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한국 성씨를 찾아서28- 문화류씨(文化柳氏)
정복규의 한국 성씨를 찾아서28- 문화류씨(文化柳氏)
  • 정복규
  • 승인 2012.01.03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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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 류차달은 후삼국 통일전쟁때 큰 공 세워 삼한공신
류성원·류형원·류진산·류기춘·류양수·류달영등이 후손


시조 류차달(柳車達)은 후삼국 통일전쟁 당시 유주(儒州,문화의 당시 이름)의 호족이었다.

이곳은 현재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 묵방동이다.

왕건이 후백제군을 정벌할 때 류차달이 수레와 군량을 보급하여 큰 공을 세워 삼한공신이 된다.

문간공(文簡公) 류공권(7세손)이 고려 명종 때 정당문학과 참지정사 등을 지내고 문장과 글씨로 명성을 떨쳤다.

그의 아들 류언침과 류택으로부터 크게 두 갈래로 갈라져 양대 산맥을 이룬다.

고려 고종 45년(1258년) 류 경이 당시 세도가인 최의를 제거하고 무신정권을 종식시켰다.

나라에서는 유주(儒州)를 그의 고향이라 하여 문화(文化)로 바꾸고 현으로 승격시켰다.

그래서 후손들이 문화를 본관으로 삼았다.

문화는 황해도 신천군 문화면의 지명이다.

류성원은 사육신의 한 사람이다.

수양대군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빼앗자 그는 박팽년, 성삼문 등과 단종의 복위를 꾀했다.

그러나 1456년 성균관사예 김질의 고변으로 이 사실이 탄로 나자 잡히기 전에 자기 집에서 아내와 함께 자결했다.

반계 류형원(1622~1673)은 조선 후기 실학의 개척자다.

한국 야당 30년사의 거목이었던 류진산 전 신민당 총재, 류기춘 전 문교부장관, 류병현 전 주미대사, 류양수 전 교통부장관, 류태현 전 광주고법 부장판사, 류길선 전 춘천지검장, 류흥수 전 치안본부장 등은 해방 후 정계, 관계에서 활약해 온 인맥들이다.

학계에는 류홍열, 류달영, 류형진(교육학박사, 전 대한교육연합회장), 류태영(건국대교수), 류경채(전 서울대교수)씨 등이 돋보인다.

류홍열은 한국문화, 사상사연구의 권위자다.

22년간 서울대 문리대 교수로 재직하면서 숱한 후학을 양성하는 한편 우리나라 근세사 연구에 커다란 업적을 남겼다.

류달영은 우리 농학계의 권위자다.

그는 서울대 농대교수로 마을금고를 창설했으며 한-데마크 협회장 등을 지냈다.

저서에‘류달영인생론집’‘협동과 복지사회’‘자연과 사랑과 인생’‘나라꽃 무궁화’등이 있다.

국회의원으로는 류인곤, 류광열, 류지원, 류창열, 류한열, 류인범, 류재희, 류경현, 류제연 등이 있다.

재계에는 류제국(경기은행장), 류호욱(미진산업(주)사장), 류용갑(페리관광호텔사장), 류용곤(타워호텔사장)씨 등이 있다.

류주현(소설가), 류헌열(지방법원장), 류지민(청주지검차장검사), 류근국(육군중장)씨 등도 후손이다.

(무순, 전 현직 구분 안됐음) 항렬자는 51世 본(本)○ 빈(彬)○, 52世 ○연(然) ○훈(勳), 53世 수(壽)○ 수(垂)○, 54世 ○탁(鐸) ○갑(鉀), 55世 명(溟)○ 한(瀚)○, 56世 ○동(東) ○병(秉), 57世 령(寧)○ 응(應)○, 58世 ○주(周) ○요(堯), 59世 침(針)○ 전(銓)○, 60世 ○기(沂) ○태(泰) 등이다.

주요파는 ▲시랑공파 ▲문숙공파 ▲하정공파 ▲장령공파 ▲곤산군파 ▲문평군파 ▲지후사공파 ▲좌상공파 ▲검한성공파 ▲정숙공파 ▲판사공파 ▲수사공파 ▲부윤공파 ▲충경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 충북 제천군 청풍면 황석리, 전북 남원시 수지면 초리, 전남 화순군 동면 언도리, 대구광역시 달성군 다사읍 방천리, 충북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 충남 서산시 부서면 동사리, 전남 영암군 신북면 모산리 등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610명이 있다.

인구는 2000년 현재 284,083명이다.

서울 64,704명, 부산 18,368명, 대구 13,533명, 인천 17,499명, 광주 7,839명, 대전 12,660명, 울산 4,948명, 경기 59,867명, 강원 7,874명, 충북 15,014명, 충남 15,220명, 전북 12,635명, 전남 8,220명, 경북 7,650명, 경남 16,829명, 제주 1,223명이다.

대전, 충남, 충북지역에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