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은 삼월에 피고, 국화는 구월에 핀다.
살구꽃은 삼월에 피고, 국화는 구월에 핀다.
  • 황미숙
  • 승인 2012.03.19 1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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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유방의 장자방, 장량
장량의 자(字)는 자방(子房)이고《사기》와 《한서》에 따르면 한나라 사람이었다고 전한다.

유방에 의탁한 후 장량은 계책을 내놓아 많은 공로를 세운다.

특히 ‘홍문의 연회’에서 초의 항우가 유방을 죽이려 할 때 목숨을 구하고 한나라를 세우는데 일등공신이 되었다.

하루는 장량이 하비(下?:강소성)의 다리에서 놀고 있을 때에 노인은 고의로 신발을 다리 아래로 던져 버린다.

그리고 장량에게 신발을 주워 오도록 하였다.

장량은 속으로는 화가 났으나 참고 주워 왔다.

그리고는 노인이 신발을 신겨달라고 하자 화를 눌러 참고 꿇어앉아 신발을 신겨 준다.

그러자 노인은 웃으며 5일 후에 이곳으로 오라며 떠났다.

5일 후에 아침 일찍 장량은 약속대로 다리 위로 갔다.

그런데 노인이 먼저 와 있었다.

노인은 화를 내며 젊은 놈이 늦게 왔다며 5일 후에 다시 오라고 하였다.

이번에는 닭이 울 때 약속 장소에 도착하였다.

또 늦었다.

노인은 다시 5일 후에 오라고 하였다.

세 번째, 장량은 한밤중에 출발하여 마침내 노인 보다 먼저 도착하게 된다.

이처럼 전설에 따르면 황석공을 만나 강태공의《태공병법 (太公兵法)》을 얻었다고 한다.

《한서》의 고조본기에 의하면 유방은 장량을 일러 군막 안에서 작전을 세워, 천리 밖에서 승리를 쟁취한다고 하였듯 한신·소하와 더불어 ‘한초삼걸’이라 하였다.

그런데 장량은 건달 백수인 유방을 따르게 되었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이 물음에《한서열전》에서 장량은 세치의 혀로 황제의 스승이 되어 만호의 봉읍을 받는 것을 만족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다.

자신의 역량을 알았던 장량은 떠날 때를 알았던 인물이었다.

유방은 왕조를 개국하고 세월이 흐르자 옛 공신들을 믿지 않게 되었다.

이때에 장량은 장생술(長生術)에 빠진척하며 어떠한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았다.

천하를 도모한 유방은 한신을 초왕(楚王)으로 봉했으나, 언젠가는 자신에게 도전할 것을 염려하고 있었는데, 마침 항우의 장수였던 종리매(鐘離昧)가 옛 친구인 한신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진평의 책략에 따라 유방은 운몽(雲夢)에 행차하고 제후들을 초나라 서쪽 경계인 진(陳)나라에 모이게 했다.

이때에 한신은 자결한 종리매의 목을 가지고 가서 유방에게 바치지만, 유방은 한신을 포박하게 했다.

이렇듯 측근들의 ‘토사구팽(兎死狗烹)’ 처지를 예견했던 장량은 스스로 물러날 때를 알고 있었던 것이다.

장량은 함양의 북쪽에 정자의 현판에 ‘방원각(方圓閣-모가 지고서도 둥근 것)’을 세워놓고 자녀들에게 경계하며 노후를 의탁했던 것이다.

뻔히 알면서도 모르는 채로 속아주는 연륜이 언제쯤 발휘 될 수 있는 것인지 가늠하기 어려운 세상살이 이다.

봄에 피는 꽃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을에 피는 꽃도 있는 법이다.

가을에 피는 꽃이 봄철에 조바심 하지 않으며, 부모는 기어 다니는 아이에게 걷지 않는다고 조바심 하지 않으며, 스승은 신입생에게 유창하기를 기대하지 않는다.

기다림이 곧 지혜임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어른이 되었다고 할 것이다.

사회에서도 어른이란 과연 어떤 기다림 끝에 드러나는 것인지 지켜보아야 한다.

《논어》 술이편에서 공자는 “用之則行 舍之則藏 惟我與爾有是夫(용지즉행 사지즉장 유아여이유시부) 그를 써주면 일하고, 그를 버리면 물러나 있는 것은 오직 나와 너만이 이것을 가졌을 뿐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천하를 함께 도모하고도 훌훌 떠날 수 있었던 장량이 천수를 누린 것은 유학이 추구하는 천리(天理)를 따르고 인륜을 널리 베푸는 것을 깨달은 까닭일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일이 이미 다 성사되고 난 뒤에도 그 일의 연유조차 모르지만, 지혜로운 사람은 일이 이루어지기도 전에 미리 그 일을 안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의 욕심은 똑 같다.

좀 더 맛있고, 좀 더 편안하고 그리고 좀 더 멋있는 옷을 입고 남보다 폼 나게 산다는 것이 즐거운 일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