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부와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려면
기부와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려면
  • 탁 승 호
  • 승인 2011.02.10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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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겨울엔 이웃을 돕는 온정의 손길이 예년보다 뜸한 모양이다.

북한의 연평도 도발사건으로 사회분위기가 스산하고 불안해진 데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비리로 불우이웃을 돕는 마음들이 식어버린 탓이 아닐까 생각된다.

연말에 일부러 백화점을 찾아가 보았다.

크리스마스라 그런지 쇼핑객들로 붐비고 넘치는데 백화점 정문 앞 구세군의 자선냄비는 썰렁하고 초라해 보였다.

춥고 배고픈 불우이웃들은 따듯한 관심과 나눔의 손길이 절실할 텐데 온정의 손길이 얼어붙고 있어 ‘이러다가 기부문화 싹이 채 자라기도 전에 말라죽는 게 아닐까’하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우리나라는 영국의 자선구호재단(CAF)이 세계 153개국을 대상으로 평가한 2010년 기부지수에서 81위를 기록할 만큼 기부문화가 부실하다.

동 기부지수는 기부금 액수가 아닌 기부활동 즉 ‘돈을 기부한 적이 있나’ ‘봉사활동을 한 적이 있나’ ‘낯선 이를 도와준 적이 있나’ 에 초점을 맞춘 것이 특징인데, 우리나라의 기부비율은 경제규모(세계 12위), 웰빙지수(세계 60위)를 감안할 때 미국 및 서유럽국가들에 비하여 현저히 떨어지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작년 12월에 발표된 기부문화단체인 아름다운 재단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우리나라의 1인당 평균기부액은 18만2천원(2009년)으로 미국의 1인당 기부액수 113만원(2006년), 캐나다의 35만원(2004년)과 비교해 보면 소득수준차를 고려하더라도 상당히 낮은 편이며, 기부자의 24.2%가 정기기부자로 나타나고 있어 정기기부자가 70%에 달하는 미국과는 크게 대조를 이룬다.

실제로 우리 사회의 기부문화실태는 개인보다는 기업위주의 기부와 기부금 영수증 받기에 급급한 게 현실이며, 개인의 경우 순수한 자선기부보다는 경조사비와 종교적 헌금의 비중이 훨씬 높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의 자료(2009년 기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기부참여도는 기업(59%), 개인(23%), 사회종교단체(11%), 공공기관(7%)의 순으로 되어있어 미국의 기부자유형인 개인(83%), 재단(13%), 기업(4%)과 대비됨을 알 수 있다.

기부문화풍토가 취약한 우리사회에서 그나마 기업기부가 많은 것은 고무적이지만 이는 개인기부가 적은데 따른 구성비의 상대적 증가현상이기도 하다.

개인기부자의 면면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대부분 평범한 일반 서민들이고 재벌총수나 사회지도층 등 저명인사, 국회의원 등의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 기부단체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예를 들면 글로벌 구호단체인 월드비전에 의하면 연간 일천만원이상의 고액후원자 가운데 연예인, 기업인 등 사회 저명인사 비율은 9%인 데 반해 일반인 비율이 91%에 달한다고 한다.

잘 알려진 것처럼 미국의 경우 빌게이츠, 워런버핏, 마크 주커버그 등 억만장자들이 개인자산 기부에 앞장서 우리를 감동시키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선 기업총수들이 회사돈이 아닌 사재를 털어 기부행렬에 동참하는 사례가 거의 전무한 실정이다.

작년에 사재 331억원을 기부한 이명박 대통령과 신영균, 김장훈, 문근영, 박상민 등 일부 연예인들의 기부활동을 제외하면 사회지도층이나 저명인사들의 기부실천은 아직은 ‘먼나라 이야기’ 일뿐 기부행위의 실천은 언제나 일반서민들의 몫이라는 것이 우리사회 기부문화의 실상이다.

이를 반영하듯 OECD 30개 회원국 중 사회지도층의 기부활동 실천여부를 평가한 노블레스 오블리주 항목에서 우리나라가 꼴찌를 차지했다고 하지 않던가. 선진국 사회의 기본 덕목으로 자리 잡고 있는 노블레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는 사회지도층이 기부활동, 봉사활동, 병역의무 등 도덕적 의무를 솔선수범함으로써 국민을 통합하고 국가발전에 헌신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나라가 사회갈등을 해소하고 공정사회를 구현하려면 사회지도층과 저명인사들이 앞장서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정신으로 기부행위와 봉사활동에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

엊그제 김영삼 전 대통령이 50억상당의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한 것처럼 재벌총수들과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솔선수범해서 다양한 방법을 통해 기부실천에 앞장선다면 온 국민이 절로 동참하게 될 것이며 기부문화도 제대로 뿌리내릴 것이 분명하다.

그래서 꼭 하나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다.

필자가 살아 본 영국의 경우 유족들이 신문에 부고(訃告, Orbituary)할 때 부조금은 자선단체(고아원 및 양노원)나 교회에 기부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어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받은 적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경조사 기부액이 무려 10조원을 넘는다고 하는데 정치인과 사회지도층, 부유층들부터 솔선해서 그들이 받을 결혼축의금이나 장례조위금을 기부단체나 자선단체에 아낌없이 기부하는 모습을 보였으면 좋겠다.

그렇게 되면 우리사회 전반으로 기부를 통한 나눔의 문화가 확산되면서 사회갈등이 치유되고 국민들의 신뢰도가 높아져 우리 모두가 그렇게 염원하는 공정사회의 실현이 앞당겨질 것으로 확신한다.

이 글은 선진사회 만들기 길라잡이‘선사연’의 홈페이지(www.sunsayeon.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