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새끼 발가락 끝에 티눈이 생겼다. 발에 맞지 않은 신발을 신고 여름 내내 열심히 현장을 누빈 탓이었다.
작은 녀석이었지만, 생각보다 아픔은 컸다. 결국 나는 한 피부과에 찾아가 냉동치료를 받은 후에야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러나 홀가분한 맘으로 집에 온 나는 곧 아차 싶어 이마를 짚을 수밖에 없었다. 보험금 청구를 위한 서류를 까먹은 것이다.
보험 소비자라면 누구나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보험금 청구 서류를 발급받고 제출하는 일은 여간 성가신 게 아니다. 세부내역서부터 진료영수증, 필요한 경우 비급여소견서까지, 챙길 서류도 많아 까딱하면 또 병원에 방문하기 일쑤다. 때론 너무 소액이라 보험금을 포기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지난 8월 한국소비자원이 발표한 실손 소비자 조사에서는 응답자 중 37.5%가 보험금 청구를 포기한 경험이 있다고 밝혔다. 윤창현 전 국민의힘 의원실이 공개한 자료에서는 청구하지 않은 보험금이 2022년 2512억원, 2023년 3211억원으로 추정된다. 이 정도면 보험 소비자의 '귀차니즘' 문제가 아니지 않을까?
정부와 보험업계도 이 문제를 의식, 지난 2023년 10월 보험업법 일부 개정을 통해 이번 달 25일 실손의료보험(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서비스를 본격 시작했다.
더 이상 보험 소비자는 따로 종이 서류를 발급할 필요가 없다. 요청 한번이면 전자정보가 병원에서 보험사로 전송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좋은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 서비스는 현재 '반쪽짜리'다. 이달 24일 기준 참여 병원은 대상 의료기관 중 54.7%(4223개) 뿐이기 때문이다. 그나마 보건소를 제외하면 단 17.3%(733개)에 불과하다.
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도 이를 꼬집었다. 김재섭 국민의힘 의원은 "국민의 염원을 담아 법까지 통과됐는데 의료계 참여율이 너무 저조해 냉정한 해결 방안이 필요하다"고 일갈했다.
이에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부족한 상태로 시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지만, 병원·보험사·전자의무기록(EMR) 업체와 협의를 마쳤고 방안을 마련한 상태"라며 "연말에 참여 병원이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보험업계에서도 "처음이라 삐걱대며 시작하지만 점차 안정될 것"이라며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더 나아질 거라 해도 반쪽짜리 시행은 보험 소비자 입장에서 여전히 아쉽기만하다. 올해가 두달여 밖에 남지 않았고, 내년 10월25일이면 소규모 의원과 약국도 대상에 포함될텐데 정말 의료계 참여가 획기적으로 늘 수 있을지도 아직은 미심쩍다.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라는 기독교 성서의 유명한 구절이 있다. 부디 이 말이 실손보험 청구 전산화의 사례가 되길 바란다.
김 위원장과 업계 관계자들의 전망을 믿는 맘으로 실손보험 청구를 위한 애플리케이션(앱)인 '청구24' 의 설치를 눌러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