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세훈, 대선·총선·지방선거때도 개입
원세훈, 대선·총선·지방선거때도 개입
  • 윤다혜 기자
  • 승인 2013.06.14 18: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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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정보원(국정원)은 지난 대선 당시 야당 후보를 '문죄인', '종북좌파' 등으로 비유하며 노골적으로 정치와 선거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났다.

여기에는 종북좌파 세력을 공격대상으로 삼고 이들 세력의 제도권 진입 차단을 지시했던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지침이 절대적인 영향을 끼쳤다.

특히 원 전 원장은 내부 회의에서 "종북좌파들은 북한과 연계해 다시 정권을 잡으려 하는데 확실히 대응안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 "종북좌파 세력이 국회에 다수 진출한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고 우리 사회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해야한다" 등의 지침으로 정치·선거 개입을 지시했다.

◇광우병 촛불시위가 '한 몫'

검찰은 원 전 국정원장이 정치·선거에 개입한 배경에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가 종북좌파 세력의 조직적인 선전·선동에 기인한 것이라는 피해 의식이 자리잡은 것으로 판단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대국민사과를 하고 국정 운영에도 막대한 차질을 빚었던 촛불시위를 계기로 원 전 원장은 종북세력뿐 아니라 야당, 시민단체, 노조 등도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폭넓은 의미의 종북좌파 세력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원 전 원장 개인의 이 같은 정치적으로 편향된 성향과 그릇된 인식은 국정원 심리전단의 '댓글 공작'으로 귀결됐다.

이를 위해 국정원은 심리전단에 총 70여명 규모의 사이버팀 4개를 뒀다. 심리전단 요원들은 주요 이슈나 논지를 하달받고 각자 담당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아이디(ID)를 번갈아 사용하거나 추천·반대 클릭 등을 통의 방식으로 사이버상에서 조직적으로 임무아닌 임무를 수행했다.

◇정치·선거 관련 글 1930건… '대선' 비중은 전체의 1.4%

이런 식으로 국정원 심리전단은 '오늘의 유머', '네이버' 등 사이트 1770개, '다음 아고라' 3409개 등 인터넷 상에서 총 5179개의 글을 올렸다.

이 가운데 2010년 지방선거(72개), 2011년 무상급식주민투표(49개), 총선(32개), 대선(73개) 등 선거 관련 글은 모두 226개였다.

다음 아고라의 경우 지난해 7월 이후 국정원 직원들이 회원 탈퇴와 함께 모든 글을 삭제한 점을 감안하면 실제 댓글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검찰은 추정했다.

심리전단은 또 선거관련 글 외에도 정치 1704개, 사회 1227개, 국가홍보 129개, 북한·종북 1196개, 신변잡기 697개 등 다양한 성격의 글을 올렸다.

결과적으로는 정치(1704개, 32.9%) 및 선거(226개, 1.4%) 관련 글을 1930회에 걸쳐 올린 셈이다. 이는 전체 게시글의 34.3%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대선 관련 게시글 중에는 민주당이나 문재인 전 대선 후보를 비방하는 내용의 글은 37개로 정치적 성향의 댓글 중 가장 많았다. 대북정책 19개,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 9개, 금강산 관광 8개, 대선 공약(해군기지, 복지) 2개 순이었다.

통합진보당과 이정희 전 대선 후보를 비판하는 글은 총 32개였다. 북한 미사일 발사 옹호 15개, '남쪽정부' 발언 등 대선 후보 TV토론회 10개, 단순 비방 4건 순이다. 안철수 의원(전 대선 후보)을 비난하는 글은 4건으로 집계됐다.

시기별로는 지난해 9월과 10월에는 각각 3건, 9건에 불과했지만 본격적인 대선 정국에 진입한 11월 들어 24건으로 증가한 뒤 선거철인 12월에는 35개로 늘었다.

특히 안 의원이 대선 출마를 했던 지난해 9월19일 심리전단은 반대 게시글 2개를 올렸고, 새누리당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NLL포기 발언을 문제삼은 10월15일 이후부터 11월26일까지 NLL 관련 글도 16건 올렸다.

12월4일 1차 대선후보 TV토론회가 열린 당일부터 7일까지 이정희 후보의 남쪽 정부 발언 등을 비판하는 내용도 22건이었다. 12월11일 국정원 여직원 감금사건이 발생하자 다음날부터 이틀 동안 민주당을 비판하는 글 6개를 게시했다.

