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봇대 하나 옮기는데 5년 걸린 나라
전봇대 하나 옮기는데 5년 걸린 나라
  • 신아일보
  • 승인 2008.01.21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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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애로가 너무크네…미안해요 세금내고 사업하는 사람에게 이런 불편을 주는데 내가 미안해요’
2006년 9월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가 전남 영암의 대불공단에 갔을 적에 한 말이다. 이당선인은 공무원의 무사안일과 불합리한 규제의 폐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모델로 이 전봇대를 지목했다.
이 당선인은 ‘대형트럭이 선박 불록을 실고 나가서 커브를 틀어야 하는데 그 자리에 전복대가 있어 힘들었다며 그것이 몇 달이 지나도록 안 옮겨졌다’고 말했다. 그래서 알고 보니 ‘전라남도도 권한이 없고 목포시도 안되고 산업자원부도 안된다고 하고. 서로 미루다 보니 전신주 하나 옮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대불공단 입주업체들이 전봇대를 옮겨달라는 민원을 처음 제기한 것이 지난 2003년이라고 한다. 선박 조립용 대형 블록을 트레일러에 싣고 대불함으로 운반 할 때 전봇대와 전기 줄에 걸려 승용차로 1분이면 될 거리가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시간과 비용손실이 막대하다는 민원이다.
이 전봇대는 산업 현장의 하소연이 무력한 관료조직과 공무원들의 탁상행정에 의해 얼마나 무시되어 왔는지 보여주었다. 조금만 국민 목소리에 귀 기울고 봉사하는 자세를 갖추면 국가 활력을 높일 수 있는 여지가 많음을 짐작케 한다.
그러나 산업자원부와 한전 지자체가 서로 책임을 떠밀며 나서지 않은 바람에 4년이 지난 작년에야 겨우 전선을 땅속에 묻는 지중화사업이 시작됐다. 그나마 지금까지 없앤 전봇대는 전체의 30% 수준에 지나지 않고 당선인이 2006년에 목격했던 문제의 전봇대는 그대로 남아있었다.
그렇게 5년 동안 풀리지 않다가 민원인인 당선인 한마디에 전봇대가 뽑힌 것이다. 이렇게 쉽게 할 수 있는 일을 5년씩이나 끌어 왔다는 사실이 기가 막힌다. 그동안 관계부처 어느 한 곳도 책임감을 갖고 현장을 찾아가 기업들의 고충에 귀를 기울지 않았다는 이야기다.
어디 대불산단 전봇대뿐이겠는가. 현실과 동떨어진 규제로 기업 활동이 방해받고 위축되는 사례가 우리 주의에는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
노무현 정부가 2003년 인천과 부산 진해 광양에 경제자유구역을 지정하고 8조원이 넘는 예산을 쏟았지만 외국인 투자유치에 실패한 것은 탁상공론식 행정과 함께 황당한 규제 탓이다. 관료출신 이환균 인천 경제자유구역 청장은 ‘각 부처에 없앨 규제를 가져오라고 하면 잔가지만 내놓지 뿌리는 절대 가져오지 않는다’고 탄식했다.
새 정부의 경제 살리기는 이런 전봇대들을 하나하나 찾아내 확실하게 뽑아내는 데서부터 시작해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