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대 대선, 정체성 모호한 ‘이합집산’
17대 대선, 정체성 모호한 ‘이합집산’
  • 신아일보
  • 승인 2007.12.19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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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렷한 대립각 세웠던 2002년 비해 진보·보수 경계 모호
뚜렷한 대립각 세웠던 2002년 비해 진보·보수 경계 모호
경제 이슈 선점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 1년 가까이 독주

‘철새 정치인’이 횡행했던 2002년 대선에 이어 17대 대선에서도 파격적인 합종연횡이 성행했다.
그러나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가 뚜렷한 대립각을 세웠던 2002년에 비해 이번 대선에서는 진보와 보수의 경계가 모호했다.
“배고파서 못 살겠다”며 서민들의 아우성에 이념 대립이 설득력을 잃은 가운데 일찌감치 경제 이슈를 선점한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가 1년 가까이 독주했다.
이회창 전 총재의 대선 출마는 총선 부담에 시달리던 정치인들의 ‘철새 본능’에 불을 당겼다. 이 후보가 대선 결과에 상관없이 신당을 창당하겠다고 선언하면서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잡종교배’가 기승을 부렸다.
대표적인 친노(親盧) 인사인 김혁규 전 경남지사의 ‘昌 지지’는 이런 경향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햇볕정책의 전도사를 자처했던 그가 상호주의에 방점을 찍은 이 후보를 지지하자 여권 인사들과 청와대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최근 조순형 의원과 함께 탈당한 이윤수 안동수 전 민주당 최고위원도 ‘이회창 호(號)’에 합류했다. 이회창 후보 측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조순형 의원 영입에 공을 들이는 한편 민주당과의 정책 연대 가능성도 열어 놨다.
이 후보 측은 고건 전 총리의 지지모임 연합체인 ‘고건 대통령 추대 범국민운동본부’ 간부들의 지지까지 얻어냈다.
고 전 총리의 지지모임인 ‘선진한국당’ ‘중도실용개혁연대’의 지지도 이끌어 냈다.
한나라당이 2002년 대선 당시 바다에 그물을 치고 쓸어담듯이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들을 영입했던 일명 ‘큰 바다 정책’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 후보 측은 이념을 초월한 파격적인 영입으로 몸을 불리는 동시에 ‘보수 대(大)결집’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를 향한 끊임없는 구애가 단적인 예다.
아직 박 전 대표의 화답을 받진 못했지만 진작에 그의 지지모임인 ‘박사모’의 지지를 보장받았다. 한나라당 곽성문 김병호 의원의 합류, 국민중심당 심대평 후보와의 단일화 성공도 이회창 후보의 독특한 외연확대에 한 몫을 했다.
‘정치적 DNA’가 확연히 갈리는 인사들이 이회창 후보를 중심으로 결집하는 기저에는 4개월 앞으로 다가온 총선이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벌써부터 지분 다툼이 치열한 한나라당이나 대통합민주신당에 잔류하느니 일찌감치 차를 갈아 타는 것이 득이라는 계산이다.
다급하기는 민주당도 마찬가지. 이인제 후보의 지지율이 1% 대를 맴돌고 후보 단일화 및 통합마저 지지부진해지자 초조해진 민주당 인사들은 ‘여권 색(色)’을 빼고 내년 총선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고 이회창 캠프로 몰려들었다.
총선 여파로 ‘의외의 짝짓기’에 성공한 것은 이명박 후보도 예외가 아니다. ‘BBK’ 검찰 수사결과 발표로 탄력을 받은 이 후보는 최근 ‘정몽준’이라는 대어를 잡고 대세론을 굳혔다.
정 의원은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 지지를 선언했던 인물. 투표 하루 전날 지지 철회를 선언하기는 했지만 당시 이회창 후보의 대척점에 섰던 인물이니만큼 정 의원의 한나라당 입당은 그 상징적 의미가 남다르다.
진대제 전 정보통신부 장관의 합류도 의외이긴 마찬가지. 올초 열린우리당을 탈당한 진 전 장관은 참여정부의 최장수 장관 출신이다.
장전형 전 민주당 대변인의 입당도 인구에 회자됐다. 장 전 대변인은 2002년 대선 때 이회창 후보의 저격수로 활약했던 인물.
그는 당시 이 후보의 장남 정연씨에 대해 “질병이 없는 상태에서 179㎝에 45㎏의 인체구조는 직립보행이 불가능한 육포 상태”라고 원색적으로 비난한 바 있다.
민주당 원외당협위원장 및 당직자 38명이 이 후보를 지지한 것도 여의도 정가에 무성한 뒷말을 양산하는데 기여했다.
지지율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는 이명박 후보의 이념적 정체성이 모호한 점도 17대 대선에서 유권자들을 헷갈리게 하는 대목이다.
‘정통보수’를 표방한 이회창 후보의 등장으로 일부 정책에서 ‘우향우’ 하기는 했지만 이 후보의 이념 스펙트럼은 상당히 넓기 때문.
이 후보는 유권자들에게 “한나라당 답지 않은 개혁파”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면서 이회창 후보에게 ‘신(新) 좌파’라는 비난을 받고 있지만 대북정책에 있어서는 강경한 입장을 밝히는 등 일종의 ‘이념 용광로’를 자처하고 있다.
자신의 모호한 정체성에 대해 이 후보는 “보수냐 진보냐 보다 실용주의를 표방한다”고 설명했지만 ‘정치인 이명박’에 대한 평가는 현재진행형이다.
민주당과 신당의 통합 협상이 결렬되고 문국현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도 진척을 보이지 않으면서 민주평화개혁 세력이 구심점을 잃고 표류하는 사이, 이명박 이회창 후보는 노선을 초월한 세 불리기에 전력을 다해 왔다. 양귀호기자
ghyang@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