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열의칼럼]‘새 생명으로 교화’ 피해자는 어쩌고
[오세열의칼럼]‘새 생명으로 교화’ 피해자는 어쩌고
  • 신아일보
  • 승인 2008.01.08 15: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사실상 사형 폐지국의 지위 얻게 된 한국
사형제 폐지를 주제로 한 할리우드 양화를 보면 대부분 형무소 정문위에 ‘Penitentiary’라고 쓰여 있음을 목격 하게 된다.
우리는 감옥소나 형무소는 흔히 ‘Prison’이나 ‘Jail’이라 읽는다 그런데 사형제 반대 영화에서는 이런 단어들이 잘 나오지 않은다. 그 이유는 이렇다. ‘Penitentiary’의 사전적 의미는 ‘참회’나 ‘고해’이지만 이런 뜻에서 변형돼 ‘교도소’라는 의미도 갖고 있다.
따라서 영화 속의 ‘Penitentiary’는 처벌의 의미가 담긴 감옥내지 ‘Jail’ 보다 ‘참회’나 ‘고해’ 등에 보다 큰 가치를 부여 하는 것인지 모른다. 비록 사형수일망정 사회는 그에게 징벌을 가하기보다 교도와 교화에 더 무게를 둬야 마땅하다는 메시지로 해석해도 무방할 것이다.
사실상 마지막으로 사형이 집행된지 10년째가 되는 지난해 한국이 국제 인권 단체인 앰네스티가 분류하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가’로 인정 받았다. 국제사회에서 인권 국가로 인정받는데 한걸음 더 다가섰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그러나 사회질서 유지차원에서 사형제가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남용하지 않으면 된다고도 말한다. 사형은 인권을 완벽히 부인하는 행위라는 국제사면위원회의 주장을 굳이 더 들것도 없다.
생명의 가치는 절대적이다. 사람의 생명을 거둘 자격은 그 누구에게도 없다. 범죄예방 효과도 실제로는 없다는게 여러 연구결과다.
더 현실적인 문제는 언제든 오판에 의해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낳을 수 있고, 권력이 남용 또는 악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민주화가 이뤄졌으니 이제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역사의 진전 방향은 알 수 없는 일이다.
우리 형법제정에 결정적 역할을 하였던 엄상섭 선생도 사형 제도를 반대하면서 “사람이 사회생활을 필요로 하는 것은 그가 살기 위함에서 긍정되는 것이지 그의 생존권이 부정 되어도 좋다는 것이라면 사회생활 자체도 불필요하다는 점에서 형법의 한계성이 자명 해진다”라고 했다.
그렇다 사람은 살기 위해 자신들의 희생으로 국가를 형성유지하고 국가는 구성원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무를 지닌다.
외부 침입을 막기 위해 국방의무를 지는 것처럼 잔혹한 범죄를 예방 척결하기 위해 우리는 공무 담임의무와 납세의무를 진다.
따라서 국방의무에서 징집된 군인이 특정적이나 특정 정권을 위해 의도적으로 자국민을 살해 하는 일은 민주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천인공노한 짓인 것과 마찬 가지로 국민의 생명을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국가가 도리어 범죄예방과 척결을 위해 자국민을 계획적 살인의 방법으로 달성하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반국가적 행위이자 국가 존립 이유의 모순이다.
그것은 사형 제도를 존치하면 살인사건 등 반 인륜적 범죄를 예방하거나 척결할 수 있다는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영삼 정권말기인 1997년 12월 23명이 사형 집행 되였지만 그 직후 한국에서의 살인 사건은 그 전해보다 증가 하였으며 사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사형을 선고 받았던 적이 있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집권 기간 내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노무현 정부에서도 사형집행은 계속 보류됐다.
현재 국내 사형 확정자는 64명이다. 세계적으로 195개국 중 133개국이 사형제를 폐지했거나 집행을 하지 않고 있는 반면에 미국 중국 등 66개국은 유지 하고 있다.
지난 10월 열린 사형제 폐지 선포식에 참석한 워럭 모리스 영국 대사는 “사형 폐지가 세계적인 경향이다 한국이 사실상 사형 폐지국의 지위를 얻게 된 것을 환영 한다”고 말했다. 앰네스티는 법적으로 사형 제도를 유지 하면서도 10년간 사형을 집행 하지 않은 나라를 ‘실질적 사형 폐지 국’으로 간주하고, 유럽연합(EU)은 사형제 폐지가 가입조건이다. 유엔 총회는 지난해 ‘사형집행 유예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안경환 국가인권위원장·지관 조계종 총무원장 등은 대한민국이 사실상 사형 폐지국이 됐다는 점을 국제사회에 선포 했다. 사형제도 폐지 특별법은 15대 국회에서 첫 발의돼 1999년 12월 국민회의 유재건의원 등 여야 의원 90여명·16대에서는 민주당 정대철 한나라당 이부영· 자민련 오장섭의원 등 17대에서는 유인태의원 등 여야 의원 175명 등이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16·17대의 경우 과반수의원이 법안에 서명했지만 법사위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법무부는 지난해 5월 국가 인권 로드맵인 국가 인권 정책 기본계획 확정 때도 사형제에 대한 입장표명을 유보하고 “현행법상 사형 규정의 타당성은 검토하고 절대적 종신형 도입 등의 타당성을 분석해 국회 계류 중인 사형제 폐지 특별법의 심사에 반영 한다”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최근 개정형사 소송법은 사형을 선고 받을 수 있는 살인 존속살해 내란 등 범죄 공소시효가 15년에서 25년, 무기 금고에 해당하는 범죄는 10년에서 15년으로 각각 늘어났다.
사실 논란을 벌이자면 끝이 없다. 영국 프랑스 독일 등 대부분 선진국을 포함해 100여 나라가 이미 사형제를 폐지했다. 그렇다고 이들 나라에서 사회질서가 후퇴 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도 못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범죄예방을 위해 사형제는 필요하다는 견해를 보여 왔다. 이 당선 인은 전향적인 결단을 내리길 바란다.
노모와 아내 4대독자 아들까지 일가족 셋을 유영철 한테 잃은 고정원 씨의 말이 다시금 울려온다. “걔(유영철)를 죽인다고 내 가족이 살아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또 다른 죽음이 하나 늘어나는 것일 뿐이죠”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