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력보다 ‘간판’이 대접받는 사회
실력보다 ‘간판’이 대접받는 사회
  • 신아일보
  • 승인 2007.07.21 2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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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형 열 사장
"가짜가 설치는 판에 진짜가 설자리를 잃는 일은없어야 한다"



서울에 한 대학교 교수이자 스타 큐레이터로 거침없이 달려온 신정아 교수의 추락은 ‘실력’보다 ‘학력’을 ‘능력’보다 ‘수완’과 ‘인맥’을 우선시 하는 우리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드러냈다.
어떻게 대학 사회에 이런 부도덕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가짜박사 학위로 사회적 지위를 높이려는 사람들이 생겨나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는 지난해만 해도 ‘존 버닝햄 40주년’ ‘김세중 조각상 20주년 기념’ 한-프랑스 수교 120돌 기년 ‘알랭 플래셔’전 등 굵직한 미술전을 치렀다. 그가 미술계에서 공식적으로 활동을 한 것은 금호미술관의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부터다.
신 교수와 친분 있는 한 기획 자는 ‘금호미술관이 지난 1997년 말 영어 통역을 위한 아르바이트생을 구했다’며 ‘이때 미국 뉴욕 현대미술관 인턴 십 등을 거쳤다는 신교수가 지원해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밝혔다.
이듬해 98년에 금호미술관의 큐레이터가 됐다고 한다.
신 교수가 이때부터 학력을 위조했는지 모르겠지만 미술관 측도 관례상 검증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다만 큐레이터가 되면서 미술계에 두각을 드러냈다고 한다.
신 교수는 2001년 금호미술관 사퇴한 뒤 성곡 미술관 큐레이터로 채용 돼 학예실장을 맡게 됐다. 이후 대학 강사를 거쳐 교수에 임용되고 국립대 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추천위원 일부기업의 문화위원 등을 맡으며 지난 5일에는 내년에 열릴 ‘2008 광주비엔날레’ 예술감독으로 내정됐다.
최근만 해도 굵직한 기획전을 치러냈다.
‘신 씨는 미술사적 의미보다는 대중들이 선호하는 정시기획전을 잘 소화했다’며 이로 인해 미술관들의 신뢰를 얻게 돼고 일부 원로작가라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외국 작가 언론의 주목을 받는 이벤트전시회를 주로 기획했다며 큐레이터의 진정한 능력은 미술사적 의미를 찾고 신진작가를 발굴하는 기획전을 강조했다.
이처럼 큐레이터로 화려한 길은 걸어온 그가 학 석박사 학위를 모두거짓으로 꾸며대 교수나 예술감독 자리를 얻어낸 경우가 도무지 상식과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특히 동국대는 신씨를 채용할 당시 박사학위 사본에는 어떤 문서도 제출 받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가 박사 학위를 받았다고 밝힌 미국 예일대 박사학위는 허위이며 캔자스 대학에서 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는 학력도 거짓으로 드러났다.
신씨의 사기 극은 우리사회의 학별 지상주의 부실한 검증 시스템이 낳은 웃지 못할 코미디다.
예일대 박사학위에 미술관 대학 비엔날레 측은 한 점의 의심 없이 그를 채용했다. 허술한 틈을 비집고 가짜가 학위 하나로 미술관 큐레이터부터 시작해 ‘미술계의 젊은 거물’로 승승장구했다. 이런 사기극은 대학에서 철저히 따져 보았더라면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일이다. 예대에서 받았다는 정체불명의 팩스 한 장을 덜렁 믿고 채용한 대학은 할말이 없다. 신씨를 채용한 경우는 의혹 투성이다.
재단 이사가 학력 위조 의혹을 제기하는데도 가짜 팩스 한 장을 근거로 채용하는 것은 안팎의 비호를 의심하기에 충분하다.
관련 학자의 반대가 계속 되자 신씨는 교양 교육원으로 돌려 ‘교수 타이틀’을 지켜준 것이 순수한 인재유치 목적이라고 믿기도 어렵다. 지난해부터 신씨의 허위학력에 대한 소문이 나도는데도 전혀 확인하지 않고 예술감독으로 내정한 광주비엔날레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비엔날레 측은 신씨를 추천한 사람과 후보추천 자료를 비롯해 선정과정을 소상히 밝혀야 한다. 신씨는 후보 추천을 위해 가짜 학력증명 문건을 제출했지만 11명으로 구성된 후보선정 소위원회 의 심사에서 고작 1표를 얻어 응모자 9명 가운데 2명을 추천한 후보에도 끼지 못했다.
그런데도 이사회는 최다득표 후보가 고사한다는 등의 이유로 엉뚱하게 신씨를 선임했다.
일부 이사가 이의를 제기했으나 재단이사장이 적극 신씨를 밀었다고 한다. 이사장은 신씨 선임을 철회하면서도 심사 자료공개를 거부했으나 비엔날레재단의 공공성에 비춰 그렇게 넘어갈 일이 아니다. 감독기관이 개입해서라도 외압설 등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
해외 박사 신고자가 한해 1500여명에 이른다. 최근에도 비인가 미국 대학 AIU에서 돈을 주고 박사학위를 딴 현직 교수 공무원 등 39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학별을 중시하는 사회 실력과 간판과 배경을 따지는 우리사회풍토 사이비를 걸러낼 객관적 평가인사 검증 체계의 미비가 지목된다.
인문학 분야에서 국내 박사학위를 따 ‘이용을 위한 서류심사 때 외국 학위취득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게 일반화 돼있다’ 학벌을 중시하는 미술계 풍토도 신씨 입지를 가속시켰다는 지적이다. ‘어느 학교 출신이냐에 따라 미술계에서의 위치가 정해지고 파벌이 만들어지는 게 우리미술계의 풍조’라며 신씨처럼 서울대, 캔자스대, 예일대 등을 내세울 경우 대부분의 미술관은 반기는 게 당연하다고 한다. 이 모든 소동이 현란한 신씨의 농간에 놀아난 결과다.
새삼 탓하는 것은 초점을 흐린다. 배후가 있든 없든 황당한 사기극에 사회가 놀아난 근본은 어디든 정실과 편법이 판치는 현실이다. 가짜가 설치는 판에 진짜가 설자리를 잃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