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의 칼럼] 철밥통 시대는 가고있다
[오세열의 칼럼] 철밥통 시대는 가고있다
  • 신아일보
  • 승인 2008.03.31 1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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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세 열 주필
“교수가 변하지 않으면 대학이 변할 수 없고 대학교육의 질은 교수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

세계 경제포럼이 세계 65개국에서 선정한 40세 이하의 ‘2008년 차세대 글로벌 리더’ 245명에 올해 28세인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미국이름 사라 장)가 선정됐다.
1988년 8세의 소녀 때에 주빈 메타 리카르도 무티 등 지휘의 전설적인 거장들로부터 재능을 평가받은 이후 오늘의 명성을 얻기 까지 20년, 그가 바이올린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후 제대로 쉰 적은 단 한번 밖에 없었다.
20세 때 4년 앞서 미리 잡아둔 일정에 따라 3개월 쉬었는데 그마저 1주일 동안 잠만 잔 뒤 나머지 기간에는 혼자서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10곡 전체를 다 익히는 공부에 매 달렸다.
이어 그는 ‘차이코프스키 콩쿠르·킨 엘리자베스 콩쿠르 등 세계적인 콩쿠르에서 입상만 하면 커리어가 보장되는 시대는 이제 지나갔다고 덧붙였다.
음악계만 그런 것이 아니다.
모든 분야가 다 마찬가지다. 무한 경쟁의 세계화 시대에 글로벌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잔인할 만큼 치열한 경쟁 그것도 우수한 사람들끼리의 경쟁을 거쳐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자질·자격·역량 등을 공인받았을지라도 끊임없는 쇄신과 향상을 보이지 않으면 그 공인된 지위를 계속 유지할 수는 없기 마련이다.
글로벌 리더가 되는 일이 아니라도 그렇다. 각 개인은 물론 해당분야,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일정 수준으로 키우거나 유지하는 일만 해도 무경쟁의 안일·기득권·보신주의등으로는 어림도 없는 시대다.
국가 원수에서부터 말단 회사원에 이르기까지 일하는 분야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그렇다. 허명(虛名)에 기대거나 구태의 반복은 쇄신으로 강변하거나 실질과 달라 무늬만 치장 하는 행태는 더 이상 통하기 어려워져가는 것이 세계의 추세다.
그런 행태에 여전히 젖어있는게 개인이나 사회 국가의 낙오는 불가피하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최근 ‘철 밥통 깨기’바람이 울산 시에서 서울시 등 일부 지방 자치단체와 중앙 부처를 비롯한 한국사회 여러분야로 확산 되고 있다.
공무원사회도 철 밥통을 깨고 경쟁체제를 활성화하지 않으면 국가발전을 뒷받침 하기는 커녕 그 발목을 잡는 암적 존재로 낙인 찍혀 존립의 근거조차 흔들릴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학교수 사회의 철밥통 깨기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 대학은 상아탑이라는 이름에 안주해 경쟁이나 실적과는 거리가 먼 기관이다.
하지만 글로벌 환경이 급변하면서 대학도 점차 학생을 확보하고 외부투자를 유치해야 하는 상향에 놓이면서 경쟁이 불가피하게 된 것이다. 가장 큰 변화는 대학들이 ‘평가순위’라는 성적표를 받아들게 됐다는 점이다.
국제화 바람 속에 영국 ‘더 타임스’등 유수기관들이 발표하는 세계대학 평가 순위에서 국내 상위권 대학들이 바닥을 맴돈다는 비판이 이어지면서 등수 경쟁을 의식하게 됐다.
우리나라 대학들은 세계대학 순위에서 구미 선진국은 말할 것도 없고 중국 홍콩 일본 싱카포르 등 아시아 국가들에 비해서도 뒤처져있다. 국가 경쟁력 평가에서도 교육 부문의 경쟁력 은 하위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국가 발전을 선도하기는 커녕 오히려 부담을 주고 있을 정도다.
세계적으로 정평이나 있는 한국인들의 높은 교육열에도 불구하고 대학이 이런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한번 임용되면 평생 자리를 보장하는 철밥통 문화가 교수사회의 무사안일을 조장하고 대학이 경쟁력 향상은 막는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음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교수의 본분인 연구와 강의에 매진해도 외국 대학과의 간격은 메우기 어려운데 정치판을 기웃거리며 공직에 양다리를 걸치려는 행태마저 만연해있으니 더욱 한심하다.
교육부가 지난 8년간 BK21 사업에 1조5000억원을 투입 했지만 대학의 경쟁력은 오히려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BK21 사업은 세계 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을 통한 고급 인력의 양성 및 교육 연구력을 제고하기 위해 1999- 2012년까지 총 2조1000억원을 대학에 지원하는 국책 사업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의 평가보고서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대학 경쟁력은 60개국 중 52위로 최하위권이다. 투자한 비용에 비해 성과가 매우 떨어지는 비효율적인 사업이 되었다.
교수평가제는 교수사회의 경쟁력을 높이는데 있다. 그러나 대부분 대학이 학술지 논문 게재 건수 등 연구 실적에만 치중해있다.
특히 논문 건수몰두·좋은 논문은 한편 쓰는 것 보다 수준이 떨어지더라도 여려 편의 논문을 쓰는 쪽이 더 높은 점수를 받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제는 건수 중심의 평가에서 연구와 수업의 질까지 평가하는 방식으로 바꿔야한다.
대학 경쟁력 핵심은 교수다. 노력하지 않는 교수는 대학에서 떠나야한다. 교수 사회의 철밥통 관행을 깨야하는 이유다. 이런 점에서 KAIST를 진원지로 하는 교수 개혁 바람은 고무적이다.
아무리 우수한 학생을 뽑더라도 지금의 대학 환경에서는 경쟁력을 가질 수 없다.
인맥과 연줄로 얽히고 설킨 대학 구조를 바꾸고 더 과감하고 단호한 교수임용제도로 교수 한사람이 경쟁력을 갖춰야 대학의 경쟁력을 위한 첫 단추가 된다.
교수가 변하지 않으면 대학이 변할 수 없고 대학교육의 질은 교수의 질을 능가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