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빠르게, 더 구체적으로’
‘더 빠르게, 더 구체적으로’
  • 신아일보
  • 승인 2008.03.08 2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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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2주일 지난 李대통령…‘휘모리’ 스타일
“의사소통 잘 돼야” 중요하다 싶으면 ‘끝장 토론’

취임 2주일이 지난 이명박 대통령의 업무 스타일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휘모리 장단’으로 요약된다.
급하고 분주한 대목이나 절정을 묘사할 때 쓰이는 휘모리 장단은 ‘더 빠르게, 더 구체적으로’를 외치며 거침없이 몰아치는 이 대통령의 스타일을 빼다 박았다.
조기 출근은 기본이다.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오전 8시로 정하면서 비서관, 행정관들의 출근 시간까지 덩달아 빨라졌다. 국무회의 시간도 1시간 앞당겼다.
필요하면 수석비서관을 거치지 않고 비서관에게 직접 전화를 걸겠다고 한 점도 실용성과 효율성을 중시하는 이 대통령의 업무관을 단적으로 드러냈다.
보고 체계도 중요하지만 효율적인 업무를 위해서라면 분야를 망라한 ‘핫라인’ 개설 쯤이야 당연한 것 아니냐는 대통령 앞에서 비서관들은 전화 노이로제에 걸렸다.
자칫 방심하다가 대통령의 전화를 놓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대통령은 중요하다 싶으면 ‘끝장 토론’도 불사한다. 물론 24시간 내리 토론을 하진 않지만 그만큼 토론식 회의를 선호한다. 의사소통이 잘 돼야 생산적인 업무가 가능하다는 지론 때문이다.
한 수석비서관은 이 대통령에게 업무를 보고하면서 3시간을 내리 앉아 있느라 진땀을 뺐다고 한다. “화장실에 가고 싶어 죽겠는데 대통령이 자리를 뜨지 않으니 일어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그만큼 꼼꼼하고 세심하다. 이 대통령은 형식적이고 틀에 박힌 업무보고를 싫어한다. ‘창조적 변화’를 강조하는 게 모양새 좋은 구호가 아니라 실질적인 행동 지침이다.
이 대통령은 ‘일신우일신’을 강조한다. 과거의 경륜과 경험으로 자신에게 보고하고 있는지, 어제와 다른 오늘과 다른 내일을 바라보고 변화를 예측하고 있는지를 중시한다.
장·차관이나 수석들을 만나도 ‘변화’ 여부에 방점을 찍는다. 변화에 기민하게 대응하면 플러스, 과거와 현재에 안주하면 마이너스다.
비서동 칸막이 높이도 이 대통령의 관심 사항이다. 부서를 뛰어 넘어 원활한 의사 소통을 하려면 칸막이를 낮추고 업무 공간을 대폭 공개하는 것이 급선무라는 판단에서다.
이 대통령은 지난 5일 비서동을 방문해 리모델링 작업 결과를 살펴보면서 “파티션이 낮아지니까 일하기 좋죠. 완전히 의사소통이 되는 게 좋아”라며 흡족해 했다.
칸막이가 불가피한 반투명 유리색도 투명한 것으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동시에 이 대통령은 “공개적인 것이 불편한 사람은 이상한 사람”이라고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달라진 업무환경에 대한 공개적인 이의 제기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불식됐다.
경선 캠프 사무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사무실에 이어 청와대 사무기기도 변화 타겟이다. 푹신한 소파나 딱딱한 의자 대신 기업체에서 많이 쓰는 회전형 의자를 도입했다.
첫 국무회의시 제일 먼저 지시한 사항이 대통령 좌석을 국무위원석 가운데로 옮기는 것과 권위적인 딱딱한 나무의자 대신 실용적인 회전형 의자를 배치하라는 것이었다.
국가 최고지도자가 직원들의 의자, 칸막이 등 구석구석을 살피는 모습이 알려지자 ‘시어머니 꼼꼼 명박’이란 별칭이 붙었다.
그러나 이 대통령은 적절한 완급 조절도 할 줄 안다. 초반에 몰아치다가 어느 정도 안정 궤도에 올랐다는 판단이 서면 스스로 속도 조절에 나서곤 했다.
인수위 시절 불시에 인수위를 방문하는 등 업무 속도를 내라고 채근하던 이 대통령이 2월 초부터 모처럼 편안한 만찬자리를 열어 그동안의 노고를 치하하며 ‘여유’를 찾기도 했다.
하루를 24시간 분 단위 초 단위로 쪼개 쓰라고 주문한 이 대통령이지만 ‘쉼’의 중요성도 강조한 것이다.
이는 임기 초반 공직 기강을 바로 세워 업무집중도를 높이는 ‘풀 땐 풀고 조일 땐 조이는’ 전형적인 인력 운용 스타일인 셈이다.
이 대통령의 이런 사고방식은 대기업 CEO 시절 성과주의에 맥락이 닿아있기도 하다. 목표치를 달성하면 한 박자 쉬면서 재도약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뒤 다시 전력질주에 나서는 식이다.
그러나 청와대 업무 파악, 다음달 초로 예정된 해외 순방, 인선 마무리 작업, 당내 공천 상황 등 산적한 현안이 많기 때문에 당분간 이 대통령이 ‘쉼’의 여유를 줄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얼룩진 대국민 이미지를 쇄신하기 위해서라도 새정부 출범의 새로운 기운과 변화된 모습이 당장 필요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양귀호기자
ghyan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