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규의 한국성씨를 찾아서2 - 밀양박씨(密陽朴氏)
정복규의 한국성씨를 찾아서2 - 밀양박씨(密陽朴氏)
  • 정복규
  • 승인 2011.06.21 13: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혁거세 29세손인 경명왕 8대군 중 밀성대군이 중시조
박충훈·박경원·박두병·박병규등 해방 후 많은 인물 배출

밀양박씨는 신라 박혁거세의 29세손인 경명왕의 8대군 중 밀성대군 박언침이 중시조로 밀성대군에 봉해졌다.

밀성은 밀양의 옛 이름이다.

그래서 후손들이 밀양을 본관으로 했다.

밀양박씨는 8세손 언부(문하시중공파), 8세손 언상(도평의사공파), 8세손 언인(좌복야공파), 8세손 언양(밀직부사공파), 8세손 천익(판도공파), 8세손 을재(좌윤공파) 등 크게 6파로 나누어진다.

그 뒤 아랫대로 내려오면서 다시 여러 파로 분파되었고, 10세손 환(桓)이 영암박씨로 분적하는 등 10여개 본관으로 갈라졌다.

조선 전기의 음악가 박 연은 고구려 왕산악, 신라의 우륵과 함께 3대 악성으로 꼽힌다.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휘파람을 불면서 곡조를 연습했다.

세조 때 셋째 아들 박수우가 안평대군과 가깝다는 이유로 처형되면서 가문이 멸족 위기에 처했다.

결국 벼슬을 버리고 고향인 충북 영동으로 돌아간다.

피리의 신동으로 불리던 그는 당시 8순 고령인데도 청아하고 애절한 가락을 한마당 연주하고 이별을 고한다.

북학파의 일원으로 유명한 박제가는 박지원의 문하에서 실학을 연구했다.

1778년(정조2년) 사은사의 수행원으로 청나라에 들어가 청나라 학자들에게서 학문을 배웠다.

박제가는 정조가 죽고 신유사옥 때 개혁파의 한 사람으로 유배당한다.

그 뒤 은거하는 바람에 아무도 그의 소식을 알지 못한다.

해방 후 밀양박씨는 많은 인물을 배출한다.

박충훈씨는 미 군정 당시 약관 20대에 상공부 상역국장으로 첫발을 디딘 이후 상공부장관,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장관을, 10.26사태 이후 격변기에는 국무총리서리와 대통령 권한대행을 역임한 관계의 거물이다.

박병권씨는 5.16 직후 예편, 국방부장관을 지내다 군정 연장에 반대, 장관직을 물러난 3성 장군이다.

박경원씨 또한 창군에 참여했던 3성 장군이다.

그는 5.16 이후 세 차례의 내무부장관과 체신. 교통부장관을 역임했다.

박두병씨는 해방 후 일본인이 경영해온 기린맥주를 인수, OB맥주를 탄생시킨 장본인이다.

박병규씨는 1945년 약관 20세에 해태제과를 설립, 제과 왕국을 이룩한 식품업계의 원로다.

박흥식씨는 1931년 우리나라 백화점의 원조인 화신백화점의 사장에 오른 후 1960년대에 한국 재계를 주름잡았다.

박용학씨는 1955년 대한농산 사장에 취임한 후 1960년대 한국 면방업계를 주도했다.

박대선(전 연세대 총장), 박철웅(전 조선대 총장), 박종홍(전 서울대 대학원장), 박술음(전 외국어대 총장), 박길진(전 원광대 총장), 박기혁(전 연세대 상경대학장)씨 등은 밀양박씨 석학들이다.

박순천은 해방 후 야당의 거목으로 활동한 여장부였으며 한국 정당정치사의 산증인이었다.

박시춘(작곡가), 박용구(소설가), 박화성(여류작가), 박동진(국악인), 박종화(소설가) 등도 밀양박씨 후손이다.

조선시대 과거 급제자는 1,636명이다.

주요파는 ▲문하시중공파 ▲도평의사공파 ▲좌복사공파 ▲밀직부사공파 ▲판도공파 ▲좌윤공파 ▲사문진사공파 ▲충헌공파 ▲영동정공파 ▲밀직부원군파 ▲정국공파 ▲규정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기도 파주시 탄현면 오금리, 전남 진도군 의신면 칠전리, 경북 군위군 우보면 모산리,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리, 경북 청도군 이서면 일원, 경북 문경시 가은읍 수예리, 충북 청원군 강의면 연제리 등이다.

인구는 2000년 현재 3,031,478명이다.

서울 613,772명, 부산 283,130명, 대구 164,469명, 인천 152,254명, 광주 90,456명, 대전 82,228명, 울산 76,821명, 경기 556,387명, 강원 88,996명, 충북 82,249명, 충남 113,983명, 전북 126,687명, 전남 160,665명, 경북 178,894명, 경남 238,442명, 제주 220,45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