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꽃 무궁화”
“나라꽃 무궁화”
  • 신아일보
  • 승인 2007.08.27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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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 피어있어야 함이 당연할진대, 오늘날에는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이란
애국가 가사가 무색할 정도로 무궁화를 접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며칠전 해운대 동백섬 누리마루에서 개최된 ‘나라꽃 무궁화 대잔치’ 개막행사에 다녀왔다. 전국 각지에서 출품한 무궁화 화분과 꽃나무 작품을 감상하고, 돌아오는 길에 묘목도 40주 얻어 와서 청사 화단에 정성스레 심었다. 무럭무럭 자라 나라꽃의 기품을 그윽하게 보여주길 기원하면서….
기록에 의하면 무궁화가 우리 민족과 연관되어 나타난 것은 그 역사적 연원이 고조 선시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되어 있으며,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槿域’ 또는 ‘槿花鄕’으로 일컬을 정도로 한반도에는 무궁화가 많이 자라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무궁화를 國花로 공식 제정한 적이 없음에도 우리 모두가 이를 당연한 사실로 인식하고 있는 것부터가 이 꽃이 오랜 옛적부터 우리 곁에 함께 있어왔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하겠다. (이홍직의 『국어대사전』에는 ‘무궁화는 구한말부터 우리나라의 국화로 되었는데, 국가나 일개인이 정한 것이 아니라 국민 대다수에 의하여 자연발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다)라고 나와 있다. 그런데 요즘에는 어찌해서 우리 주위에서 무궁화를 찾아보기가 이토록 어려운 지경이 되었을까?
나라꽃이라면 기품이나 향기도 물론이려니와 우선 우리가 일상적으로 접할 수 있을 만큼 도처에 피어있어야 함이 당연할진대, 오늘날에는 ‘무궁화삼천리 화려강산’이란 애국가 가사가 무색할 정도로 무궁화를 접하기 어렵게 되어버린 현실이 안타깝기 그지없다.
일이 이렇게 된 배경에는 지난날 일본 제국주의가 자행한 악의적인 무궁화 말살정책이 자리 잡고 있음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기미 독립선언서 표제를 보면 태극기를 무궁화 문양이 감싸고 있고,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민족지였던 동아일보의 창간당시 제호가 한반도를 무궁화가 두르고 있는 형태였던 사실에서 보듯이 당시 무궁화는 광복 구국정신의 표상이었으며 겨레의 얼을 대변하는 무형의 지주였음이 분명하다.
사정이 이러했으니 일제가 눈엣가시 같은 무궁화를 가만히 놔둘 리가 없었을 터. 일제는 무궁화를 ‘눈에 피꽃’이라 하여 쳐다보기만 해도 눈에 핏발이 선다고 거짓 선전하고, ‘부스럼 꽃’이라 하여 피부에 닿으면 부스럼이 생긴다는 날조된 소문을 퍼뜨리는 한편 방방곡곡을 뒤져 무궁화를 눈에 보이는 대로 뽑아내 불태워버리는 만행을 저지른다. 기껏 남긴 무궁화는 공중변소나 헛간, 창고 주위 등 후미지고 불결한 장소로 옮겨 심어 부지불식간에 하찮은 꽃으로 여겨지게끔 만드는 교묘한 짓거리도 곁들이면서….
올해로 광복 62주년을 맞고 있지만, 무궁화의 고초는 끝나지 않고 아직도 짙은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음을 생각하면 가슴이 쓰리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우리 모두 마음을 합쳐 무궁화의 품격을 되살리고 나라꽃의 위상에 걸맞게 널리 보급될 수 있도록 나서야겠다.
봄날 한철 화들짝 피고선 일년 내내 메마른 등걸만 내보이는 벚꽃과는 달리 무궁화는 개화기간이 길 뿐만 아니라, 찬찬히 살펴보면 꽃의 형상 자체가 참 미려하고 우아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국립산림과학원을 중심으로 꾸준히 품종개량도 이루어져 정원수나 가로수로도 손색이 없다고 한다.
예컨대 각 지자체에서 조금만 신경써서 무궁화공원을 조성하고 무궁화길도 가꾸어 내놓는다면, 어딜 가도 그게 그것인 벚꽃 길보다는 훨씬 특색 있고 당당한 면모를 자랑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아가 국도를 드라이브하면서도 도로변 어디에서나 활짝 핀 무궁화 꽃을 대할 수 있게 된다면 금상첨화가 아닐 손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