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듣는 정부를 기다리며
말 잘 듣는 정부를 기다리며
  • 신아일보
  • 승인 2007.11.03 1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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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석규 전북생명의숲 공동대표

"이번 선거에서 프로크루스테스를 뽑는 우를 범해서는 안돼"
시대정신을 논하는 시기이다. 그리고 모두가 자신이 시대정신이라고 강변한다. 경제성장이 시대정신이고, 실업해결이 시대정신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다. 시대정신 이란 한 시대의 사회, 문화적 소산에 공통된 인간의 정신적 태도, 양식 또는 이념을 말한다. 과거를 성찰하며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전망하는 가치의 집약 그것이 바로 시대정신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역사가 말해 주듯이 시대정신은 본질적으로 미래가치여서 현재의 불특정 다수의 견해와는 다른 의외의 선택을 하곤 하였다.
그런데 이러한 시대정신을 왜곡하여 해석하려는 시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스신화에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자가 등장한다. 아테네 교외의 케피소스 강가에 살면서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데려와 쇠침대에 눕히고 침대길이보다 짧으면 다리를 잡아 늘이고, 길면 잘라 버리는 악행을 저지른 자였다. 작금의 상황을 돌아보면 과거 개발시대의 망상에 사로잡혀 대운하라는 침대에 국민을 억지로 맞춘다거나, 전도 불확실한 대북사업낙관론 이라는 침대에 국민을 억지로 꿰맞추려는 시도가 이뤄지고 있다. 개인, 혹은 이를 추종하는 일부 집단이 세운 일방적인 기준에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억지로 맞추려는 아집과 편견이 횡행 하고 있다. 자신의 주관 속에 국민을 몰아넣고 가치관을 강요하는 구태의 반복이다. 자신의 안에서 모든 것이 바뀐다는 발상은 적어도 미래가치를 지향하는 시대정신이라 할 수 없다. 참으로 주객이 전도된 시대착오적 발상 이다.
해방 이후 우리 사회의 시대정신은 건국, 산업화, 민주화로 이어져 왔다. 나라를 새롭게 세우고, 먹고 살기 위한 경제발전을 추진하며, 인권과 민주주의를 모색해 온 것은 이 땅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 수 없는 지상 과제였다. 그러나 시대정신이 모두 온전히 성취되어온 것은 아니다. 지난 현대사를 돌아봐도 그것은 대부분 불완전하게 이루어져 왔다. 건국은 분단국가의 형성으로, 산업화는 정치적 억압 및 사회적 배제를 수반한 공업화로, 민주화는 경제ㆍ사회적 개혁을 제대로 성취하지 못한 민주주의로 진행돼 왔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현재 우리 사회가 가져야 할 시대정신은 무엇인가? 국민은 새로운 시도와 불완전한 결과에 너무도 지쳐있다. 이제는 국민에게 강요할 때가 아니라 국민에게 귀를 기울여야 할 때이다. 쏟아지던 개혁을 하나하나 정리하여 결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후 나아갈 방향을 국민에게 묻고, 들어야 한다.
그러나 현 대선정국의 후보들은 성장과 부국에 대한 국민의 바람을 자신의 패러다임 속에 가둬버린다. 대운하를 만들지 않으면 성장을 이룰 수 없다든지, 해주에 공단을 만들어야만 성장을 할 수 있다는 식의 자기검증 없는 강요를 국민에게 하고 있다. 국민은 너무도 피곤하다. 산업화란 톱니바퀴에 끼어 숨소리 조차내지 못하였고, 민주화란 질풍노도와 같은 명분에 편향적인 사상마저도 강요받아야 했다.
따라서 이런 피곤한 국민들과 함께 그 부조리한 현실 속에서 함께 부침해온 후보. 그를 선택해야 한다.
특히 산업화시기 민주화시기에 온몸으로 스스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중용을 이해하는 후보, 국민에게 강요하지 않고 국민의 소리를 듣고 균형을 잡을 수 있는 후보가 그 대안이다.
이런 후보는 한국현대사의 미완의 과제로 남아있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재평가하고, 그 결과를 기반으로 한국사회의 새로운 방향을 겸손하게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단언컨대 이번 대선의 시대정신은 강요하지 않는 정부, 말 잘 듣는 정부, 편안한 정부 이어야 한다. 끝도 보이지 않는 거대한 개발 사업이나 손익계산서도 없는 대북낙관론에 기대를 걸라며 강요하는 후보는 더 이상 안 된다.
산업화라는 명분에 치여 아직도 어지럽게 비틀거리는 민생 정책의 균형을 잡고 민주화라는 허상 속에 무분별하게 쏟아진 개혁을 정리 할 수 있는 후보, 세파에 갈고 닦여 이제는 거울 앞에서 스스로를 겸허하게 바라볼 수 있는 후보가 우리시대의 유일한 대안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프로크루스테스를 뽑는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