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위에서 천하를 얻어, 백성에게 돌려주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어, 백성에게 돌려주다.
  • 황미숙
  • 승인 2012.03.12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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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한고조 유방
한고조 유방(劉邦)은 지금의 강소성에 해당하는 패현이 고향으로 그의 출신성분은 한마디로 백수였다.

사마천의 《사기》 〈고조본기〉에는 유방이 황제가 되기 전의 행각을 적고 있다.

매일 집안에 파묻혀 놀고먹기를 즐겼으며, 호언장담을 하기 일쑤였고, 술과 여자를 매우 밝혔다고 하였다.

그러나 한고조는 삶의 고비마다 인재 등용을 통해 위기를 기회로 바꾼 인물이다.

그는 황제가 되어 스스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의 재주와 지혜는, 장량(? ~ BC 185)과 같이 전투에 나서면 철저히 준비하고 방비를 튼튼히 하며 결전에 있어서 반드시 승리하는데 미치지 못하고, 소하(? ~ BC 193)와 같이 국가를 관리하고 백성을 위무하며, 병력의 운용에 필요한 장비를 준비하는 일에 대해서도 부족하며, 수 십 만 병력을 통솔하고, 조련하며 전투를 지휘하는 한신(? ~ BC 196)보다도 아래이다.

이 세 사람은 당대의 호걸이며 유능한 인재들이다.

나는 마음을 기울여 그들을 썼기 때문에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 이렇듯 유방은 자신을 도와 위업을 이룬 인재들에게 그 공로를 돌리고 있다.

유방은 다른 사람들의 장점은 적제적소에 사용하고, 단점을 파악하여 그 사람을 통제하는 고도의 술책가이다.

유방은 자신에게 필요하지 않는 자이거나 위협이 되는 인물이라 할지라도 선택의 시기를 고려하여 상대를 선택함을 알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백수건달 유방이 한고조가 될 수 있었던 제왕의 용인술 인 것이다.

유방의 용인(用人)의 오묘한 기술은 한신과의 관계에서 잘 드러낸다고 하겠다.

유방의 수 십 만 대군이 하남 일대에서 초패왕 항우의 주력군과 오랫동안 대치하고 있을 때, 한신이 유방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면, 유방은 한고조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후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유명한 고사를 남긴 유방과 한신은 승승장구하여 천하를 얻게 되었다.

그리고 유방은 국호를 한(漢), 도읍을 낙양(洛陽)에 정하고는 국가를 세우는데 공이 많은 8명의 제후를 왕으로 봉하였다.

이때에 제왕(齊王) 이었던 한신은 초왕(楚王)으로 다시 결정되었다.

제나라의 비옥한 토지와 많은 인구, 중요한 지리적 위치를 기반으로 한신이 만일 자신을 위협하게 되지는 않을까하는 염려 때문에 분봉하는 지역을 바꾸었다.

천하의 일을 도모하고자 한신의 군사적 탁월한 재주를 발탁한 한고조는 황제의 정치력을 갖춘 인물이었던 것이다.

말위에서 얻은 천하가 말에서 내려지는 순간 물거품이 되는 선례들에 비한다면 유방이 비록 비천한 신분의 출신이라 할지라도 국가경영의 대업을 이루만한 소질이 풍부한 인물 인 것이다.

나라를 세우는데 한신 못지않게 일등 공신이었던 장량은 한(漢)이 세워지자 장생술(長生術)에 빠진척하며 어떠한 정치에도 관여하지 않았고, 소하도 승상의 지위에까지 올랐지만,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며 가슴에 큰 뜻을 품지 않은 듯 유방의 환심을 사기에 바빴다.

그러나 전장을 누비던 대장군 한신은 여전히 군사적 재능의 칼날을 숨기지 못하고 유방의 근심거리가 되었다.

힘으로는 산을 뽑을 만하고 기개로는 세상을 덮을 만한 항우를 이기는 발판을 마련하였던 한신은 모반하였다는 죄목으로 결국 피살 되고 만다.

이와 같이 한고조는 용인술로 사람을 움직이고 천하를 얻었다.

맹자는 사람을 움직이는 방법론으로 “天時不如地利 地利不如人和(천시불여지리 지리불여인화) 천시는 지리를 따르지 못하고 지리는 인화를 따르지 못한다”고 하였다.

맹자가 말하는 인화란 조직 간의 소통과 사람들 간의 소통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2012년에는 한고조의 용인술과 맹자의 방법론으로 인재가 등용되고 그리고 그들의 마음이 움직여서 상하좌우가 함께 소통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