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고엽제 피해 배상 39명만 인정"
대법 "고엽제 피해 배상 39명만 인정"
  • 윤다혜 기자
  • 승인 2013.07.13 0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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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고엽제전우회 회원들이 12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에서 열린 고엽제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 판결이 나오자 무거운 발걸음으로 법원을 빠져나가고 있다.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고엽제 후유증을 앓고 있는 국내 피해자 일부에게 고엽제를 제조한 미국 회사가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첫 판단이 내려졌다.

이는 고엽제 제조사의 책임을 인정한 세계 첫 사례다.

또 이날 판결은 대법원에 상고된 2006년 이후 8년 동안의 기나긴 심리 끝에 내려졌다. 한국 법원에 처음으로 소가 제기된 1999년부터 치면 15년만이다.

대법원 3부(주심 이인복 대법관)는 12일 김모(70)씨 등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인 1만6579명이 고엽제 제조사인 미국 다우케미칼과 몬산토사(社)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참전군인 중 염소성여드름 질병을 얻고 손해배상청구권 시효가 끝나지 않은 피해자 39명에 대한 제조사의 배상 책임을 인정했다. 

배상액은 한 사람당 600만~1400만원으로 전체 규모는 4억6599만원이다.

다만 항소심에서 승소한 나머지 5188명에 대해선 원고 패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파기환송했다.

이번 사건의 쟁점은 △한국 법원의 재판관할권 △고엽제 제조물 결함 여부 △참전군인 질병과 고엽제 노출간 인과관계 유무 △소멸시효 완성 여부 등이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한국 군인이고 실제 피해가 발생한 장소도 한국"이라며 "한국 법원은 그 피해 배상 여부에 대해 재판할 정당한 이익을 갖고 있다"고 판시, 한국의 국제재판관할권을 인정했다. 

또 제조물 책임에 대해 "미국 제조사는 고엽제에 포함된 다이옥신 성분이 인체에 미칠 유해성을 충분히 조사·연구하지 않았고 고도의 위험방지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설계상 결함이 있다"고 판단했다.

고엽제 노출과 질병간 인과관계에 대해선 특이성 질환인 염소성여드름만 인정했다.

재판부는 "염소성여드름은 고엽제에 함유된 다이옥신 성분에 노출될 경우 발병하는 특이성 질환으로 다른 원인에 의해선 발병하지 않는다"며 "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반면 원고들이 후유증으로 함께 주장한 당뇨병과 폐암, 후두암, 기관암, 전립선암, 비호지킨임파선암, 연조직육종암, 만발성피부포르피린증, 호지킨병, 다발성골수종 등에 대해선 "이 질병들은 후천적 요인으로 복합적으로 작용해 발생하는 비특이성 질환으로 고엽제 노출로 발병한 것이라고 단정할 수 없다"며 인과관계를 인정하지 않았다.

고엽제후유의증환지원등에관한법률상 말초신경병과 버거병, 참전군인 2세들의 말초신경병 역시 "고엽제 노출로 인해 발병했다는 증거가 부족하다"며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울러 소멸시효와 관련해 "염소성여드름 발병 참전군인들이 고엽제후유증환자로 판정받아 등록을 마치기 전까지는 자신의 질병이 고엽제 노출로 발병한 것이라고 알지 못한다"며 "등록일부터 손해배상청구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판시했다.

다만 고엽제후유증환자 등록일부터 3년이 지나 가압류를 하거나 소를 제기한 경우는 손해배상청구권 시효가 소멸했다고 전제했다.

대법원 관계자는 "이번 판결은 고엽제 노출로 염소성여드름 질병을 얻은 피해자 중 시효가 소멸되지 않은 경우 미국 제조사 책임을 인정한 것"이라며 "고엽제 제조사의 책임이 인정된 것은 세계적으로 첫 사례"라고 의의를 설명했다. 

이어 "대법원은 이번 판결로 고엽제의 제조물로서의 결함, 인과관계가 인정되는 손해의 범위, 소멸시효 완성 여부 등에 대한 판단 기준을 제시했다"며 "고엽제 소송의 오랜 법적 공방이 일단락됐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고엽제전우회 김성욱 사무총장은 선고 직후 취재진에게 "염소성여드름을 제외한 나머지 부분을 패소 취지로 파기환송한 것에 대해 착잡하고 참단한 심정"이라며 "대법원이 우리 주권을 포기했다는 기분까지 든다"고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면서 향후 미국 법원 소송 등과 관련해 "판결문 내용을 심층적으로 분석해 대응책을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씨 등은 다우케미칼 등이 생산한 고엽제가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 청룡·맹호·백마부대 작전 지역인 광나이·퀴논 등지에 뿌려져 이후 후유증에 시달리는 등 피해를 봤다며 1999년 9월 사법사상 최대 액수인 5조원대의 소송을 냈다. 

1965년 10월~1973년 3월 베트남전에 참전한 한국 군인은 32만여명으로, 이 중 1만6579명은 "고엽제 다이옥신 성분(TCDD)에 노출돼 당뇨병과 암, 염소성여드름 등 각종 질병이 생겼다"며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1심은 "참전 군인들의 질병이 고엽제 때문에 발병했다는 직접적 인과관계가 입증되지 않았고 손해배상 소멸시효 10년도 지났다"며 원고 패소 판결했다. 

그러나 2심은 국내 법원의 재판관할권과 제조물 책임법에 따른 미국 회사의 책임, 질병과 고엽제간 역학적 인과관계를 모두 인정하고 "고엽제가 질병을 일으킨다는 점이 확실하게 인정되지 않았다"며 소멸시효 역시 완성되지 않은 것으로 판단, 2006년 세계 처음으로 미국 회사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재판부는 참전 군인에게 각 600만~4600만원씩 모두 630억76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고, 참전군인 2세들에 대해선 인과관계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소를 기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