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의 힘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교육의 힘이 오늘의 한국을 만들었다
  • 김 상 홍
  • 승인 2013.01.31 15: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기이한 행동과 풍자시로 세상을 조롱하고 비판했던 영원한 나그네 시인 김삿갓(金笠)의 본명은 김병연(1807∼1863)으로 선천부사 김익순의 손자이자, 헌종 때 영의정을 지낸 김병익의 족형(族兄) 이다.

그는 1863년 3월 29일 전라도 동복현에서 56세로 객사했다.

묘는 강원도 영월에 있다.

그의 기구한 운명은 5세때인 1811년 홍경래의 난에서 비롯되었다.

할아버지 김익순은 당시 선천부사로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로 가문이 몰락했다.

어머니는 어린 김병연을 이끌고 고향을 떠나 신분을 숨기고 살았다.

22세 때 읍내 동헌(東軒)에서 백일장이 열렸는데 시제(詩題)가 “가산군수 정익(鄭謚)이 죽음으로 절의를 지킨 것을 논하고 선천부사 김익순의 죄는 하늘까지 통하는 것을 한탄하다.

”(論嘉山郡守鄭謚死節 嘆宣川府使金益淳罪通于天)였다.

김익순이 조부인 것을 몰랐던 그는 통렬하게 홍경래에게 항복한 죄를 춘추필법으로 매도하여 장원했다.

무명의 선비에서 일약 스타가 된 그는 상품을 한 아름 안고 집으로 돌아와 자초지종을 어머니께 말씀드렸다.

깜짝 놀란 어머니는 “네가 만고역적으로 성토한 김익순이 바로 너의 친할아버지이다.

”라고 말하면서 기막힌 운명의 장난에 대성통곡했다.

손자가 할아버지 죄를 성토한 천하의 불효를 범한 것이다.

조상이 나쁜 죄를 지었어도 후손들은 조상을 비난하지 않는 것이 도리이다.

김병연은 죄책감에 죽고 싶었으나 모진 목숨이라 죽지 못하고 어머니를 남겨두고 방랑의 길을 떠났다.

천하의 불효를 범하였기에 이름을 숨기고 차마 하늘을 볼 수가 없어 삿갓을 쓰고 조선팔도를 유랑하면서 세상을 조롱하고 짜릿한 해학과 풍자를 일삼으니 김삿갓 또는 김립(金笠)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가 전국을 방랑하다가 단천(端川)에서 3년간 훈장을 한 적이 있다.

직접 학동들을 가르친 적이 있어 훈장들이 겪는 고충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다.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훈장들이 겪어야 하는 고뇌와 갈등을 시「훈장」(訓長)에서 오롯하게 그렸다.

“세상에 누가 훈장이 좋다고 말했느뇨(世上誰云訓長好)/ 연기 없는 심화가 저절로 생기는데(無烟心火自然生)/ 하늘 천 따지 가르치다 청춘이 가고(曰天曰地靑春去)/ 부(賦)와 시를 가르치다 보니 백발이 되었네(云賦云詩白髮成)/ 정성 다해 가르쳐도 칭찬하는 말 듣기 어렵고(雖誠難聞稱道語)/ 잠깐만 도를 떠나도 시비하는 소리 듣기 쉽네(暫離易得是非聲)/ 손바닥 안의 보배와 천금같은 자식을(掌中寶玉千金子)/ 종아리 쳐서 가르쳐 달라는 것이 진정인가(請囑撻刑是眞情)” 훈장이란 직업의 특성을 잘 형상화한 시이다.

세상 사람들은 속도 모르고 훈장이 좋은 직업이라 말한다.

그러나 가슴속에는 항상 심화, 즉 연기 없는 마음의 불이 타는 것은 학동들이 속을 태우기 때문이다.

하늘천 따지 가르치다 창춘이 가고 정성 다해 가르치지만 칭찬하는 말 듣기 어렵고, 조금만 실수하면 비난한다.

천금같은 자식들을 종아리를 쳐서 교육시켜달라는 말이 진심이냐고 학부모들에게 묻고 있다.

우리나라는 5천년 유사 이래 크고 작은 외침을 931회 받았으나 모두 극복했다.

국난극복의 원동력은 어려운 여건에서도 자식을 교육시킨 부모님의 뜨거운 교육열과, 묵묵히 사도(師道)를 실천한 선생님들의 교육이라고 생각한다.

즉 교육의 힘이 오늘의 한국을 있게 했다.

한자리 하려고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선생님들도 있지만, 묵묵히 사도를 실천하는 훌륭한 선생님들이 많다.

그래서 우리에게 희망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