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의 주름에 미래가 보인다
노인의 주름에 미래가 보인다
  • 신아일보
  • 승인 2008.02.14 1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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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상길 정치학박사/ 인천대 정외과 겸임교수
세월의 흐름에 대한 아쉬움은 세월이 빨라서가 아니라 삶의 유한(有限)에 따른 애석함에 있다. 그래서 세모(歲暮)에 대한 정은 늙어가는 사람이 더 느끼게 된다. 남은 삶이 적어질수록 시간의 흐름이 더 빨리 느껴지기 때문이다.
어릴 적 어머니의 무릎에 걸터앉아 다양한 옛이야기를 재미있게 들으면서 어머니의 짜글짜글하게 갈라진 손등 주름을 고사리 같은 손가락으로 쓰다듬고는 했는데, 당시에는 참으로 신기하기 그지없었다.
여린 내 손가락으로 움푹 파인 주름을 따라 미끄럼을 타면 어머니는 무엇을 생각하는지, 눈빛이 흐려지면서 옛이야기를 멈추고 빈 허공을 응시하곤 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어머니의 주름을 타고 놀던 일이 눈에 선한데, 어느새 내 귓가에도 흰머리가 듬성듬성 나있다.
젖은 짚단 태우는 것처럼 지난 한해의 마감을 되새겨 보지만, 지난해는 국가지도자를 선택하는 등 유난히 복잡하고 혼탁한 한해를 보내면서 아쉬움은 짙게 남는다.
‘인생은 육십부터’라는 말이 있지만, 단지 짧은 인생을 억지로 위로 하는 것일 뿐이다.
나이를 떠나 인생은 같은 것이라는 판단이다.
십대는 십대 나름의 생각과 삶이 있고, 사십은 사십대의 삶이, 그리고 육십 대는 그 나이만큼의 연륜(年輪)이 묻어나오면서 나름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젊어서는 뜨거운 열정으로 이성을 사랑하면서 들떠 날밤을 새우는 기쁨이 있지만, 그 대가만큼 초조와 실망, 열정에 따른 고통도 수반된다.
중년이 되면 안정된 삶의 지속을 위해 고민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검은 머리가 하얗게 변했다면 번뇌에서 벗어나 아름다웠던 과거를 관조(觀照)하고 회상(回想)하면서 즐거움을 낚는 재미도 있다.
과거를 역력하게 회상할 수 있는 사람은 참으로 장수하는 사람이며, 그 생활이 아름답고 화려했다면 비록 가난하더라도 유복한 사람이다. 예전을 추억하지 못하는 사람은 그의 생애가 찬란했다 해도 감추어둔 보물의 세목(稅目)과 장소를 잊어버린 사람과 같다.
기계와 같이 하루하루를 살아온 사람들은 팔순을 살았다 해도 단명한 사람이다.
우리가 제한된 생리적 수명을 가지고 오래살고 부유하게 사는 방법은 아름다운 인연을 많이 맺으며 착한 일을 하고, 또한 남을 위해 봉사하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지며 때로는 살아온 자기의 아름다운 과거를 회상하면서 사는데 그 보람을 느낄 수 있다.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평소 존경하던 금아 피천득(皮千得) 선생님의 말씀이다.
남은 삶이 길던 짧던 올 한해가 다가기 전에 이 글귀를 마음속에 새기면, 내년은 올 한해보다는 좀 더 나은 한해가 될 것이라 확신한다.
올바르게 살아온 인생에 파인 지혜의 주름은 매끄러운 피부 못지않게 아름답게 보인다.
세월을 충실하게 살아온 사람에게 그 보람을 갖다 주는데, 우리의 인생은 그리 인색하지 않다고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