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이 좋더라도 끝까지 지속하는 사람은 드물다
처음이 좋더라도 끝까지 지속하는 사람은 드물다
  • 황미숙
  • 승인 2013.05.27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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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7. 고려 제25대 충렬왕(忠烈王)

충열왕(忠烈王, 1236∼1308)은 고려 제25대왕으로 재위 1274∼1298.1과 1298.8 복위~1308.7.로 총 33년 6개월 이다. 이름은 거(?), 초명은 심(諶)·춘(?)이다. 원나라 세조의 부마가 된 충렬왕이 즉위하면서 고려는 급속도록 원나라의 속국으로 전락한다. 하지만 철저히 친원정책을 한 덕분으로 고려 왕실은 오히려 무신정권에서 잃었던 힘을 회복하게 됐다.
1259년 고종이 죽자 충렬왕은 귀국해 고려 제 25대 왕에 올랐다. 이 때 그의 나이 39세였다. 충렬왕은 왕위에 오르기 위해 귀국할 때 이미 몽골 풍속에 따라 머리를 변발하고 복장도 호복을 하고 있었다. 또한 원나라 세조의 딸 제국대장공주를 맞이할 때 모두 변발을 강권했으며, 변발을 하지 않은 자는 회초리로 쳐서 환영식장에서 쫓아내기까지 했다.
1274년 5월 제국대장공주와 혼인했고, 원종이 죽자 원나라에서 돌아와 왕위에 올랐다. 대륙국가와의 왕실혼인은 이번이 처음으로 이로써 고려는 역사의 한 전환기를 맞게 돼, 양국의 우호관계를 공고히 할 수 있었고 역대 권신들의 발호에 억눌려오던 왕실의 지위도 회복, 강화할 수 있었으나 자주성을 잃은 종속국으로 전락해 이후 원나라의 많은 간섭을 받게 됐다. 결혼한 제국대장공주가 고려에 와서 몽골양식의 생활을 하고 사사로이 부리는 사람도 원나라에서 데려옴으로써 고려왕실에는 몽골의 풍속·언어 등이 퍼지게 됐다. 이때에 일연은 민족성을 고취시키고 자주성 회복을 위해 1281년에 《삼국유사》를 저술하고 고려 민족의 역사적 전통을 일깨우고자 했다.
원나라의 간섭은 행정에도 미쳐 관제(官制)의 격이 같다고 고치기를 강요했다. 그리고 조(祖)·종(宗) 대신에 왕(王)을 칭하고 충성을 뜻하는 ‘忠’자를 붙이게 됐으며, 선지(宣旨)도 왕지(王旨)로, 짐(朕)은 고(孤)로, 사(赦)는 유(宥)로, 폐하(陛下)는 전하(殿下)로, 태자(太子)는 세자(世子)로 했다. 그동안 고려를 통해 일본의 조공을 요구하던 원나라는 자신들의 요구사항이 관철되지 않자 무력으로 일본을 정벌하고자 고려군을 동원했다. 즉위년 10월 일본정벌이 원세조의 강요로 실행돼 1차로 여원연합군이 합포(合浦)에서 출정, 대마도(對馬島)는 김방경(金方慶)이 이끄는 고려군의 힘으로 무찔렀으나 뜻하지 않은 폭풍을 만나 본토정벌은 실패했다. 1281년에 감행된 2차정벌도 폭풍을 만나 실패로 끝났다. 원나라는 이후에도 두 번 더 정동행성을 설치하고 정벌준비를 강요해 피해가 극심했다.
이후 충렬왕은 몽골에서 배운 사냥에 점점 빠져 정사를 뒤전으로 미루고 국고를 탕진했으며, 그의 총애를 믿고 안하무인으로 행동하던 궁인 무비의 횡포가 나날이 심해졌다. 이 때문에 제국대장공주와 세자 원의 반발이 심해 알력이 생겼고, 세자 원은 1296년 원나라에 가서 진왕 감마라의 딸 계국대장공부에게 장가들어 원의 부마가 된다. 그런데 1297년 7월에 귀국해 궁인 무비 등을 죽이는 일이 발생했다. 이 일로 충렬왕이 왕위에 물러남에 따라 1298년 1월 세자 원이 즉위해 왕위에 올라 충선왕이 됐다. 그러나 충선왕은 고려제도를 복원하는 등 자주적 개혁을 펼치려다가 즉위 7개월 만인 8월에 국세를 빼앗기고 원나라로 압송됐다. 충선왕이 물러나고 다시 충렬왕이 보위에 올랐다.
두 번째 왕위에 오른 충렬왕은 아들 충선왕과 정권다툼을 했으나 실권을 충선왕에게 내어주고 허수아비로 전락하고 말았다. 아들 충선왕을 제거하기 위해 원나라로 갔던 충렬왕은 비참한 몰골로 1307년 4월 고려와 돌아와 이듬해 1308년 7월 73세로 생을 마감했다. 능호는 경릉이며 위치는 정확한 기록이 없다.
《맹자》 고자(告子)편에서 “사람은 대개 잘못을 범한 뒤에라야 고칠 수 있다. 마음이 고단하고 걱정으로 가득 찬 뒤에야 분발하며, 눈으로 보이고 소리로 들은 후에야 깨닫게 된다. (人恒過後能. 困於心衡於慮而後作 徵於色發於聲而後喩.)”고했다. 이에 무슨 말을 더 보태어 말 할 수 있겠는가. 실수한 뒤에 고치고, 마음으로부터 고뇌하며, 겪어서 달라진다면 그나마 다행일 것이다. 오히려 뒤에서 끼리끼리 뭉치며 자신의 입장 속에 갇혀 또 다른 명분을 내세운다. 그리고 살짝 도망치기 위한 행동을 한다. 끝내는 자신이 호기로운 행동자임을 드러내기 까지 한다. 이렇듯 비합리적 생각과 행동들이 난무하며 세상을 어지럽힌다. 끝내 사실은 중요하지 않은 채 너무도 쉽게 우리들은 현상에 휩쓸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