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펙은 가라"… 대기업 채용문화 변화 바람
"스펙은 가라"… 대기업 채용문화 변화 바람
  • 윤다혜 기자
  • 승인 2013.05.21 13: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 15일 오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KB굿잡 우수기업 취업박람회'에서 취업 준비생들이 현장등록 접수를 하고 있다.

"학력과 영어점수 등 스펙은 버리고 열정과 잠재력을 선보여라"

기업들의 채용문화에 변화가 일고 있다. 대기업 인사담당 관계자들은 "천편일률적 스펙 쌓기보다 자신만의 장점과 열정을 스토리화해 부각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전경련이 최근 조사한 기업별 채용문화전공에 따른 채용부문간 벽을 허문 융합형 인재채용 확대, 인적성 검사 폐지 등 새로운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삼성그룹은 올 상반기 공채부터 인문계 전공자를 소프트웨어 직무로 특별 채용하는 ‘삼성 컨버전스 소프트웨어 아카데미(SCSA)’ 전형을 실시한다.

삼성은 당초 공학 배경 중심의 선발에서 벗어나, 인문학적 소양과 기술력을 갖춘 '통섭형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이 제도를 도입했다.

이를 위해 인문계 전공자를 선발해 6개월 간 심화된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게 한 후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채용한다. 올해 상하반기 100명씩 총 200명을 선발할 계획으로 향후 규모를 지속 확대해 나갈 계획이다.

삼성그룹은 또 어학 점수나 학점 등 이른바 '스펙' 순서대로 지원자를 추려내는 일반적인 서류전형과 달리, 일정 요건을 갖춘 지원자 모두에게 삼성 직무적성검사인 SSAT에 응시할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올해 4월에는 120개 시험장에서 총 10만명 이상이 시험을 치른 것으로 알려졌다.

△현대차= 현대기아자동차는 지원서류에서 사진란과 부모님 주소, 제2외국어 구사능력, 고교 전공 표시란 등을 삭제하고, 얼굴이 가려진 상태에서 모의 면접을 보는 ‘5분 자기 PR'을 온라인 화상 면접으로 확대했다.

또한 하계 인턴사원 채용 과정인 ’H innovator'를 통해 전략지원과 R&D, 디자인 부문별로 전문성과 창의성을 갖춘 인재를 뽑기 위해 사전과제 평가 등 실기전형으로만 1차 합격자를 선발했다.

현대자동차는 또 향후 10년간 마이스터고 2학년생을 대상으로 총 1000여명의 우수인재를 미리 선발하고 학비보조 및 단계별 집중교육을 통하여 정규직으로 최종 채용할 방침이다.

또한 취약계층을 위해 국가장학생 중 기초생활수급대상자를 대상으로 별도심사 전형과정을 진행하고 있다. 한편, 지방대생에 대한 채용도 확대해 나갈 것으로 밝혔다.

△SK= SK그룹은 'SK 바이킹 챌린지 예선 오디션'이라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면접관 앞에서 구직자들은 자신의 인생 스토리를 설명하며 오디션 형식을 통해 취업 기회를 잡는다.

올해 4월 열린 오디션에서는 10만원으로 세계 14개국을 106일 동안 무전여행한 지원자, 자신이 디자인한 시계로 1인 창업에 도전한 지원자 등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들이 대거 지원한 것으로 알려져 이목이 집중됐다.

SK그룹은 이미 지난해 하반기 바이킹형 인재 전형으로 40여 명을 채용해 각 계열사 기획, 마케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신의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LG= LG그룹은 1995년 처음 시작된 대학생 해외탐방 프로그램인 'LG 글로벌 챌린저'를 통해서 스펙과 상관없이 대학생들의 해외 탐방보고서 심사와 프레젠테이션을 거쳐 최우수상과 우수상 수상팀에 한해 졸업예정자는 신입사원, 재학생은 인턴사원으로 선발한다.

LG그룹은 또 지방대·전문대 출신 우수인재 확보를 위해 교수 추천, 지방대 현장 순회 채용, 공모전 및 경진대회 출신 실무역량 보유자 우선 채용 등을 도입하고 있다.

아울러 LG연암학원은 직접 운영하는 경남 진주시에 소재한 연암공업대학에 스마트융합학부를 신설, 전문교육 과정을 이수한 졸업자를 대상으로 LG 계열사에 전원 취업을 보장하고 있다.

