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배려도 큰 행복을 낳는다
작은 배려도 큰 행복을 낳는다
  • 김 강 정
  • 승인 2012.08.16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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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 MBC 기자 시절 도쿄에서 있었던 일이다.

우리 일행은 세계경제 특집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미국과 유럽을 거쳐 일본을 취재 중이었다.

우리는 도쿄 시내 중심부에 있는 한 작은 공원에서 일을 마친 뒤 장소를 옮겼다.

갑자기 일행 중 한 사람이 무척 당황하는 모습이었다.

공원 벤치에 가방을 놓고 왔다는 것이다.

당시 유행이던 고급 007가죽가방인데다 여권, 현금, 원고 등 귀중품이 모두 들어있다고 했다.

정말 큰 일이었다.

그러나 벌써 세 시간 이상 지나버려 과연 찾을 수 있을 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걱정하지 말라는 안내인의 위로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취재팀장이라는 입장이라 더욱 난감했다.

허겁지겁 한 시간 가깝게 차를 달려 그 공원에 도착했다.

이미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걱정한대로 그 벤치에 가방은 없었다.

가슴이 철렁했다.

공원 구석에 경찰파출소가 있었다.

자초지종 설명을 듣던 경찰관이 간단한 신분확인을 한 뒤 보관 중이던 문제의 가방을 돌려주는 것이 아닌가! 한 시민이 공원에서 발견, 파출소에 맡겼단다.

모든 물건이 그대로 있었다.

당사자는 물론 일행 모두 얼마나 고맙고 반가웠는지 모른다.

어렸을 때 책에서나 배웠던 선진국 사람들의 정직한 모습과 행동을 직접 체험하는 순간이었다.

큰 감동과 흥분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게는 25년이나 된 색도 바래고 낡아빠진 가죽 장갑 한 켤레가 있다.

80년대 중반 뉴욕특파원시절 겨울철 집 앞 눈을 치울 때 쓰던 것이다.

어쩌다 아직까지 가지고 있었다.

올해 초 등산을 다녀왔다.

눈 덮인 겨울 산이 매우 아름다웠다.

산 입구에서 등산차림을 점검하다 보니 장갑 한 짝이 없어졌다.

오랜 기간 정들었던 바로 그 장갑이 말이다.

차 안이나 길에 떨어뜨렸나 하고 산 아래 주차장까지 내려가 보았다.

어디에도 없었다.

진작 버렸어야 할 만큼 낡은 것인데도 꽤 섭섭했다.

귀중품을 잃은 듯 허전했다.

할 수 없이 꽤 비싼 등산용 장갑을 사야 했다.

눈 산이 너무 좋아 이틀 뒤 다시 그 산에 올랐다.

기분 좋은 피로를 느끼며 돌아왔다.

그런데 이게 왠 일인가! 아파트 지하 주차장 출입구 앞 철제 난간에 내가 잃어버렸던 바로 그 장갑 한 짝이 걸쳐져 있는 게 아닌가! 누군가 주차장 바닥에 떨어져 있는 것을 주워 눈에 잘 띠는 곳에 놓아둔 모양이다.

주차장 구석으로 툭 차버려도 그만이었을 텐데 굳이 일부러 주워서 옮겨 놓은 것이다.

값진 물건을 되찾은 느낌이었다.

무척 반갑고 고마웠다.

이날은 산에서도 마음 뿌듯한 광경을 보았다.

배낭을 맨 채 가장 힘든 깔딱고개(?) 계단을 오르는 노인이 있었다.

일흔이 넘어 보였다.

그는 등산로 계단 옆에 떨어진 쓰레기들을 열심히 집게로 주어 비닐 봉지에 담으며 오르고 있었다.

그냥 맨몸으로 오르기도 힘들 텐데 말이다.

참 아름다워 보였다.

왠지 부끄러운 생각도 들었다.

아주 기분 좋은 하루였다.

모든 피로가 한꺼번에 녹아 내렸다.

남을 배려하는 마음은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한 없이 아름답고 우리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앞으로도 산행 때는 새로 산 고급(?) 등산용 장갑 대신, 잃었다 다시 찾은 낡은 가죽장갑을 더 애용하고 싶다.

이 글은 선진사회 만들기 길라잡이'선사연'의 홈페이지(www.sunsayeon.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