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用人不疑)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말라(用人不疑)
  • 황미숙
  • 승인 2012.08.20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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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삼국의 오나라, 손권(孫權)
손권(孫權 182~252)는 손견(孫堅)의 아들로 자는 중모(仲謀)이다.

머리는 네모나고 입이 크며 눈은 파랗고 수염을 붉어, 일찍이 한신 조정의 사신 유완(劉琬)은 그의 비범한 풍모를 찬양하여 제왕의 기상이 있다고까지 하였다.

손권은 병술가 손무(孫武)의 후예라고 한다.

후한 말에 손견(孫堅)이 요적과 황건적 토벌에 공적을 세우고, 원술(袁術)과 손을 잡았으며 원술의 상서로 파로장군이 되었다.

또한 동탁(董卓)을 대파하여 낙양(洛陽)에 들어갔으나 형주목(荊州牧) 유표(劉表) 정벌 때 샹양(襄陽)에서 사살되었다.

아들 손책(孫策)이 계승했으며 강수(江水)를 건너서 회계(會稽)를 근거지로 삼고 원술과 헤어졌다.

그 뒤로 손책의 아우 손권(孫權)이 계승하여, 장소(張昭), 주유(周瑜), 정보(程普) 등을 중용했다.

유표가 죽은 뒤 조조가 남하하여 형주를 점령하려고 했으나 손권이 유비(劉備)와 동맹하였다.

208년 적벽(赤壁) 싸움에서 조조를 대파하고 영남(嶺南)을 귀속시켰으며 영토를 다시 타이완(臺灣)과 인도차이나까지 확장했다.

손권은 유비와 형주의 귀속문제를 둘러싸고 다투다가 양보를 받아 형주의 중부지방을 차지했다.

유비는 남부를 귀속했는데, 손권은 그곳에 머물러서 수비하던 관우(關羽)를 죽이고 그곳도 병합했다.

조조가 죽은 뒤에 조비(曹丕)가 헌제(獻帝)의 선양을 받아 문제(文帝)가 되어 220년 위(魏)나라가 성립되었다.

문제는 손권을 번병(藩屛)으로서 오왕(吳王)에 봉했다.

그러자 유비가 위나라에 대항하여 촉(蜀)이라고 제호(帝號)를 정하였고, 222년 손권도 스스로를 오왕이라 칭하고 건국을 해서 악(鄂)에 도읍을 정하였으며, 229년 황제에 즉위, 건업(建業;南京)으로 천도했다.

손권은 19살 때, 부친 손견과 형 손책의 뒤를 이어서 71세에 사망할 때까지 52년간 오나라를 통치했다.

조조와 유비에 비하여 국세가 가장 약한 손권은 그만큼 나라를 이끌어 가는 일이 어려웠다.

그러나 그가 장수하고, 오나라를 통치 할 수 있었던 것은 나름의 용인술을 갖추었기 때문이었다.

손권의 용인술은 주유가 적벽대전에서 육손이 이릉대전에서 승리하여 강동의 기반을 굳혀 천하삼분의 기초를 닦을 수 있었다.

모든 것을 군신에게 맡긴 손권의 인간경영은 창업보다 수성에 성공한 이유인 것이다.

손권은 스스로 “나는 늘 상대의 장점을 높여주고, 단점을 곧 잊어버린다.

”고 하였다.

즉 사람이 의심되면 기용하지 말고, 사람을 쓰면 의심하지 않았던 것(疑人不用 用人不疑)이다.

오늘날 지도자들이 새겨야 할 부분이기도 하다.

조비의 발아래에 거침없이 엎드려 신하가 될 것을 간청 할 수 있었던 것은 의리와 체면에 개의치 않으며, 수시로 동맹의 대상을 바꾸어 오나라의 안전을 도모 할 수 있었던 손권만의 연횡술 이었다.

사서의 기록에 따르면, “손권은 장사들을 다독거리는데 능하고, 신하들이 죽어라 힘쓰게 하는데 능했다.

장사들은 모두 자신의 몸을 바쳐 주군을 위하여 일하고자 했다.

”고 전한다.

능통(凌通)이 일찍 죽게 되어 아들이 아직 어리자, 손권은 그의 어린 아들을 궁중에 데려와서 부양해주었고, 자기 아들처럼 아꼈다고 한다.

또한 여몽이 병들자, 손권은 그를 내전에 두고 치료해주었으며, 돈을 아끼지 않고 좋은 명의와 명약을 구했다.

그리고도 손권은 자주 여몽을 찾아가서는 몰래 살펴보고 돌아왔다고 한다.

한번은 주태(周泰)가 전선에서 돌아왔는데, 손권이 친히 주태에게 술을 따라 주었고, 주태에게 옷을 벗어보라고 했다.

손권은 친히 주태의 몸에 난 상처를 어루만지면서 그 유래를 물어보았다.

주태가 하나하나 다 말하고 나자, 손권은 눈물을 흘리면서 말했다.

“주장군. 당신은 우리 손씨 형제를 위하여 전투에 나가서 전투를 벌이며, 생명을 아끼지 않았다.

내 어찌 그대를 골육처럼 가까이 여기지 않을 것이며, 병마의 권한을 부여하지 않을 것인가? 나는 그대와 기쁨과 슬픔을 함께할 것이다.

”라고 하자 주태도 감격해 마지않았고,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로 그에게 감복했다.

이와 같이 손권은 신하에게 은혜와 신뢰를 베풀어 천하를 삼분할 수 있었던 리더십이 무엇인가를 보여주었다.

결국 나관중의 “천하대세는 통일한지 오래되면 반드시 분열하고, 분열한지 오래면 반드시 통일 된다(分久必合 合久必分)”라는 생각은 최소한 삼국의 역사 속에서는 증명 되었다고 하겠다.

인재는 구해서 얻어지는 것이다.

스스로 나서는 자가 어찌 인재이겠는가. 이들이 어찌 어려움을 함께 도모하겠는가. 또 다시 세력 있는 자에게로 찾아 떠나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