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승부로 끝난 마지막 싸움
무승부로 끝난 마지막 싸움
  • 황미숙
  • 승인 2012.07.02 15: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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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전국시대 위나라의 오기(吳起)
충성심을 입증하기 위해 젊은 아내를 칼로 베어야 했던 잔혹한 시대를 살아간 오기(吳起 : BC 440~BC 381)는 중국 전국시대 병법가이며, 위나라(지금의 河南省) 출신이다.

오기는 평소 병법을 좋아했고, 노(魯)나라에서 증자(曾子)에게 유학을 배웠다.

저서인 《오자병법》은 현재 6편이 전해지고 있다.

오기는 젊어서 공명을 구하고자 하였으나 이루지 못하였다.

그는 자신을 조롱한 고향사람 30여명을 죽이고 위나라를 도망친다.

그는 어머니와 이별할 때, 재상이 되어 돌아오겠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팔뚝을 물어뜯었다.

그 길로 노나라로 가서 증자를 스승으로 모시고 열심히 공부하였으나 모친의 사망소식을 듣고도 가지 않았다는 이유로 스승 증자에게 배척당하였다.

병법에 타고난 소질을 지닌 오기는 노나라에서 벼슬을 시작하면서 작은 나라 위나라 출신인 까닭에 더욱 최선을 다해 인정 받으려고 했다.

마침 제나라가 노나라를 공격해 오자, 노나라 군주는 오기를 장군으로 삼으려 했다.

그러나 몇몇 신하들이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출신이기에 오기가 전력을 다해 싸우지 않을 것이라며 반대하였다.

이에 오기는 곧 집으로 돌아가 주저 없이 아내를 죽였다.

참으로 잔인한 배신이며, 잔혹한 시대였다.

이후 제나라를 물리치고 돌아온 오기를 기다린 반응은 의외로 싸늘했다.

출세를 위해 아내를 벤 잔인한 인간이며, 어머니의 장례도 치르지 않은 패악 무도한 인간으로 오히려 기피의 대상이 되었다.

오기는 다시 위나라로 돌아와 장군에 임명되자 진(秦)나라를 공격하여 다섯 개의 성을 빼앗았다.

오기는 장군이 되자 가장 신분이 낮은 사졸들과 같은 옷을 입고 식사를 함께 하였다.

잠을 잘 때에는 자리를 깔지 않았으며 행군할 때에는 말이나 수레를 타지 않고 자기가 먹을 식량을 친히 가지고 다니는 등 사졸들과 수고로움을 함께 나누었다.

언제인가 사졸 중에 독창(毒瘡)이 난 자가 있었는데 오기가 그것을 빨아주었다.

사졸의 어머니가 그 소식을 듣고는 통곡하였다.

어떤 사람이 “그대의 아들은 일개 사졸인데 장군이 친히 그 독창을 빨아주었거늘, 어찌하여 통곡하는 것이요?” 라고 하자, 그 어머니는 “그렇지 않소. 예전에 오공(吳公)이 그 애 아버지의 독창을 빨아준 적이 있었는데, 그이는 물러설 줄 모르고 용감히 싸우다가 적에게 죽음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공이 지금 또 내 자식의 독창을 빨아주었다니 난 이제 그 애가 어디서 죽게 될 줄 모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통곡하는 것입니다.

” 라고 하였다[?疽之仁 연저지인]. 문후는 오기가 용병에 뛰어날 뿐만 아니라 청렴하고 공정하여 모든 사졸들의 인망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고는 오기를 서하(西河)태수로 삼아 진(秦)나라와 한(韓)나라를 방비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오기를 믿고 뒤를 봐주었던 文侯(문후)가 죽고, 武侯(무후)가 즉위한 후에는 오기는 여러 방면에서 모함을 받고 결국 위나라를 뒤로 하고 초나라로 떠나갔다.

초나라의 도왕(悼王)에 의해 재상에 임명된 오기는 법령 정비, 관직 간소화, 왕족들의 봉록삭감 등의 정책을 건의해 강한 국방력을 구축했다.

초나라가 남쪽으로는 백월(百越)을 평정하고, 북쪽으로는 진(陳)과 채(蔡)를 굴복시켰으며, 삼진(三晉)을 물리치고 서쪽으로는 신흥강국으로 떠오르는 진(秦)나라마저 공격하자 제후들은 두려움에 떨었다.

그러나 내부의 적이 더 두려운 법. 오기 때문에 자리를 잃게 된 초나라의 왕족과 대신들의 음모에 의해 도왕이 피살되는데, 오기는 도왕의 시신 위에 엎드려 날아오는 화살을 받으며 장렬하게 죽었다.

사마천은 《사기》에서 <손자오기열전> 말미에 탄식을 덧붙였다.

“오기는 무후에게 지형의 험고함이 임금의 덕행만 못하다고 설득하였는데, 정작 그가 초나라에서 한 일은 각박하고 몰인정하였기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게 된 것이니 슬픈 일이로다.

”하며 자신의 의견을 포함하지 않는 사마천도 오기가 그 비정함 때문에 몸을 망치니 슬픈 일이라고 애석해 하고 있다.

또한 《오자병법》을 탐독하였음을 알 수 있는 이순신 장군의 명량 해전 직전의 명연설인 ‘살고자 하면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살 것이다(必生則死 必死則生)’라는 구절을 우리는 기억할 것이다.

이 문장은 《오자》 제3편의〈치병(治兵)〉제4장에 나오는 대목으로 원래 표현은 “무릇 전쟁터란 한 번의 실수로 시체가 되는 죽음의 땅이다.

필사적으로 싸우면 살아날 수 있고 요행히 살려고만 하면 죽게 된다.

(凡兵戰之場 立屍之地 必死則生 幸生則死)”이다.

‘필사적으로 싸우면 살아날 수 있고 요행히 살려고만 하면 죽게 된다(必死則生 幸生則死)’라는 의미는 한 번 작전을 세운 후에 그 작전 때문에 죽지는 않을까 하는 나약함을 버리고, 주저 없이 작전을 실행하라는 의미가 아닌가 싶다.

훌륭한 용병술을 가졌던 자수성가형 전쟁 영웅 오기의 삶은 오늘날 우리의 모습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생존을 위한 삶에 매달려 앞만 보고 살아왔으나, 손 안에 남겨진 것은 무엇인지 모를 일이다.

하루하루 내 앞에 놓인 일에 최선을 다하였다고 할 수 있다는 것인지, 죽음 앞에서 당당할 수 있는지 중간 점검이라도 해야 할까 보다.

다만 오기의 작전대로 마지막 싸움은 무승부로 기록되어지길 기대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