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사한 영웅(亂世奸雄)
어지러운 세상에서는 간사한 영웅(亂世奸雄)
  • 황미숙
  • 승인 2012.08.06 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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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삼국의 위나라, 조조(曹操)
나관중의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를 읽은 이들은 등장인물에 대한 평을 한번쯤을 해 보았으리라. 누구를 좋아 하는지, 왜 좋아하는지 까지 구체적인 이유를 들어가며 의견이 분분하였으리라. 《삼국지연의》에 대한 우리의 애정은 남다른데가 있다.

조조와 유비에 대해 나관중과 진수의 평가는 차이가 있다.

이렇듯 두 인물에 대한 평가가 시대별로 엇갈리는 만큼 이들에 대한 대중의 사랑이 오랜 시간 이어져 갈 것이다.

그러나 조선 중기의 성리학자 기대승은 선조임금에게 경연에서《삼국지연의》가 괴상하고 허탄한 일과 근거 없는 말로 부연하여 만든 것이라며, 의리를 심히 해치는 책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조조는 한나라 말에 나라를 위협한 황건(黃巾)의 난을 진압하면서 장군으로 고위직에 올랐다.

한나라는 황건의 난으로 인해 세력이 크게 약화되었고, 그 뒤를 이은 대혼란 속에서 중국은 군벌들이 통치하는 3국으로 분열되었다.

조조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북방지역을 점령하고 점차 제국의 대권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의 지략은 중국 역사에서 오랫동안 악명이 높았다.

그는 14세기의 위대한 역사소설 《삼국지연의》를 비롯하여 중국의 민간전설에서 유명한 인물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전설 등에서 그는 종종 사악한 마술적인 힘을 가진 인물로 등장한다.

그러나 근대의 역사가들은 그를 노련한 장군이자 실제적인 정치가로 보는 경향이 강하다.

조조(曹操 155~220)의 자는 맹덕(孟德)이며 묘호(廟號)는 태조(太祖)이다.

그리고 시호는 무황제(武皇帝)라 추존되었다.

조조는 후한 건안 5년(200)에 중원의 패권을 놓고 2개월 동안 원소와 결전하였는데, 조조가 대승하여 천하쟁패의 기틀을 닦았다.

진수의 《삼국지》에 의하면 원소의 군사는 총 10여 만이었고 조조의 군사는 1만에 불과하였으나 패전 후 원소는 겨우 8백여 기의 패잔군을 거느리고 도망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원소가 조조의 열배가 되는 병력을 가지고도 관도대전에서 대패하였으나 조조는 군대를 거두고 추격하지 않은 까닭은 원소를 느슨히 풀어주어 나라를 혼란하게 만들기 위했다는 것이다.

이때에 원소는 패전 이후에도 더욱 교만해졌고 충신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으며, 적?서자가 서로 다투어 이내 후계자를 정하지 못하였다.

원소의 패배는 형주의 유표와 유비, 손권에게도 영향을 미쳐 적벽전투로 이어진다.

전투의 승리를 앞둔 조조가 급하게 몰아쳤더라도 원소를 일거에 소탕하여 멸망시키지는 못했을 것이다.

조조의 걸출한 지모와 결단력은 화북의 지배를 확립하고 세력을 강화하여 촉의 유비, 오의 손권과 더불어 천하를 3분하게 되었다.

조조는 과연 냉혈의 간웅(奸雄)이었던가. 아마도 조조를 냉혈의 인물로 기억하는 것은 여백사의 일가를 죽이는 대목일 것이다.

조조가 동탁을 피해 도망 가다가 여백사의 집에 머물게 되는데, 접대를 위해 부엌에서 칼을 가는 소리를 위심하여 일가를 몰살하게 되었다.

그러나 여백사에 관련이야기는 여러 역사서에서 다양하게 설명 되는데 《삼국지연의》에서 나관중이 유비를 주인공으로 삼으면서, 결정적으로 조조를 간계하고 냉혈한 인물로 만들어 놓은 듯하다.

진수는 《삼국지》〈무제기(武帝記)〉에서 조조는 지모와 책략이 출중하고 영웅적인 자질이 뛰어났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문인으로서도 재능이 뛰어났던 조조는 적벽 전투 중에 달빛이 밝은 양쯔강의 밤경치를 바라보며 뱃전에 서서 취중에 지어 부른 노래가〈단가행(短歌行)〉이다.

〈단가행〉가운데 “달 밝고 별을 드문데, 까막까치는 남쪽으로 나네.(月明星稀 烏鵲南飛)”라는 구절은 북송 때의 시인 소동파가 지은 〈적벽부〉에도 인용되었다.

천하를 호령했던 영웅 조조에게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비애는 어찌 할 수 없었나 보다.

늘 세상은 어지러워 보인다.

그러나 조조와 유비, 손권이 살아갔던 시대는 더욱 혼란스러운 시대였으리라. 그러나 조조의 용인술은 그 누구보다도 탁월하다.

조조는 온갖 유형의 인물들을 두루 갖추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걸출한 인물을 만들어갔다.

관우를 자기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 애쓰는 조조의 지극정성은 눈물겹기까지 하다.

사람의 잠재력을 알고 필요한 때에 적절하게 골라 쓰는 인재 기용을 살펴본다면 조조는 난세의 영웅이라 할만하다.

아군 아니면 적군이어야 하는 시대, 서로에게 칼을 겨누어야 하는 시대 속에서 조조가 음모와 지략에만 의지해서 그 많은 인재들이 모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 훌륭한 인재들이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어야 한다.

인재를 구하는 것은 모두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준비물 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