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수는 나의 것
복수는 나의 것
  • 황미숙
  • 승인 2012.06.04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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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춘추시대 오나라의 오자서(伍子胥)
오자서(伍子胥, ? ~ BC 485)는 원래 초나라 사람이고 이름은 원(員)이다.

오자서의 가문은 대대로 초(楚)나라의 국왕을 측근에서 보필한 명문가였고, 오자서의 아버지 오사(吳奢) 역시 조정의 고관으로서 태자 건의 스승 겸 보좌역인 태부 벼슬을 맡고 있었다.

초나라 성왕이 터를 닦고 목왕과 장왕이 그 위에 쌓아올린 강대한 초나라의 패업도 이 시기에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왕실의 내분은 일상사가 되었고, 나라 밖으로도 초나라에 적대적인 동쪽 해안 부족들의 국가인 오(吳)나라?월(越)나라가 국경을 위협하고 있었다.

이때에 진나라와 초나라는 혼인동맹을 맺는 것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측근이었던 비무기(費无忌)가 태자 건(建)의 신부감인 진나라의 공주를 시아버지인 초 평왕과 혼인시키는 일대 사기극을 벌리었다.

비무기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하여 오사와 그의 두 아들까지 죽이려는 음모를 계획한다.

그러자 오사는 둘째 아들인 오자서에게 태자 건과 그 아들인 왕손 승(勝)을 모시고 초나라를 탈출하도록 하고, 자신은 장남 오상(伍尙)과 함께 남아 초왕에게 처형당하는 쪽을 선택했다.

초나라를 탈출한 오자서는 정나라로 향하였으나, 태자 건이 병사하고 간신히 왕손 승과 단 둘이 목숨만 건져 달아나는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결국 오자서는 초의 동쪽에서 초나라의 국경을 위협하고 있는 동방의 신생국가 오(吳)나라에 몸을 의탁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문제는 정나라에서 오나라로 가려면 초나라의 광대한 국토를 북에서 남동쪽으로 완전히 횡단해야 하는 위험에 처하였다.

오자서는 정나라에서 초나라를 거쳐 오나라의 관문을 넘는 방법을 고심하느라 하룻밤새 머리카락이 하얗게 세어버렸다는 일화가 남아있다.

오자서는 우여곡절 끝에 오나라에 정착한다.

그리고 조용히 농사일을 하면서 때를 기다렸다.

하지만 당시 오나라도 나라 안이 평안한 상태는 아니었다.

사촌지간인 당시 오나라 왕 요와 공자 광(公子 光) 사이에 치열한 권력투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이때에 오자서는 공자 광을 돕게 되었다.

공자 광은 요왕을 살해하고, 스스로 왕에 올라 오왕 합려(闔閭)라 자칭하게 된다.

쿠데타의 최대 공신으로 재상 자리에 취임한 오자서는 드디어 본격적인 복수에 돌입했다.

결국 기원전 506년, 손무와 오자서가 이끄는 오군이 초나라로 진격을 개시하였다.

초나라의 수도는 초 문왕 시대에 건설되어 난공불락으로 유명한 영(?)이었으나 불과 3개월 만에 손무의 수공(水攻)에 허무하게 함락되었다.

그러나 오자서의 일가를 몰살시킨 초 평왕과 비무기는 이미 죽은지 오래였다.

그래서 영성을 함락시킨 오자서는 초 평왕의 무덤을 찾아가 무덤을 파헤쳐 시체를 찾아낸 뒤 구리채찍으로 수백 대를 쳐 시체가 형체조차 찾을 수 없게 되자 겨우 매질을 그쳤다고 한다.

‘굴묘편시(掘墓鞭屍)’의 고사가 여기에서 비롯하였다.

이때에 신포서는 “아무리 복수라지만 시체 훼손은 차마 못할 짓이 아니냐.”고 꾸짖었다고 한다.

이 말에 오자서도 할 말이 없었던지 “날이 저물고 길이 멀어서(日暮途遠일모도원), 거꾸로 걸으며 거꾸로 일을 했소.(倒行逆施도행역시)”라고 답했다.

사마천은 《사기》〈오자서전〉에서 ‘소의(小義)를 버리고 큰 치욕을 갚아 명성이 후세에 전해졌으며, 모든 고초를 참고 견디며 공명을 이룬 강인한 대장부’라고 평가하였다.

《맹자》공손추편에서 맹자는 ‘?辭 知其所蔽 淫辭 知其所陷 邪飼 知其所離 遁辭 知其所窮 편벽된 말에서 그 숨긴 바를 알고, 음탕한 말에서 그 사람이 어느 곳에 빠져 있는 것을 알며, 간사한 말에서 이간하는 바를 알고, 회피하는 말에서 그 사람이 궁지에 몰려 있는 것을 안다.

’며 담론의 네 가지 병폐를 들고 있다.

흔히 도덕을 지키려는 사람들 중에는 자신이 도덕 때문에 피해를 보거나 곤경에 처한다는 것을 위로하기 위해 스스로를 다른 이보다 도덕적으로 특별한 지위에 상정하여 그것을 내세워 다른 이의 도덕을 비판하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니체가 지적했던 천박한 ‘노예도덕’의 일종이라 하겠다.

도덕을 지키는 것에는 일반인과 소위 지도자의 몫이 다르다.

오로지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개인이 아닌 대중 혹은 국민들을 대변하는 지도자라면 ‘노예도덕’에서 벗어나야 한다.

삶에 정말로 필요한 것은 책임을 지는 행동이다.

자신들의 출세와 명분만을 위하여 스스로 당당한척 하는 무리들이 노예근성을 버리지 않는 한, 국민들의 무관심은 돌아서지 않을 것이다.

그들에게 소의(小義)라도 있는 것인지 묻고 싶다.

신의를 잃은 궁색한 변명과 파렴치로 잃어버린 민심을 어디에서 구할 것인가. 지금의 여의도에서 빚어지는 분노와 갈등은 누구를 위한 분노이고, 무엇을 위한 갈등인가 조차 혼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