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림은 누런 잎이고 곡령(鵠嶺)은 푸른 소나무라
계림은 누런 잎이고 곡령(鵠嶺)은 푸른 소나무라
  • 황미숙
  • 승인 2012.12.10 1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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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 신라의 문신 문창후(文昌侯), 최치원(崔致遠)
“어느 집 두 처자 이 버려진 무덤에 깃들어, 쓸쓸한 지하에서 몇 번이나 봄을 원망했나. 그 모습 시냇가 달에 부질없이 남아있으나, 이름을 무덤 앞 먼지에게 묻기 어려워라. 고운 그대들 그윽한 꿈에서 만날 수 있다면, 긴긴 밤 나그네 위로함이 무슨 허물이 되리오. 고관(孤館)에서 운우(雲雨)를 즐긴다면, 함께 낙천신(洛川神)을 이어 부르리.” 어느 날 최치원이 쌍녀분에 관한 시를 지어 읊었더니, 홀연히 취금(翠襟)이라는 시녀가 나타나 쌍녀분의 주인공인 팔낭자(八娘子)와 구낭자(九娘子)가 최치원의 시에 대해 화답한 시를 가져다주었다.

시를 읽고 감동한 최치원이 다시 두 여인을 만나고자 하는 시를 지어 보내고 초조히 기다리니, 얼마 뒤 이상한 향기가 진동하면서 아름다운 두 여인이 나타났다.

서로 인사를 나눈 뒤에 최치원이 두 여인의 사연을 듣고자 하였다.

원래 그들은 율수현의 부자 장씨(張氏)의 딸들로 언니가 18세, 동생이 16세 되던 해 그녀들의 아버지가 시집보내고자 하여 언니는 소금장수에게, 동생은 차〔茶〕장수에게 정혼하였다.

그러나 그녀들의 뜻은 달랐기에 아버지의 뜻을 따를 수 없었고, 그 때문에 고민하다가 마침내 죽게 되었다.

그리하여 두 여인을 함께 묻고 쌍녀분이라 이름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한을 품고 죽은 그녀들은 마음을 알아줄 사람을 찾았으나 만나지 못하다가, 마침 최치원 같은 수재를 만나 회포를 풀게 되어 기쁘다고 말하였다.

세 사람은 곧 술자리를 베풀고 시로써 화답하여 즐기다가 흥취가 절정에 이르자, 최치원이 서로 인연을 맺자고 청하니 두 여인 또한 좋다고 하였다.

이에 세 사람이 베개를 나란히 하여 정을 나누니 그 기쁨이 한량없었다.

최치원이 당나라에 있을 때의 일화에 관련된 문헌설화이다.

한 편의 설화이기는 하나 내용 구성면에서 다분히 소설적 면모를 띠고 있어 소설로 보는 경우도 있다.

이 설화는 원래 신라 ≪수이전≫에 있으며, ≪태평통재 太平通載≫ 권68에 실려 전한다.

≪대동운부군옥≫에 전하는 〈선녀홍대 仙女紅袋〉는 이 이야기의 일부이다.

최치원(崔致遠, 857~?)은 자가 고운(孤雲)또는 해운(海雲)이라고도 하였다.

경주 사량부(沙梁部) 사람이다.

6두품[득난得難]의 말단 관리였던 최치원의 아버지는 골품제도 아래서 신분의 한계를 체득한 사람이었다.

그가 당나라로 유학가려 할 때에도 적극적으로 후원하였다.

최치원은 당나라에서 유명 인사였다.

‘12세에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와 문장으로 중국을 감동시켰네. 열 여덟에 문단을 휩쓸어 한 화살로 금문책을 꿰뚫었네’ 중국의 한 유명한 문인이 최치원에게 바친 이 시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최치원은 당나라에 있을 때나 신라에 돌아와서나 모두 난세를 만나 포부를 마음껏 펼쳐보지 못하는 자신의 불우함을 한탄하면서 관직에서 물러나 세상을 유람하였다.

해인사(海印寺) 길목에는 신라의 최치원이 지팡이를 거꾸로 심었다는 전나무가 전하며, 말년에 그는 해인사에서 지냈다고 하나,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 알 수 없다.

세상의 전환기에 살다간 최치원은 유교사관에서 역사를 정리한 인물이다.

신라 《제왕연대력》에서 거서간(居西干)‧차차웅(次次雄)‧이사금(尼師今)‧마립간(麻立干)등 신라왕의 고유한 명칭은 모두 야비해 족히 칭할 만한 것이 못된다고 하면서 왕(王)으로 바꿨다.

훗날 김부식의 역사인식과 비견해서도 냉정한 면이 결여 되었다고 하겠으나, 그의 문장에서 보이는 유교와 불교의 조화에서 발견 할 수 있듯이 신라문화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새로운 사상운동으로서의 성격을 평가할 수 있다.

이미 기울어진 신라의 혼란 속에서 주어진 신분을 벗어날 수 없었던 최치원에게 “가을바람에 괴로이 읊나니(秋風唯苦吟)/ 세상엔 날 알아주는 이 없네(世路少知音)/ 창밖엔 삼경의 빗소리(窓外三更雨)/ 등불 앞엔 만 리로 내닫는 이 마음(燈前萬里心).” 을 추야우중(秋夜雨中)에 담아내고 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이를 위해 목숨을 버리고, 여자는 자신을 즐겁게 해 주는 이를 위해 화장을 한다고 했던가. 남녀의 구별이 지난 시대의 산물이라고 외쳐대도 아직도 존재하는 사회적 억압 속에서 여성은 소수자에 분류되고 있다.

그러나 당당히 여성 대통령을 구호로 내세워 후보 명단에 올렸다.

그리고 누군가는 그를 끌어 내리기 위해 출마했노라고 기염을 토한다.

여성을 내세워서 출마하고, 여성을 내세워 당선하려고 하면서, 여성에 대한 정책은 무엇인가. 그리고 여성이라는 이름위에 개칠하고 정작 여성을 제외한 여성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무엇을 기대할지 의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