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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년은 천세기를 기약하도다(歷年可卜千紀)
역년은 천세기를 기약하도다(歷年可卜千紀)
  • 황미숙
  • 승인 2013.07.22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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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조선개국의 주역, 정도전(鄭道傳)

정도전[鄭道傳, 1342(충혜왕 복위3)∼1398(태조7)]의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이다. 봉화호장 공미(公美)의 고손자로, 아버지는 형부상서 운경(云敬)이다. 선향(先鄕)은 경상북도 영주이며, 출생지는 충청도 단양 삼봉(三峰)이다. 장성해 목은 이색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했다. 당시 동문으로 정몽주, 윤소종, 박의중, 이숭인 등이 있었다. 1362년(공민왕 11) 진사시에 합격해 벼슬길에 올랐다.
그는 문인이면서 동시에 무(武)를 겸비했고, 성격이 호방해 혁명가적 소질을 지녔으며, 천자(天資)가 총민해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고 군서(群書)를 박람해 의론(議論)이 정연했다 한다. 이성계가 왕이 돼 정도전을 평가하길 “경의 학문과 역사는 아주 깊고 지식은 고금의 변천을 꿰뚫고 있으며, 공정한 의견은 모두 성인들의 말에서 출발하고 명확한 평가는 언제나 충실한 것과 간사한 것을 갈라놓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태조실록>에 실린 ‘정도전 졸기’에 따르면, 그는 “유방(劉邦)이 장량(張良)을 쓴 게 아니라 장량이 유방을 쓴 것”이라고 말했다. 즉 “이성계가 정도전을 쓴 게 아니라 정도전이 이성계를 쓴 것”이라는 뜻이었다. 이성계가 자신의 머리를 빌린 게 아니라 자신이 이성계의 군사력을 빌렸다는 것이다. 그의 개혁운동이나 그에 수반된 왕조건국 사업은 단순한 정치적 실천운동으로서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하고 제도로서 정착시켜 사상·제도상으로 조선의 기초를 놓았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가 발견된다.
그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정치제도는 재상을 최고실권자로 해 권력과 직분이 분화된 합리적인 관료지배체제이며, 그 통치권이 백성을 위해 기능할 수 있어야 한다는 민본사상을 강조했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에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 교체될 수 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긍정했고, 실제로 혁명 이론에 입각해 왕조 교체를 수행했다. 사·농·공·상의 직업분화를 긍정하고, 사를 지배층으로 생각했다. 그러나 사의 직업은 도덕가·철학자·기술학자·교육자·무인 등의 역할을 겸비해야 하고 사에서 능력위주로 관리가 충원돼야 한다고 믿었다. 또한, 적서(嫡庶)나 양천(良賤)과 같이 혈통에 의한 신분차별을 주장하지 않은 것이 주목된다.
한편, 여말에 나라가 가난하고 민생이 피폐했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농업생산력의 증대와 토지균분에 비상한 관심을 가지고, 해결책으로서 민구수(民口數)에 따른 토지재분배와 공전제(公田制) 및 10분의 1세의 확립, 공(工)·상(商)·염(鹽)·광(鑛)·산장(山場)·수량(水梁)의 국가 경영을 실현시키고자 했다. 따라서 경세론은 자작농의 광범한 창출과 산업의 공영을 통해 부국강병을 달성하고, 능력에 토대를 둔 사 위주의 관료정치를 구현하려는 것으로 요약할 수 있다. 그의 개혁안은 상당 부분이 법제로서 제도화됐지만 모두 실현되지는 못했다.

정도전은 우선 새 왕조의 기틀을 마련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외교에 있어서도 건국에 따른 사은사(謝恩使)로 직접 명나라에 다녀왔을 뿐만 아니라 여진족과의 관계를 의심하는 명나라 조정에 해명하는 표문(表文)을 작성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또한 국가의 제도와 운영의 근본이 되는 『조선경국전(朝鮮經國典)』을 지었는데 이것은 이후 조선의 기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의 바탕이 됐다. 그뿐 아니라 무학대사와 함께 새 도읍지를 한양으로 정하고 실제로 궁궐을 설계한 후, 그 아름다움을 찬양한 ‘신도팔경시(新都八景詩)’까지 지어 바쳤다. 정도전의 문집인 『삼봉집』에는 ‘기전산하(畿甸山河:기전의 산하)’, ‘도성궁원(都城宮苑:도성의 궁원)’, ‘열서성공(列署星拱:여러 관청이 늘어서 있음)’, ‘제방기포(諸坊碁布:여러 동리가 배열된 모습)’, ‘동문교장(東門敎場):동문에서 군사를 훈련하는 교장’, ‘서강조박(西江漕泊:서강에 배를 정박함)’, ‘남도행인(南渡行人:남쪽에서 물을 건너오는 행인들)’, ‘북교목마(北郊牧馬:북쪽 교외에서 말을 기름)’ 등 8가지 주제로 한양의 모습을 예찬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기전산하(畿甸山河)’에서 “기름지고 비옥하도다 천 리의 기전(沃饒畿甸千里), 안팎의 산과 물은 백이(百二)로구나(表裏山河百二). 덕교에다 형세마저 아울렀으니(德敎得兼形勢), 역년은 천세기를 기약하도다(歷年可卜千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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