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尺]에도 짧은 바가 있고, 치[寸]에도 긴 바가 있다.
자[尺]에도 짧은 바가 있고, 치[寸]에도 긴 바가 있다.
  • 황미숙
  • 승인 2012.07.30 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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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전국시대 진나라의 명장, 백기(白起)
백기(白起, ? ~ 기원전 257년)는 중국 전국시대 진나라의 명장이다.

백기는 진나라가 천하를 통일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다.

특히 초나라를 공격하여 도읍을 빼앗아 천도하게 하고, 초나라를 쇠약하게 만들었다.

소왕 14년 한나라?위나라를 공격하여 이궐(伊闕:낙양 용문)에서 24만 명을 참수하고 위나라 장수인 공손희를 포로로 잡았으며, 5개성을 함락하였다.

그리고 진나라가 동진할 수 있는 길을 열었다.

그 후 조나라를 치고 초나라 도읍을 함락시킨 공로로 무안군(武安君)에 봉해졌다.

소왕 14년, 백기는 한나라의 남양을 점령하고, 소왕 15년 야왕(심양)을 함락하여, 상당을 한나라 수도와의 연결을 끊었다.

한나라는 상당을 떼어주고 화평을 원했는데, 상당군의 군수 풍정이 이를 듣고는 상당의 17개 성을 조나라에 바쳤다.

풍정은 진나라를 자극해서 조나라를 공격하게 하면, 조나라와 한나라가 손잡게 되어 진나라를 물리치지 않겠냐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기원전 261년, 진나라는 조나라를 공격하고, 상당을 함락시켰다.

조나라의 장군 염포가 장평(長平)을 굳게 지키고 있었어, 진나라의 오랜 공격에도 함락시키지 못하였다.

진나라 재상 범수가 이간책을 썼다.

“진나라에서 두려워하는 사람은 마복군 조사의 아들 조괄이다.

염파는 상대하기 쉽고, 또 머지않아 항복할 것이다.

” 이때에 조나라 효성왕은 염파가 싸우지 않는다고 책망하며, 조괄을 보내어 진나라를 공격하게 하였다.

조괄은 전선에 도착하자마자 출병시켜 진나라 군대를 공격하였다.

그러나 진나라 백기는 거짓으로 패주하면서 2만 5천명의 복병을 배치하고 습격준비를 하였다.

조괄은 곧바로 군대를 몰아 진나라 보루에 도착하였으나, 복병에게 후방을 차단당했고, 식량보급로 마저 끊어졌다.

조나라 군사들은 서로 죽여 잡아먹기에 이르렀고, 조괄은 정예병사들과 탈출을 시도했으나 전사하였다.

조괄이 죽자, 휘하의 병사 40만 여명이 백기에게 투항하였다.

그러나 백기는 속임수를 써서 그들을 모두 구덩이에 매장해 버렸다.

그리고 어린아이 249명만 돌려보냈다는 소식을 들은 조나라 사람들은 공포에 떨었다.

백기는 장평일전에서 조나라 군대 45만 명을 섬멸하였고, 진나라가 중원을 장악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중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포위 섬멸전의 기록을 세웠다.

이후 크고 작은 70여회의 전투에서 한 번도 패한 적이 없다.

일개의 무관에서 무안군에 봉해질 때 까지 6국에서는 백기의 이름만 들어도 간담이 서늘해 졌다.

백기는 적과 아군의 형세를 분석한 후 전략, 전술을 세워 공격하였다.

이궐지전에서는 병력을 집중하여 적군을 격파하고, 언도지전은 수공을 사용했다.

화양지전에서는 먼 길을 우회하여 습격하는 전략으로 승리하였다.

장평지전은 고의로 패하는 척, 적을 유인하여 포위하는 전술을 써서 45만을 섬멸하였다.

백기의 전쟁목표는 반드시 적군을 섬멸하는 것이었다.

손자가 궁박한 적은 쫓지 말라 했던가. 그러나 백기는 적으로 하여금 회복의 기미를 아예 처음부터 싹을 잘라놓는다.

적을 죽이지 않으면 다시 혼란해 진다는 것이다.

그러나 백전불패의 전략전술가 백기의 승리는 진나라 재상 범수(范?)에게는 질시의 대상이 되었다.

나무꼭대기의 나무 가지가 바람을 더 많이 맞는다고 했던가. 조나라 한단 공격 명령을 거역하며 내 뱉은 한마디 ‘내 말을 듣지 않는 왕은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의 말실수로 백전노장 백수는 진나라 소왕에게 미움을 사서 함양 땅에서 조차 내쫒기는 신세가 되었다.

이제 한갓 병졸이 되어 함양 서문을 지나 10리쯤 떨어진 곳에 이르렀을 때, 진나라 소왕은 백기를 자결하도록 하였다.

백기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기에 이른다.

“내가 하늘에 무슨 죄가 있어 이렇게 죽어야 하는 것인가? 아니다.

나는 죽어 마땅하다.

장평전투에서 조나라 병사 수십 만 명을 구덩이에 파묻어 버리지 않았던가.” 사마천은 《사기》에서 ‘자[尺]에도 짧은 바가 있고, 치[寸]에도 긴 바가 있다(尺有所短 寸有所長)’고 하였다.

백기는 뛰어난 장수로서 적을 대적하여 전쟁터에서 살아남는 것보다 군주를 모시는 것이 어려웠다.

극단으로 치닫는 오늘의 모습에서 사물은 상황과 경우에 따라 적용 될 수 있다.

관용과 포용이 필요한 시대이다.

소신을 지켜가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살이 이다.

강한 의지와 올바른 신념으로 살아감이 어찌 혼자만의 노력으로 이뤄 질 수 있겠는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기다려 주고, 기대해 주는 이들의 마음이 모여진 결과는 아닐까 한다.

극단적인 의사나 행동의 표현으로 사회에 악영향을 끼치며, 자신을 드러내는 것과는 명확하게 구분되어야 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