대통령 선거일이 다가올 수록 게시글이 급증하고 대선관련 이슈의 쟁점화 시기마다 민주당, 통진당을 반대하거나 비방하는 취지의 글을 게재한 성향이 뚜렷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또 대선뿐만 아니라 2010년 6월 지방선거 당시에도 한명숙 민주당 서울시장 후보에 관해 뇌물수수 사건이나 천안함, 4대강 사업 등 주요 쟁점에 대해 야당을 비판하는 글 35건을 올린 사실도 적발됐다.

◇'좌빨(문재인)', '종북좌파(이정희)' 노골적으로 비방

국정원은 민주당과 문 후보를 겨냥해 '햇볕정책 실패한 건 분명한 사실', '일베 사찰하다 걸린 민주당의 70명 SNS대응팀을 앞으로 문죄인과 70명의 알(리)바(바)로 명명해 부르면 어떨까', 'NLL로 수세에 몰리자 실패로 끝난 햇볕정책 계승하자고 선동질', '좌빨들이 외쳐대는10년 동안의 대북 퍼주기로 과연 남은게 뭔가' 등으로 비판했다.

이정희 후보에 대해선 '통합진보당이 북한 노동당의 2중대라는 비판을 자초하고 있다', '대통령 되겠다는 사람조차 TV에 나와 대한민국을 남쪽정부라고 불러요. 국보법 폐지했다가 무슨 사단이 날지 알 수가 없죠', '어떻게 종북좌파가 버젓이 대한민국을 대표하겠다고 나댈 수 있지?' 등의 글을 올렸다.

안 후보와 관련해선 '어차피 정치는 계속한다했고 박원순때처럼 또 흡수당하면 스탠스가 애매해지니까 박근혜 이기든 말든 완주하고 여의도 귀퉁이 차지하겠다는 속셈아니노?'라는 글 등을 남겼다.

◇'찬반 클릭'으로 여론 조작

심리전단은 인터넷 게시글에 찬반 의사를 나타내며 여론을 조작하려한 사실도 드러났다.

예를 들면 새누리당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에는 '반대'를, 민주당을 비방하는 내용의 글에는 '찬성'을 표시하는 식이었다.

이런 식으로 총 5174회의 '찬반' 의사를 나타냈다. 현황별로는 서울시장선거 1회, 총선 32회, 대선 1281회, 정치 435회, 사회 321회, 북한종북 143회, 신변잡기 2961회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대선이 차지하는 비율은 전체의 24.7%이며, 신변잡기를 제외한 2214회를 기준으로 하면 대선 관련된 찬반 클릭은 전체의 57.9%, 정치관련 찬반 클릭은 19.6%로 전체의 70% 이상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으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18대 대선관련 찬반 클릭 현황을 보면 특정 정당이나 후보자를 의식한 경향이 뚜렷하다.

새누리당(박근혜 후보 포함) 지지글에는 찬성 54회인 반면, 민주당(문재인 후보 포함) 지지글에는 205회의 반대의사를 나타냈다.

또 통진당(이정희 후보 포함)과 안철수 후보에 대한 지지글에는 각각 7회, 58회에 걸쳐 반대했다.

검찰은 북한·종북좌파 관련 게시글에 대한 추천·반대는 전체 통계상 2.7%에 불과하고, 대선이 임박한 기간(8월1일~12월18일)에 주로 선거 관련 게시글에 대한 추천·반대를 한 사실을 확인했다.

심리전단 직원들도 조직적인 추천·반대 클릭 사실을 인정했고 특정 후보에 대한 지지·반대 패턴이 동일해 특정후보의 낙선을 목적으로 한 것이지 종북 대처 활동의 일환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는 게 검찰의 설명이다.

검찰 관계자는 "원 전 원장의 지시에 따라 심리전단이 인터넷 공간에서 북한 및 종북세력에 대한 대처 명목으로 특정 정당 및 정치인에 대해 지지, 반대 의견을 유포하거나 선거운동에 해당하는 활동을 했다"며 "심리전단이 사이버 활동을 조직적으로 수행하고 활동 결과를 최종적으로 원장에게 보고했다"고 말했다.

이밖에 검찰은 SNS상에서 국정원 차원의 조직적인 정치 또는 선거 개입이 이뤄진 정황을 포착하고 보강 수사를 진행 중이다.

검찰은 국정원 직원들이 트위터를 통해 320여개의 글을 올린 것으로 의심하지만 서버가 해외에 있어 국제사법공조를 요청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