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 먼저 공룡돼야 산다\"
“국내 금융 먼저 공룡돼야 산다\"
  • 신아일보
  • 승인 2007.11.1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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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해춘 우리銀행장 “인수·합병 통한 대형화 강조”
글로벌 무한경쟁 금융권 M&A 피할 수 없는 과제

“국내 은행들의 자산을 모두 합해도 씨티나 UBS와 같은 글로벌 은행 1곳의 절반 규모도 안된다" 박해춘 우리은행장은 최근 모 경영대학원 특강에서 인수·합병(M&A)을 통한 대형화를 강조했다.
글로벌 무한경쟁에 직면한 국내 금융권에 M&A는 피할 수 없는 과제가 됐다. 하지만 벽은 여전히 높아 ‘새로운 10년'의 성공 여부를 가르는 중대한 변수가 될 전망이다.
◇‘메가머저'의 시대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 컨소시엄은 지난 10월 초 네덜란드계 ABN암로를 1010억달러(92조원 상당)에 인수했다. 규모는 웬만한 국가의 한해 예산과 맞먹는 초대형이다.
RBS는 ABN암로의 미국 자회사 라살은행을 투자은행부문에 흡수합병해 미국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함께 컨소시엄에 참여한 스페인의 산탄데르은행(BSCH)은 ABN암로의 브라질법인을, 벨기에 및 네덜란드계 포티스은행은 ABN암로의 네덜란드법인과 자산운용부문을 각각 인수해 현지 기반을 크게 다졌다.
반면 인수전에서 고배를 마신 바클레이스은행은 세계 6대 은행으로 도약한다는 꿈을 접어야 했다.
이처럼 선진 금융회사들은 상상을 초월하는 규모의 M&A를 통해 거대 금융그룹으로 변신하고 있다. 초대형 은행의 역사는 대부분 확장이었고, 새로운 성장엔진을 마련하는데 M&A만큼 효과적인 수단은 없었다.
금융연구원 연구에 따르면 미국 상위 15개 은행의 시가총액은 90년 23조원에 불과했으나 2005년 1100조원으로 50배 가까이 급증했다. 반면 유럽·아시아권 은행들은 같은 기간 10배 내외의 성장에 그쳤다. 명암을 가른 것은 M&A였다.
미국에서는 대형 은행간 합병이 계속되면서 자산규모 1조달러를 넘어서는 ‘메가뱅크' 시대가 열린 지 오래다. 씨티, HSBC, 뱅크오브아메리카(BOA), JP모간체이스의 ‘세계 4대 은행'은 5위권 이하 은행들을 압도하고 있다.
◇한국, ‘갈 길 멀다'
국내 주요 은행들도 합병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쓰고 있다. 외환위기 직후 ‘비자발적' M&A에 가세한 은행들은 최근 ‘적극적으로' 비은행 금융회사를 사들이거나 신설하며 종합금융지주회사로 변신 중이다.
2001년 출범한 신한금융지주는 신한은행, 제주은행, 신한카드, 굿모닝신한증권, 신한생명, 신한캐피탈, SH자산운용 등을 자회사로 두었고, 우리금융지주는 우리은행, 광주은행, 경남은행, 우리투자증권, 우리CS자산운용, 우리파이낸셜, 우리금융정보시스템 등을 거느린 금융그룹으로 성장했다. 14일 한누리증권 인수를 확정한 국민은행은 서민금융·보험업을 아우르는 종합금융그룹으로 변신한다는 전략이다.
그러나 국내 금융권의 M&A는 세계적 ‘메가딜'과 비교할 때 미미한 수준이다. 박해춘 행장의 지적대로 지난해 말 국민·우리·신한금융·농협·하나금융·외환·기업은행 7개 금융회사의 기본자본은 모두 470억6000만달러. ABN암로를 인수하기 전 RBS의 485억달러에도 못미친다.
기본자본 기준으로 국내 금융사 7개가 아시아 25위권에 들어있지만 국민은행(115억7300만달러)조차 아시아 5위, 세계 51위에 불과하다.
글로벌 전략컨설팅사 AT커니의 신용규 부사장은 “2012년 아시아 10대 은행이 되려면 자산규모가 500조원은 넘어야 한다"며 “이제는 한국에도 ‘메가뱅크'가 등장할 시점이 왔다"고 말했다. 국내에 메가뱅크가 등장한다면 해외 진출이나 해외자본 유치는 지엽적인 이슈가 된다는 게 그의 판단이다.
◇M&A제도 개선 시급
국내 금융회사들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이인호 신한지주 사장은 “비은행부문을 강화하기 위해 국내외에서 M&A를 적극 검토해 나가겠다"며 “2012년까지 세계 50위, 아시아권 10위권의 대형 금융지주사로 키울 것"이라고 ‘공약'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도 “경영권 인수가 허용된 국가에서는 그에 상응하는 지분을 사겠다"며 강한 의욕을 보였다.
이를 위해서는 정책·감독당국의 지원이나 규제 완화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현재 금융·보험업의 해외직접투자는 재정경제부 장관 신고수리 사안이며, 투자계획 등의 심사를 받아야 한다. 또 은행이 외국 금융기관을 소유하기 위해 해당 회사에 15% 이상 출자할 경우 금감위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금융권에서는 대형화·겸업화 시대를 맞아 대형 투자은행의 출현을 촉진하기 위해 M&A 예비인가를 생략하거나 합병차익의 과세를 이연하는 등의 보완책이 시급하다는 입장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과거와 달리 금융권의 자발적 필요에 의해 국경을 넘는 M&A가 늘어날 것"이라며 “정부 및 감독당국의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