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해도 소하요, 실패해도 소하다.
성공해도 소하요, 실패해도 소하다.
  • 황미숙
  • 승인 2012.03.26 1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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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고조 유방의 조력자, 소하(蕭何)
《사기》의 ‘소상국세가’에 따르면 소하는 패현 출신으로 법령에 정통하여 진나라 때에는 현의 말단 관리로 근무했다.

이때부터 유방과의 인연이 시작된다.

그 후 그는 유방을 보좌하여 한나라를 건설한 최고 공신으로 임명되었으며, 계속하여 승상, 상국(相國)으로서 한나라의 기초 조성에 크게 공헌하였다.

유방은 전국을 통일하고 나서 스스로 소하와 장량, 그리고 한신은 자기보다 월등히 훌륭하다고 하였다.

소하는 뒷바라지를 잘하였고, 장량을 앉아서 수백 리 밖의 일을 계획하였으며, 수백만 군을 지휘하여 승리로 이끈 사람은 한신이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장량은 군사전략에는 뛰어났으나 야전에 능하지 못했고, 한신은 군사적인 부분에서만 발군의 능력을 갖추었고, 소하는 정치에는 뛰어났으나 다른 면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건달의 다리 밑을 기어지나갈지언정 함부로 칼을 휘두르려 하지 않았던 유방은 인재 등용에 탁월한 용인술을 앞세워 항우보다 열세였던 군사력을 가지고도 한나라를 세울 수 있었던 것이다.

특히 소하는 함양에 입성하여서 너나할 것 없이 금은보화를 나눠 가지려고 할 때에도 먼저 진나라의 승상부와 어사부의 법령문서들과 도적문서(圖籍文書)를 챙겨두기에 바빴다고 한다.

2개월 이후 항우가 함양에 들어와 아방궁에 불을 질러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을 때, 소하의 식견이 아니었다면 유방은 한나라를 세웠다 할지라도 천하의 요새지, 인구의 수, 각국의 전력, 백성의 고충 등을 파악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또한 유방이 천하를 도모하고자 전장을 누빌 때에도 소하는 후방에서 조력자의 역할에 한 치의 틈도 없었던 까닭에 논공행상에서 으뜸의 자리를 차지 할 수 있었다.

또한 한신을 유방에게 천거하였으며, 후에 한신이 대우에 불만을 품고 도망치자 붙잡아 와서는 유방에게 천하를 도모할 생각이라면 한신이외에 인물이 없다고 강력하게 천거하여 초한전쟁에서 결정적이 공헌을 하게 하였다.

그러나 한신의 죽음에 소하와 여후가 결탁하자 ‘성공해도 소하요, 실패해도 소하((成也蕭何 敗也蕭何)’라는 말이 전해지고 있다.

기원전 202년 한나라의 승상인 된 소하는 각종 전장제도와 법률을 마련하여 개국의 기틀을 다졌다.

춘추전국의 500년 전쟁에 이은 진나라의 폭정에 지친 백성들에게 소하는 상처받은 민심을 치유하는데 힘썼다.

소하가 있었기에 한무제가 ‘문경의 치(文景之治)’를 이룰 수 있었던 것이다.

오늘날 정치에 뜻을 둔 인물들이 반드시 기억해야할 소하의 방법론이 있다.

‘백성을 부모나 윗사람 모시듯이 받들어야만 현자(賢者)가 모여 든다(養民致賢:양민치현)’는 것이다.

자신의 세력이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사람을 모으는 곳에 현자가 모이는 것은 아니다.

권력을 나누고, 재물을 나눈다고 모여드는 사람은 이미 현자는 아닌 것이다.

정치의 요체가 현명한 인물을 구하는 것이라면, 소하와 같은 인물을 두고 한 말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이 시대의 정치인들이 현자를 구하고는 있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논어》자한편에서 공자는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인자(仁者)에게는 사리사욕의 마음이 없으므로 어떤 일이 일어나도 의혹하지 않고, 지자(知者)는 사물의 도리에 밝아서 시비·선악의 판단이 정확하므로 근심하지 않으며, 용자(勇者)는 의로써 일을 결행하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다.

”고 하였다.

그러나 소인은 자신이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를 몰라서 의심하지 않으며, 근심하지 않으며,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이다.

천하를 얻으려는 자는 소인이 아닌 현자를 구할 수 있는가 따라 승패를 가늠 할 것이다.

항우의 아부(亞父), 범증에 비해 장량과 한신과 소하를 합하여도 적수가 되지 못했던 백수 출신인 유방이 천하를 평정할 수 있었던 시작은 무엇인지 알아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