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鷄林)에 날아가리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鷄林)에 날아가리
  • 황미숙
  • 승인 2012.11.19 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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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신라의 승려, 혜초(慧超)
신라 출신으로 당나라에서 활약한 밀교 승려인 혜초(慧超)는 인도여행기 〈왕오천축국전(往五天竺國傳)〉을 지었다.

혜초는 700년을 전후하여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그는 일찍이 중국 광저우[廣州]에서 인도 승려 금강지(金剛智)에게 밀교를 배웠다.

그 후 금강지의 권유로 구법여행에 나서 인도의 불교 유적을 순례하고 카슈미르, 아프가니스탄, 중앙아시아 일대인 서역까지 답사했다.

흔히 4대 여행기라 불리는 것은 8세기 초에 쓰인 혜초의 〈왕오천축국전〉이 가장 오래되었으며, 13세기 후반의 마르코폴로가 쓴 《동방견문록》, 14세기 초반 오도록의 《동유기》, 14세기 중반의 《이븐바투타 여행기》와 더불어 세계 4대 여행기로 평가받는 세계적인 대여행기이자 문명탐험기이다.

〈왕오천축국전〉은 1권으로 필사본이며, 두루마리 형태인데 일부분만이 현존한다.

혜초는 8세기 인도와 중앙아시아에 관한 것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기록이다.

당나라 장안으로부터 해상루트를 통해 동서남북과 중앙의 다섯 지방의 천축국 일대와 서역을 8년여 동안 여행하고 돈황으로 귀환하였다.

혜초가 장안으로 돌아온 때의 30세 전후였다.

그가 죽을 때가 80여 살이라고 하니 그는 당나라에서 50여 년 간을 더 살았다고 볼 수 있다.

혜초는 장안에 돌아온 후 장안에 있는 천복사라고 하는 큰 절에서 살았다.

그는 금강지(金剛智)를 스승으로 모시고 밀교(密敎-불교의 일종)를 닦고 불경을 번역하는 사업에 종사하였다.

그 후 혜초는 스승 금강지가 타계하자 대흥선사로 옮겨가 불공삼강(不空三岁)과 함께 불경을 깊이 연구하고 ‘밀교’라는 새로운 한 종파를 이룩하였다.

불공도 얼마 되지 않아 타계하였다.

불공이 남긴 유서 가운데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나에게는 지금까지 30여 년 동안 밀교의 비법을 전수해준 제자가 많다고 할 수 있다.

그 가운데서 5부[五部-밀교에서 금강계의 불부, 금강부, 보부(寶部), 연화부(蓮華部), 갈마부]의 경전을 연구하고 익혀서 일가를 이룬 제자만 하여도 여덟 명이 있었는데 지금 생존하는 이들로는 여섯 명뿐이다.

그들로는 함광, 신라의 혜초… 등이다.

”라고 하였다.

혜초는 불공삼장의 여섯 제자가운데서 두 번째 제자였다.

그가 신라인이라는 것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혜초는 ‘금강지―불공―혜초’의 계통에 따라 당나라 때 중국밀교의 정통을 이어받았다.

그러나 혜초는 신라로 귀국한 흔적은 없다.

당나라 광저우를 떠나 수마트라를 거처 동천축국에 도착한 혜초는 중천축국을 따라 다섯 달 정도가 지나서 남천축국에 도착하였다.

그리고는 시 한수를 읊고 있다.

“달 밝은 밤에 고향 길을 바라보니, 뜬구름은 너울너울 돌아만 가네.(月夜瞻鄕路 浮雲颯颯歸) 그 편에 감히 엽서 한 장 부치고 싶지만, 바람이 거세어 화답(和答) 안 되는구나.(緘書參去便 風急不聽廻) 내 나라는 하늘가 북쪽에 있고, 남의 나라는 땅 끝 서쪽에 있네.(我國天涯北 他邦地角西) 일남(日南)엔 기러기마저 없으니, 누가 소식 전하러 계림(鷄林)에 날아가리.(日南無有雁 誰爲向林飛)” 혜초는 몇 달의 여정을 통하여 몸에는 피로와 고달픔이 찾아오게 되어 고국의 그리움을 느끼게 된다.

당나라에서도 느꼈을 그리움이 기후도 풍속도 전혀 다른 먼 서역까지 와서 혼자 느끼는 그리움이 오죽 했을까 싶다.

이 시에서 등장하는 ‘계림’이란 글귀로 혜초가 신라승인 것을 밝힐 수 있었다고 한다.

혜초의 순례 길을 알려주는 〈왕오천축국전〉은 7세기 당나라 현장법사가 다녀와 지은 책인 《대당서역기》에 나타난 여행경로 보다 2배나 더 긴 여행을 하였다.

그리고 기록으로 남겨진 〈왕오천축국전〉은 1908년 3월 프랑스의 탐험가 펠리오가 중국 둔황[敦煌]의 천불동(千佛洞) 석굴에서 발견한 문서 속에 포함되어 있었으며, 현재 파리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인도에 있는 불교성지를 순례 방문한 것은 혜초가 제일 처음인 것은 아니다.

그보다 일찍이 6세기 초에 백제의 고승 성겸이 해로로 중인도에 가서 5년간 머물러 있으면서 범어(梵語)와 불경을 공부하고 돌아올 때 불경을 가지고 귀국하였다.

신라에서도 3국통일 이전에 이미 적지 않은 스님들이 불경을 배우려고 인도로 갔다.

그들은 그리운 자기 조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기록 하나도 남기지 못하였지만 머나먼 이국땅에서 항상 고향땅을 그리워하였을 터이다.

이처럼 목숨을 내건 험난한 여정이었지만, 혜초 또한 진리를 찾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과, 미지의 세계를 향한 호기심과 동경으로 이 모든 역경을 이겨냈던 것이다.

그리고 낯선 땅과 낯선 사람에 대한 다양한 풍경과 순례자로서의 감회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까지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