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자칼럼]“해맞이”
[독자칼럼]“해맞이”
  • 신아일보
  • 승인 2008.01.09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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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연충 부산지방국토관리청장
"매일 떠오르는 태양 그러나 우리는 새해 첫 태양을 지순한 마음으로 대하고 싶다."

무자년을 여는 첫날은 몹시도 추웠다. 기상청에서도 올 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한파를 예보하고 있었던 터라 단단히 무장을 하고 새벽 어스름 속에 해운대로 길을 떠났다.
아직 캄캄한 시간이었음에도 지하철은 해맞이 길을 나선 인파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전동차에 올라 찬찬히 주위를 살펴보니, 신기하게도 삶에 찌든 고달픈 모습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모든 이들의 얼굴색이 하나같이 밝고 활기에 차있었다. 나만 유독 그렇게 느꼈음인가? 어쨌거나 새해 첫날 마주치는 이웃들에게서 산뜻한 희망과 생기를 보고 앞날에 대한 부푼 기대를 나누어 받는다는건 기쁜일이다. 해운대역에 내려 인파에 떠밀리면서 해맞이축제가 열리는 해운대백사장으로 향했다.
해운대는 포항의 호미곶, 울주군의 간절곶과 더불어 남녘바다에선 3대 해맞이 명소로 꼽히며 경향각지에서 많은 이들 이 찾고 있는 곳인데, 나로서는 올해 부산에 터를 잡고 있는 덕분에 지하철로 손쉽게 와닿을 수 있으니 행운이 아닐 수 없다. 한켠에선 철인3종경기 동호인들이 일출시간에 맞춰 바다로 뛰어들기 위해 준비운동에 여념이 없다. 얇은 수영복만으로도 추위를 아랑곳하지 않고 희열에 넘쳐있는 그들이 부럽기 짝이 없다.
오전 일곱시 무렵에 부산시장과 교육감이 휠체어에 탄 장애노인분들을 모시고 식장에 도착했다. 무대전면에 초청인사와 장애노인들이 나란히 자리 잡도록 배려한 성의도 신선하게 다가왔거니와 시청 직원들이 노인들께 따끈한 온수 대령하랴 담요 덮어드리랴 동분서주하는 모습도 흐뭇한 정경이었다.
이어지는 해맞이 축하공연. 부산시립무용단이 펼치는 ‘백두대간’이란 주제의 역동적인 춤사위에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이어서 시립국악단 소속의 박성희명창이 새벽하늘을 우러르며 ‘천지여, 천지여’를 열창함에 이르러서는 가슴 깊은 곳으로부터 밀려오는 저릿저릿한 감동을 주체할 길이 없다. 드디어 일출의 시각. 수평선 너머쪽이 붉게 물들기 시작하더니 곧 옅은 구름사이로 시뻘건 불덩이가 불끈 솟아오른다. 새시대를 여는 축복의 해이자, 한민족 모두에게 희망과 용기를 안겨주는 구원의 해이다. 해운대 앞바다에 도열한 어선들의 뱃고동과 경찰헬기의 축하비행속에 시민들은 새해 소망을 담은 풍선을 하늘높이 날려 보내며 새해를 벅찬 가슴으로 맞아들인다.
이쯤에서 왜 우리 민족이 정초의 해맞이에 이토록 유별나게 집착하는지 살펴보기로 하자. 내가 알기로 해맞이문화가 세시풍속처럼 국민속에 스며들어 있는 나라로는 우리나라와 일본이 대표적이다. 일본이 늘상 입만 열면 천손민족이니 태양의 후예니 하고 떠들어대고 있지만, 실상 태양의 후손으로 치자면 우리가 한참 웃길이다.
우리의 고대설화에 등장하는 한인천제가 곧 태양을 상징하고 있고 흰옷을 즐겨 입어 백의민족이라 일컬어지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그뿐인가, 삼국유사를 보면 동해바닷가에 살던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 왕과 왕비가 된 것으로 나와 있음이다. 신라인들이 해마다 이들 부부를 제사 지내고 해와 달의 정기를 나누어주도록 빌었던 곳이 곧 경상북도 迎日이다.
이제 무자년의 새날이 밝았다. 삼백예순다섯날 어김없이 뜨는 해가 실상 무슨 차이가 있으랴만, 우리는 새해 첫 태양을 지순한 마음으로 대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 오늘 아침해를 맞으며 다짐한 초심을 잃지 말고 주어진 귀중한 시간을 알차게 채워나가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