△롯데= 롯데그룹은 그룹공채에서 '대졸 공채'라는 명칭을 'A-Grade 신입사원 공채'로 변경하면서 대졸 학력 제한을 폐지했다.

고졸 이상 학력자는 신입사원 공채에 지원이 가능하며, 입사 이후에도 대졸자와 동등한 대우를 받게 된다.

또한 각 계열사별 상품 및 마케팅 기획 등을 주제로 한 롯데 아이디어 공모전에서 수상할 경우, 인턴십 또는 신입사원 공채 지원 시 서류전형 면제 혜택을 부여한다.

△포스코= 포스코는 인턴 채용에 '탈스펙 전형'을 신설하고, 지원 서류에 학력, 출신교, 학점, 사진 기재란을 삭제했다. 또 도전정신, 창의성, 글로벌 경험 등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스토리를 자유롭게 기술한 에세이를 제출하도록 해 열정과 잠재역량을 갖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자료로 활용한다.

△GS= GS그룹은 각 계열사별로 특화된 채용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지원자의 올바른 역사의식을 확인을 위해 국사시험을 도입하는 계열사가 있는가 하면, 또 다른 계열사는 자격증, 어학점수 등 이른바 스펙성 요소에 대한 가산점을 부여하지 않고 있다.

또한 1차 면접시 지원자의 학력을 가린 블라인드 면접을 전격 실시하기도 한다.

GS그룹은 또 전문대학에서 추천한 인원들을 대상으로 산학실습 후 관련 계열사에 채용으로 연계되는 산학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추천인원에 대해서는 별도 스펙여부를 검토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화= 한화그룹은 '변화 3.0'이라는 슬로건 하에 국내 대기업 중 최초로 인적성 검사를 폐지했다. 이를 통해 채용 전형기간이 기존 2.5개월에서 1.5개월로 감소했고, 지원자의 부담도 줄였다.

한화그룹은 또 고졸대상 공채를 실시하고, 고등학교 2학년 대상 채용전제형 인턴제도도 실시하고 있다.

특히 고졸 채용자를 위해 기업대학을 운영하고, 5년간 일정 수준 성과를 내는 직원에 대해서는 대졸 직원과 같은 직무 전환과 승격 기회를 부여하고 있다.

△KT= KT도 올해 '올레 오디션'이라는 새로운 채용 방식을 도입해 자사가 주최하는 '올레 잡페어' 기간 중 실시했다. 지원자는 5분 동안 자유롭게 자기소개를 하고, 이를 통해 선발된 인원에게는 서류전형을 면제해주고 있다.

기존 서류전형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른바 '스펙'을 채우는 공간이 사라지고 있는 것도 특징적이다.

△두산= 두산그룹은 신입사원 채용 서류전형에서 DBS(Doosan Bio data Survey)를 진행한다. DBS는 지원서 작성 시 온라인으로 체크하는 간단한 설문형태로 구성돼 있으며, 입사지원서에는 별도의 학점기입란 자체가 없는 것이 특징이다.

두산그룹은 또 마이스터고·특성화고 등과 연계해 두산반을 운영하고 있다. 이는 산학협력 프로그램 중 하나로 두산중공업은 부산 자동차고, 서울 수도전기공고, 창원 기계공고 등에 '두산반'을 설치해 두산중공업 입사를 원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업무 관련 교육을 진행하고, 이후 일정 과정을 거친 졸업생 중 성적이 우수한 인원을 채용하고 있다.

올해 2월 이러한 과정을 통해 34명의 고졸 신입사원이 채용된 바 있으며, 5월에는 내년도 채용을 위한 두산반 학생을 모집했다. 두산인프라코어도 군산 기계공고에 두산반을 운영 중으로 작년에 고3, 고2 학생들을 선발했다.

이밖에도 CJ그룹은 서류전형 지원 시 학력 및 사진 등을 제외하고 있으며, 효성그룹도 수험표와 이름을 제외한 학력·출신 지역·전공 등의 정보를 배제한 '블라인드 면접'을 시행하고 있다.

전경련 이용우 사회본부장은 "이번 조사 결과는 열정과 잠재력을 가진 능력중심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기업들의 채용 문화에 변화가 있음을 잘 보여준다"며 "앞으로 기업들은 다양한 계층을 배려한 채용과정을 통해 새로운 채용문화 정착을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최근 전경련이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취업 준비 또는 스펙을 쌓기 위해 대학을 4년 만에 정상적으로 졸업하지 못하는 구직자가 전체 59.4%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