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山寺
사라져가는 山寺
  • 신아일보
  • 승인 2007.09.13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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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질없는 집착과 탐욕을 경계하고 ‘無와 空’의 진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 佛家의 가르침일진대, 오늘날 우리 주위의 도량은 어찌 이리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필자가 공사현장을 둘러보다가 가끔씩 짬이 나면 인근의 절에 들렀다가 오곤 하는데, 최근 들어 통도사와 쌍계사를 연이어 찾게 되었다.
우선 통도사는 고등학교 재학시절 수학여행차 들렀던 적이 있었던 터라 30여년만에 다시 찾아 감회가 너무 컸다. 그때는 아마 5월쯤이었던가? 절을 끼고 돌아내리는 계곡엔 맑디맑은 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길가엔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바람결에 꽃비가 우수수 떨어지곤 했었지. 이 광경은 내가 지금껏 보아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벚꽃의 향연으로 기억속에 남아있다. 눈부신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도 찍고, 석가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 등 절 곳곳을 진지하게 둘러보았던 추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지만 이런 아련한 감상이 무색하게 세월이 흘러 다시 찾은 통도사는 나에게 적잖은 실망감만 안겨줄 뿐이어서 안타까웠다. 무엇보다 一柱門 코앞까지 차로 접근할 수 있게 해놓아 산사의 고즈넉함은 애시당초 기대하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게다가 절 입구에 엄청난 규모의 소위 ‘聖寶閣(사찰박물관)’이란 걸 지어놓았는데 건물의 외양이 고찰의 풍모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데다가 조잡한 단청에는 속세의 천박함만 덕지덕지 배어있을 뿐이었다.
경내 또한 佛寶寺刹의 고매함은 찾아볼 길 없고 관광객의 왁자지껄 떠들어대는 소음과 중창불사 준비로 온통 어수선 하기만하여 씁쓸하게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처음 찾아가본 하동 쌍계사도 사정은 별반 다를게 없었다. 조영남의 흥겨운 노랫가락으로 잘 알려진 화개장터에서 꺾어들어간 지리산 자락에 자리잡은 쌍계사는 두 줄기의 溪水가 절의 좌우를 휘감아 흘러내리고 있어 쌍계사라 이름 하였다는 화엄명찰이다. 하지만 주차장에서부터 절 문턱에 이르기까지 그 청정한 계곡 구석구석에 매운탕집, 닭백숙집과 조잡한 기념품가게들이 빼곡히 들어차있고, 이들의 극성스런 호객행위가 사람을 피곤하게 만들고 있어 차라리 발길을 돌려 도로 내려가고 싶을 정도였다.
게다가 경내로 들어가보니 여기도 대웅전 뒤편에 또 무슨무슨 殿을 새로 짓는다고 중장비의 굉음이 요란하고, 한쪽에선 제초제를 뿌리는지 소독약품 연기가 자욱하여 심란하기만 하였다.
가장 최근에 찾아보았던 고성의 玉泉寺에서도 실망하기는 마찬가지. 이 절은 신라때 의상조사가 창건한 華嚴十刹중의 하나로서 경남일대에선 꽤 이름난 곳이기도 하거니와, 개인적으로는 대학시절 이 절의 부속암자인 靑蓮庵에서 몇달간 공부한 인연이 있기도 하다. 여기 또한 절 초입에 불교유물을 전시한다는 명목으로 거창하게 寶藏閣을 새로 지어놓은 데다가 일주문을 비껴서 차를 타고 절마당까지 올라갈 수 있도록 친절하게(?) 길도 닦아놓았다.
큰 절에서 한참 올라가 있어 인적 드문 암자였던 청련암까지도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뚫고 암자 입구에 주차장을 조성해놓은 것은 물론, 새로 축대를 쌓고 테라스식 전망 찻집까지 만들어 놓아 정녕 여기가 옛날의 그 청련암이 맞나 하는 의구심이 들 지경이었다.
부질없는 집착과 탐욕을 경계하고 無와 空의 진리를 깨우치고자 하는 것이 佛家의 가르침일진대, 오늘날 우리 주위의 도량은 어찌 이리 볼썽사나운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인지 안타깝기만 하다. 아직도 가보고 싶은 전국의 명찰은 많지만 막상 보고 나면 되돌아올 실망감이 두려워 차라리 마음속에만 담아두고 있는게 나을성싶다.
듣자하니 요즘 도선사 주지스님이 이끄는 108山寺 순례프로그램이 주목을 받고 있다는데, 山寺를 순례하며 108번뇌를 끊어 보자는 취지는 좋지만 매번 50~60대의 관광버스에 나눠타고 몇천명씩 몰려다니는 요란한 모양새라 하니 이런 것도 웬지 허망해 보인다.
속세의 먼지를 훌훌 털어내고 잠시나마 혼자 되는 희열에 젖을수 있는 淸淨山寺를 찾아보기 어려워지는 세태에 마음이 무거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