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돌아보는‘길’
다시 돌아보는‘길’
  • 신아일보
  • 승인 2008.02.02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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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충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얼마전에 KBS가 방영한 특집 프로그램 ‘茶馬古道’는 유구한 역사와 문화의 흐름, 그리고 우리네 삶의 원초적 의미에 이르기까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주었던 秀作이었다."
눈이 시리도록 맑고 순수한 자연과, 그 속에서 운명적인 삶을 살아가면서도 낙천적인 품성을 잃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이 정겹다. 평생 염원해 온 성지순례, 그 극기의 여정에서도 주름진 얼굴 가득 신을 향한 경외심이 넘쳐나는 토착민들의 모습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인류문명의 발전과 함께 해온 ‘길’을 그 성격에 따라 무역로, (전쟁)수송로, 그리고 순례길로 크게 나누어본다면 茶馬古道는 대표적인 무역로에 해당되지 않을까 싶다.
옛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험산준령사이로 길을 내고, 고산오지에서의 삶에 불가결한 품목인 차와 소금, 곡식과 말을 교환하는 물물거래의 길을 오갔던 것이다.
같은 무역로라도 차마고도와 실크로드는 그 성격이 좀 다르다.
차마고도가 생존을 위한 길이었다면 실크로드는 이문을 추구하는 장삿길로 분류할 수 있을 것이다.
총길이 6400여km에 달하는 실크로드는 중국의 中原지방에서 시작하여 타클라마칸사막과 파미르고원, 중앙아시아를 거쳐 지중해에 이르는 세계최장의 무역로이자, 동서양의 정치·경제·문화를 이어준 교통로였다. 특히 뱃길로 천축(인도)에 이른 후 아라비아해와 홍해를 거쳐 이집트로 이어지는 西域南路는 求法의 길이기도 했다.
이 길을 통해 불교와 조로아스터교, 이슬람교가 중국에 전해졌고, 서역의 풍속과 문화가 동양에 알려졌으며, 중국의 주철기술과 양잠, 제지법 등 앞선 문화가 서방으로 흘러들어갔다. 실크로드보다 약 1세기 앞서 선을 보인 로마街道도 세계문명사를 얘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길이다.
로마인이 주로 군사용으로 건설했던 이 교통로는 고대 브리타니아에서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까지, 또 도나우강에서 스페인과 북아프리카일대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수송망으로서 총길이가 8만km에 달한다.
기원전 312년에 착공한 아피아가도를 필두로 하여 아우렐리아가도, 플라미니아가도, 발레리아가도, 라티나가도가 차례로 건설되고 수많은 지선도로가 보강되면서 ‘모든 길이 로마로 통하게’ 된다.
특히 이 가도는 오늘날까지도 이태리반도 육상교통망의 기본축을 유지하고 있을 만큼 높은 토목기술수준과 기능적 우수성을 평가받고 있다.
유럽 最古의 길인 산티아고길(Camino deSantiago)은 순례길로 유명하다.
프랑스 남단의 국경도시 ‘생 장 피드포르’에서 시작하여 피레네산맥과 스페인북부를 가로질러 이베리아반도의 서쪽 끝에 있는 도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이르는 약 800km의 길이다.
중세이후 카톨릭 성지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신앙의 길이자, 동시에 카톨릭과 이슬람의 문화가 서로 스며들어 수많은 신화와 전설, 영웅담과 낭만적인 얘기들을 엮어내고 있는 역사의 길이고 문명의 길이다.
1993년에는 유네스코에 의해 길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새로운 순례의 붐이 일어나고 있다.
근래 들어와 우리 주변에서도 전통과 문화가 깃든 옛길을 보전, 활용하려는 관심과 노력이 이어지고 있어 주목된다.
문화재청은 최근 문경새재와 죽령옛길 등을 명승으로 지정하고, 원형복원에 나서는 한편 장원급제 행렬 등 문화행사도 지원할 계획이다.
경상남도는 충무공의 ‘백의종군로’를 옛 자취를 따라 복원하여 역사교육의 장으로 활용한다는 계획을 내놓고 있다.
한·일 양국의 건축학자들을 중심으로 朝鮮通信使 옛길과 경유지의 客館 등 건축유산을 보전하고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자는 움직임도 일고 있다.
당대에 사람과 물자가 오고간 교통로이다.
뿐만 아니라 세월을 넘고 역사를 이어주는 연결고리로서 ‘길’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