌”
  • 박재연 기자
  • 승인 2013.07.23 1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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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준호 감독, ‘설국열차’ 개봉 앞두고 언론시사회서

봉준호(44) 감독이 할리우드 데뷔작 ‘설국열차’ 세계 개봉을 앞두고 “커다란 암 덩어리가 떨어져 나간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봉 감독은 22일 서울 왕십리CGV에서 “이 영화를 구상한지 7년, 작업한지 3년 만에 기차가 내 손을 떠나서 출발하게 됐다. 감회가 새롭다. 이 기차에 관객들이 많이 타서 폭주를 하면 어떨까 싶다”며 웃었다.
“사실 그 동안 이 영화에 ‘대작’ ‘글로벌’ 등 많은 수식어가 붙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일 뿐이다. 모든 수식어를 걷어내고 관객을 만날 때다. 흥분되고 두렵고 설레기도 한다. 내 손을 떠났다는 생각이 드니 속이 시원하기도 하다.”
‘설국열차’는 기상 이변으로 모든 것이 꽁꽁 얼어붙은 지구에 살아남은 사람들을 태운 기차 한 대가 끝없이 달리면서 시작된다. 춥고 배고픈 사람들이 바글대는 빈민굴 같은 맨 뒤쪽 꼬리 칸, 선택된 사람들이 술과 마약을 즐기며 호화로운 객실을 뒹굴고 있는 앞쪽 칸으로 나뉘며 계급생활을 이어간다. 열차가 달리기 시작한 이후 17년, 꼬리 칸의 젊은 지도자 ‘커티스’(크리스 에번스)가 긴 세월 준비해 온 폭동을 일으켜 앞 칸으로 돌진해 나가는 이야기다.
봉 감독은 2004년 겨울 처음으로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읽고 영화화를 결심했다. 이후 2006년 원작 판권 계약을 마친 후 2010년부터 본격적인 시나리오 작업에 착수했다.
봉 감독은 “글로벌한 대작을 찍고 싶었던 것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프랑스 만화 ‘설국열차’를 영화로 만드는데 한국 사람들만 있으면 어색할 것 같아서 다양한 나라, 다양한 사람들을 캐스팅했다. ‘살인의 추억’ ‘마더’ ‘괴물’ 등은 한국의 상황과 시대, 장소에 기반을 뒀는데 이번에는 그런 게 없었다. 좌표가 없이 영화를 만들려니 허전함도 있었지만 드라마의 주요 줄거리인 가난한 자와 부자, 힘 있는 자와 없는 자는 인류 보편적 주제기 때문에 어떻게 보면 한국적 이야기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괴물’에 출연한 송강호(46) 고아성(21)을 포함해 크리스 에번스(32) 틸타 스윈턴(53) 제이미 벨(27) 에드 해리스(63) 존 허트(73) 등 할리우드 배우들과 호흡을 맞췄다.
봉 감독은 “우리나라나 외국이나 캐스팅 과정은 비슷하다. 스케줄이 되는 배우에게 시나리오를 보내면서 작품을 설명하는 것은 한국과 똑같다. 존 허트와 틸타 스윈턴이 내 전작인 ‘괴물’과 ‘마더’를 좋아해서 캐스팅이 수월했다. 두 분이 캐스팅되고 나니 그 분들이 가지고 있는 신뢰도가 있어서 순조롭게 일이 풀렸다. 단지 ‘윌포드’의 에드 해리스는 짧고 굵은 역할이라 우여곡절이 있었다. 제일 늦게 캐스팅됐다”고 전했다.
“틸타 스윈턴은 한국배우 같았다. 앙상블을 중시하고 조화를 이루는 걸 좋아한다. 그래서 쉴 때도 다른 배우들의 연기를 보러 오기도 했다”고 말했다. 반면, 크리스 에번스 같은 경우에는 “자기 신에 대해서는 욕심이 있고 맹렬하게 에너지를 쏟아낸다. 그러다보니 자기 촬영이 아닐 때는 휴식을 취하며 에너지를 충전한다”고 알렸다.
봉 감독은 열차 안에서 생존을 향해 돌진하는 액션을 구현했다. “액션이라고 해서 중국 무술처럼 와이어를 타고 우아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또 ‘스타워즈’처럼 레이저 총을 쏘는 듯한 액션도 아니다. 인간의 캐릭터에 감성이 담겨있는 액션이다. 만원 지하철에서 싸우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좁고 부대끼는 공간에서 몸과 몸이 부딪히는 느낌을 만들고자 했다. 각 캐릭터의 감성이 묻어나기를 바랐다.”
‘설국열차’는 개봉 전 10분짜리 하이라이트 영상만으로도 북미·프랑스·영국·일본·동유럽·호주·남미·스칸디나비아 반도 등 167개국 수출을 성사시켰다. “이 영화가 국내 역사상 대작이지만 미국에서는 중저예산 영화다. 대부분 할리우드 영화는 여름 시즌 영화들이 2000억원이 넘는다. 반면 우리 영화는 ‘2개월 4주’를 찍었다. ‘마더’ 찍는 것보다 더 허리띠를 졸라맸다. 준비를 많이 한 후 그 안에서 찍으려고 했다. 촬영 기간이 3개월이 안 된다는 점이 자랑스럽다.”
송강호는 이번 영화로 할리우드에 처음 얼굴을 내민다. “외국배우든 한국배우든 다 똑같다. 보고 느끼고 어떤 게 좋고 안 좋은 것을 공유할 수 있다. 또 영화에서 영어가 아니라 한국말을 쓸 수 있어서 편했다. 단지 외국 배우들과 공감할 수 있는 호흡이나 리액션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 않아서 아쉬웠다. 할리우드 배우들과의 호흡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고 밝혔다.
고아성은 ‘괴물’에 이어 ‘설국열차’에도 몸을 실었다. “‘설국열차’ 캐스팅 제안을 받고 나서 가장 노력을 기울인 것은 들뜨지 않는 거였다. 오랜만에 송강호 선배님과 봉준호 감독님을 만났다. ‘괴물’을 찍은 건 인생에 다시없을 행운이었지만 처음으로 만난 것은 불행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번 영화로 다시 기회가 찾아왔다. 나 스스로 들뜨면 봉 감독님이 나를 선택한 게 무의미할 것 같아 마음가짐을 특별히 했다”고 회상했다.
‘설국열차’는 8월1일 국내 개봉한다. 미국 개봉일은 미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