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M와 6M 횡단보도의 자존심
1.8M와 6M 횡단보도의 자존심
  • 신아일보
  • 승인 2008.02.13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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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봉 인천남부서 도화지구대
아침 7시30분, 변함 없이 같은 시간 같은 도로 같은 곳을 경유하여 출근하는 길이지만, 집근처 부평구 백운초등학교 앞에 설치된 편도1차선도로의 폭6M 횡단보도 앞에서는 매번 긴장과 초조함을 떨치지 못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아직도 그날 아침 처음 폭1.8M 횡단보도를 처음 만났을때의 놀람과 한참동안 망설임의 기억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2년전 나는 아내 그리고 4살된 아들과 함께 일본 동경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 나라에 유학을 온 학생들이 모두 그렇듯 나도 자전거 통학을 하기로 하고 중고 자전거를 한 대 구입했다.
어느 따스한 봄날, 나는 힘차게 페달을 밟으며 첫 등교길에 나섰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10KM의 거리… 하지만 설레이던 마음도 잠시, 나는 100M도 못가서 바로 문제의 1.8M횡단보도를 만나게 되었다. 승용차 한대가 지나가기에도 빠듯한 폭1.8M의 이면도로에 횡단보도가 그어져 있고 거기에 신호등까지 번듯하게 설치되어 있었던 것이다.
때마침 1.8M횡단보도 신호엔 빨간불이 들어 와 있었고, 옆에는 고등학생 한명이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한국에서 늘 했던 것처럼 이건 신호등도 아니야? 라고 생각하며 무시하고 맞은 편으로 건너가려고 했다. 그러나 불현듯 대한민국 경찰공무원인 내가 신호위반하여 지나 가다가 일본경찰에게 걸리면 내가 나라망신 다 시키는거 아닌가? 라는 생각에 그학생 옆에 멈춰서고 말았다. 그 곳을 통과한 이후에도 학교에 이르기까지 10KM의 구간에서 모두 27개의 1.8M횡단보도를 만났고, 그때마다 신호를 어기고 싶은 유혹을 참으며 하나하나 통과하다 보니, 결국 나는 첫수업날 지각을 하고 말았다. 그로부터 1년이 넘도록 나는 문제의 1.8M횡단보도을 통학길에 마주쳤고, 성미급한 한국사람 중 한명으로서 수없는 유혹과 갈등을 이겨내고 신호를 지키는 습관이 몸에 배인 이후에야 어릴적부터 질서를 지키는 습관이 몸에 밴 일본인들처럼 나도 모르게 저절로 신호를 지키게 되었다.
질서는 습관이라고 생각된다. 야구선수가 홈런을 치는 것도 부단한 연습의 결과 몸에 밴 습관의 소산이 아니겠는가. 가깝고도 먼 이웃 나라 일본... 역사적 갈등과 문화차이로 인해 첨예하게 부딪히고, 때론 그들의 지나친 소심함을 비웃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6M도로의 횡단보도쯤 대수롭지 않게 무시하는 쓸데없는 대범함부터 내던지는 것이 우리 아이들의 안전을 보장하고, 1.8M 도로에도 횡단보도를 긋는 진정한 자존심의 발로가 아닐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