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는 둥근 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
백제는 둥근 달 같고, 신라는 초승달 같다.
  • 황미숙
  • 승인 2012.10.29 1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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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백제 31대 의자왕(義慈王)
‘의자왕’과 ‘삼천궁녀’는 언제부터 함께였을까? 전설에 의하면 의자왕의 궁녀였던 3,000명의 여인들이 사비성이 함락되자 낙화암(落花巖)에서 뛰어내리는 장면이 마치 꽃잎이 흩날리는 것 같았다고 한다.

시호조차 없는 백제의 마지막 왕은 정말 《삼국사기》에서 전하는 대로 음란과 향락에 빠져 정사를 등한시하고 간신들에게 놀아났던 것인가. 나라를 지켜내지 못한 군주(君主)에 대한 평가는 가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백제의 의자왕에게 더욱 그러하다.

의자왕(義慈王, 599~660, 재위 641~660)은 성은 부여(扶餘), 이름은 의자(義慈)이다.

의자왕은 태자 때부터 아우들과 우애가 좋고 사려가 깊어 ‘해동증자’(海東曾子)으로 칭송을 받았다.

의자왕은 무왕(武王)의 아들로 태어나 632년에 태자로 책봉되었다.

이때 그의 아들 융(隆)은 17세였다.

641년 3월에 아버지 무왕(武王)이 승하하자 그 뒤를 이었고, 당(唐)으로부터 주국(周國) 대방군왕(大方君王) 백제왕으로 책봉되었다.

그의 아들 부여융(扶餘隆)의 묘지(墓誌)에도 의자왕을 가리켜 ‘과단성 있고 침착하고 사려 깊어서 그 명성이 높았다’라고 평가되고 있다.

최근 일부 학자들은 의자왕을 개혁군주로 재평가하고 있다.

그러나 의자왕 집권 15년을 넘기면서 치세의 변화가 보인다.

그해 태자궁(太子宮)을 수리하였는데 대단히 사치했다는 《삼국사기》의 기록이 보이고, 이듬해에는 궁녀들과 더불어 주색에 빠져 마음껏 즐기고 술을 마시기를 그치지 않았다고 하였다.

한편 궁중의 훼나무가 사람처럼 울었다든가, 우물물이 핏빛으로 변했다든가, 하는 흉흉한 사건들이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데, 이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겠다.

역사란 늘 승자들에 의해 기록되고 전해지는 까닭에 이 기록들이 반드시 일어난 일이라고 하기에는 허구가 강하다.

그러나 당시에 의자왕의 왕권강화에 귀족층들이 반발하고 이로 인해 백제의 지배층이 흔들리고 있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대좌평 사택지적(砂宅智積)이 은퇴하고, 성충(成忠)이 투옥되고, 좌평 흥수(興首)가 유배를 간 것이 모두 그 즈음의 일이다.

성충은 죽을 때 왕에게 글을 올려 말했다.

백강과 탄현의 험한 지형지물을 이용해, 나‧당 연합군이 이곳을 모두 통과하기 전에 가두어 놓고 처치해야 한다는 충언을 남기고 굶어죽었다.

그러나 의자왕은 대응하지 못하고 실패한다.

그리고 의자왕은 황산벌에서 계백(階伯)에게 5천의 군사를 주어 막게 했지만, 백제군의 열 배나 되는 신라군의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계백과 그의 군사는 전멸하였다.

백강 어귀에서 ‘조롱 안의 닭을 죽이고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잡듯, 당나라군의 상륙을 저지하려던 백제군은 대패하였다.

사비성 부근에서도 결전이 벌어졌으나 백제군 1만이 전사하며 대패하고 백제는 항복하기에 이른다.

의자왕의 항복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나, 《삼국사기》 태종무열왕본기는 의자왕이 태자 및 웅진 방령군을 거느리고 스스로 웅진성을 나와 항복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백제가 멸망하기 불과 5년 전만 해도 백제는 신라를 공격하여 30여 성(城)을 빼앗았다는 기록이 전할 만큼 적극적인 정복사업을 벌리었다.

그러나 의자왕이 나‧당연합군의 공격을 받고는 무기력하게 나라를 잃었다.

660년 12월 의자왕은 당나라로 끌려와 북망산(중국, 낙양)의 혼령이 되었다.

충남 부여는 1995년 2월, 의자왕(義慈王)이 묻혀 있는 곳으로 알려진 중국 낙양시 북망산(北忘山) 지역을 조사한 결과, 발굴에 어려움이 있어 의자왕릉(義慈王陵) 추정지의 영토(靈土)를 봉안하여 왔다.

지난 2000년, 중국 북망산에서 가지고 온 영토(靈土)를 부여 능산리에 안치했다.

“강산이 이처럼 아름다우니(江山如此好), 의자왕은 무죄일세(無罪義慈王).” 의자왕의 심정을 대신 읊어준 것인가? 망국의 설움을 안고 떠난 땅으로 돌아올 수도 없는 영혼이 아직도 방황한다는 겐가. 천년의 역사 신라도, 칠백여년의 고구려도 백제도 마지막 군주를 남기었다.

그리고 새로운 하늘과 새로운 사람들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었다.

그러나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 있다는 겐가. 새로운 정권을 준비하는 이들에게 의자왕이라면 무엇을 말해줄 수 있을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