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도한 역사의 강물에는 순국선열의 넋이 흐른다
도도한 역사의 강물에는 순국선열의 넋이 흐른다
  • 신아일보
  • 승인 2007.11.14 1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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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훈 동해해양경찰서 5001함장

흔히 ‘국가는 있으나 국민은 없다’는 말을 한다. 사회가 배타적 이기주의와 금권이 제일이라는 저속한 야합에 물든 데서 기인한 말임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바야흐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철이 돌아왔다. 자라나는 이 땅의 청소년들은 국가에 대한 충성도(loyalty)를 얼마나 가지고 있을까. 국가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할 수 있는 애국심 투철한 지사적 충정을 가진 청소년들이 있을지 의문이다. 물론 위기의 상황에서 빛을 발하는 한민족의 저력과 응집력을 간과하는 바는 아니지만 짜릿하고 자극적인 쾌감에 익숙해져 있는 신세대들의 모습에 대한 기성세대의 공통된 우려일 것이다.
오는 11월 17일은 순국선열의 날이다. 풍전등화처럼 위태로운 국난에 직면했을 때 우리에게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있어 위난을 극복할 수 있었다. 일제시대에는 안중근 의사, 유관순 열사, 김구 선생이 대표적이고 그 외에도 수많은 독립투사들이 있었다.
민족상잔의 비극 6.25때는 변변한 전투함과 전투기도 없이 소총 한 자루 들고 이름 없는 조국의 산하를 지켜낸 무명용사들이 그러했고, 4.19와 5.18 등 질곡 많은 현대사 속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자신을 불사른 수많은 민초들의 의기 또한 빼놓을 수 없는 호국의 영령으로 기억해야 할 것이다.
1년 중 6월 6일 현충일과 11월 17일 순국선열의 날에만 그들을 기리는 반짝 sale같은 의식만으로 그들의 숭고한 넋에 대한 예우를 마쳤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들이 왜 국가를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바쳤는지에 대한 엄숙한 고민이 있어야 한다. 특히 일제 강점기의 비통함과 전쟁의 참혹함, 민주주의에 대한 갈망 중 어느 것도 경험하지 못한 소위 ‘풍요로운 대한민국 1세대’인 1980년대 이후 출생한 대학생 및 청소년층에게는 더욱 절실하다.
2002년 월드컵에서 보았듯이 ‘철없는 10대’로만 여겼던 그들이 하나의 공통된 가치를 향해 포효하는 에너지는 전 세계를 경악시켰을 정도로 인상 깊고 장대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스포츠를 통한 승부욕의 발로와 순수한 애국심이 혼돈되어서는 안된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우리나라 축구팀을 향해 보여 주었던 청소년들의 집단행동은 엄밀히 말하면 애국주의 보다는 쇼비니즘 즉, 국수주의에 가까웠다는 것이 당시 지배적인 여론이었기 때문이다.
저명한 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도전과 응전의 역사’라는 말로 인류의 발전과 진보를 함축했다. 뉘라서 저 도도한 역사의 강물을 거역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원했든, 원하지 않았든 자연으로부터 혹은 인간으로부터 숱한 도전과 위협을 받아왔고 그때마다 나라와 민족을 위해 자신을 내던진 순국선열들의 거룩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번영과 안정이 있는 것이다.
기성세대들의 안정된 국가관과 자유와 평화, 그리고 민주주의에 대한 강한 열망을 토대로 자라나는 우리 ‘풍요로운 대한민국 1세대’인 젊은이들의 진취적이고 글로벌화된 경쟁력이 빛을 발해 대한민국이 더욱 부강해지길 기원한다. 세계적인 수준에 올라있는 박지성, 박태환, 김연아 등 자랑스러운 우리의 아들딸을 보라. 과거 세계무대와는 요원해 보였던 우리의 한계를 뛰어넘어 연일 지구촌을 뜨겁게 달구는 그들의 위업이야말로 21세기형 애국애족의 가장 이상적인 실현이 아니겠는가.
목숨 바쳐 지켜낸 이 나라를 세계 속에 빛내고 있는 그들에게 순국선열들도 대견한 박수를 보낼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이 곳에 오게 됐는지에 대한 명확한 역사의식과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에 대한 냉철한 국가관은 너무나 중요하다.
이제 다가오는 순국선열의 날을 맞아 다시 한번 조국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순국선열의 숭고한 넋을 기리고 그 분들의 업적을 재조명하는 노력이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