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토 전 총리 폭탄테러에 암살
부토 전 총리 폭탄테러에 암살
  • 신아일보
  • 승인 2007.12.29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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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키스탄 야당 지도자인 베나지즈 부토 총리가 27일 왈핀디에서 선거 유세도중 테러에 피습 사망 했다.
페르베즈 무사라 대통령의 철권통치 속에 다음달 8일 치러질 총선 등 민주화 일정의 차질이 불가피해 보인다.
파키스탄은 인구 1억 6500만 명에 핵무기를 가진 유일한 이슬람 국가다. 그런 만큼 부토의 암살은 정국 혼미는 물론 미국이 주도하는 테러와 전쟁에 까지 심대한 영향이 미칠 것을 예 고한다.
파키스탄은 미국대 테러전쟁의 주요 동맹국이다. 당장 무샤라프 정권이 위기에 몰리게 됐다. 부토의 암살이 올 들어 급격하게 악화된 파키스탄 정국 혼란의 연장선에 있기 때문이다.
부토는 10월 망명을 마치고 귀국한 후 미국의 중재아래 무샤라프와 권력분점 거래에 나섰으나 결렬 됐다. 이후 군사 정권에 대한 부토의 비판은 한층 거세졌다. 나와즈 샤리프 전 총리 등 야당 지도자들 까지 나서 이번 사태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샤라프 대통령에게 있다고 비난하고 있다.
그러나 사건 직후 알 카에다의 아프카니스탄 사령관을 자신들의 소행이라고 주장하고 나섰다. 현재로는 부토 암살의 유력한 배후로 알카에다와 탈레반 등 이슬람 금단주의 세력이 지목되고 있다.
테러는 용서 할 수 없는 비열한 행위다. 이번 테러에서도 부토와 함께 20여명이 몰사 했다. 부토는 10월 귀국 때도 폭탄테러에서 간신히 화를 면했지만 140여명의 무고한 생명이 희생 됐다.
부토 암살을 계기로 파카스탄이 최악의 유혈 사태에 빠지지 않도록 국제적 노력이 필요한 때다. 동시에 부토 암살 소식에 섞어 풍겨오는 것은 미국 패권주의의 악취다.
미국은 1999년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무샤라프에게 911테러이후 100억 달러의 원조를 퍼부었다. 핵무기 증강도 문제 삼지 않았다 파키스탄 안정을 통해 대테러 전쟁의 전위대로 활용 하려한 것이었지만 부토 사망으로 벽에 부딪혔다.
알 카에다나 탈레반은 어떤가. 알 카에다 지도자 오사마 빈라덴은 79년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 미국중앙정보국의 전폭적 지원을 받았다. 미국은 94년 결성된 탈레반에도 초기에 지원했다. 자신이 키운 것들에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다.
극단주의 세력의 테러위협에 상시적으로 노출 된 파키스탄 국민들이 이에 굴하지 않고 슬기롭게 난국을 해쳐 나가길 기대한다. 이슬람 세계의 정정 불안이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닌 세상이 됐다. 우리 정부도 파키스탄 민주화를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찾아 적극 지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