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정세영은 정몽구에게…정몽규는 정의선에게(?)
[데스크칼럼] 정세영은 정몽구에게…정몽규는 정의선에게(?)
  • 송창범 기자
  • 승인 2024.08.13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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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창범
 

“정의선 회장은 대한축구협회장도 맡아주세요.”
“배드민턴도 양궁처럼 시스템이 체계적으로 잘 돼 있으면 한다."

‘2024 파리올림픽’이 폐막했다. 대한민국은 역대 2번째로 많은 메달을 따내며 이목을 집중시켰고 올림픽을 뒤에서 조용히 지원해 왔던 재계 총수들이 조명을 받은 올림픽으로 남게 됐다.

대한민국은 이번 올림픽에서 최소 규모 선수 출전에도 불구하고 금메달 13개 은메달 9매 동메달 10개로 종합 8위에 올랐다. 당초 목표로 잡았던 금메달 5개의 2배 이상을 넘겼다.

국가대표 선수들과 코치진의 땀방울이 가장 컸겠지만 그 뒤에서 아낌없는 후원을 해준 재계 총수들 역할도 컸다는 평가다.

그중에서도 5개 금메달을 석권한 양궁이 가장 이목을 끌었다. 유례를 볼 수 없는 양궁 여자 단체전 10연패 달성은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이 있었다. 대한양궁협회장인 정 회장은 이번 대회를 앞두고 선수들을 위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국가대표 훈련을 돕기 위해 ‘개인 훈련용 슈팅 로봇’까지 개발해 지원하고 파리 현지에 양궁대표팀 만을 위한 훈련장을 확보하는 등 맞춤형 지원을 펼친 것은 유명하다.

양궁 3관왕 임시현 선수는 정의선 회장에게 직접 금메달을 걸어주기도 했다. 임 선수는 “정의선 회장님이 많은 지원을 해주셨기 때문에 좋은 환경에서 결과를 만들어 낼수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정 회장은 파리 현지 인터뷰에서 “지금의 협회 시스템을 구축한 선대 회장님들의 노력이 빛을 발했다”고 전했다. 실제 현대차그룹은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 정몽구 현대차그룹 명예회장, 정의선 회장까지 3대에 걸쳐 약 40년간 양궁협회를 후원하고 있다. 국내 단일 종목 스포츠 단체 중 최장기 후원 기록이다. 그간 현대차그룹이 후원한 액수만 500억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양궁에 정의선 회장이 있다면 사격과 펜싱에는 각각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있었다.

사격은 이번에 깜짝 금메달을 3개나 따내며 역대 최다 메달을 획득했다. 한화그룹이 오랫동안 후원해온 게 역시 빛을 발했다는 평가다. 한화는 지난해 11월까지 20년 넘게 사격을 후원하며 발전기금만 200억원 넘게 내놓았다. 김승연 회장은 2001년 한화갤러리아 사격단을 만들었고 2002년 대한사격연맹 회장사를 맡아 지난해까지 지원했다.

금메달 2개 은메달 1개를 따내며 효자종목이 된 펜싱 역시 뒤에 SK가 있었다. SK 주력 계열사 SK텔레콤은 2003년 대한펜싱협회 회장사를 맡아 20년간 총 300억원을 지원했다. 특히 현재 대한펜싱협회 회장이 최태원 회장의 사촌인 최신원 전 SK네트웍스 회장이다.

이로 인해 이번 올림픽을 통해 ‘활=현대차, 총=한화, 칼=SK’란 공식이 만들어졌다.

이런 기쁨 속에서도 답답한 건 한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 ‘축구’다. 축구는 국가대표 황금세대 멤버를 구축하고도 파리올림픽행 티켓을 따내지 못했다. 축구 뒤에도 역시 재계 총수는 있었다. HDC그룹 회장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비인기종목을 후원하는 다른 총수들과 비교가 될 수밖에 없었다.

축구 10회 연속 올림픽 출전 꿈이 좌절된 상황. 정몽규 회장은 여론 분위기와 시기에 맞지 않게 ‘자신의 축구인생 30년을 담은 회고록’을 냈다. 심지어 그룹사를 통해 보도자료까지 배포했다. 이에 더해 정몽규 회장은 축구는 가지 못한 파리에 홀로 가서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까지 만났다.

물론 향후 축구 저변확대를 위해 필요한 일일 수 있다. 하지만 여론을 생각해야 했다. 정몽규 회장은 2021년 축구협회장 3연임 성공 후 각종 논란에 시달리고 있는 상태다. 이와 함께 사업 쪽에서도 HDC가 2022년 광주 화정 아이파크 붕괴사고를 내 악재가 계속되고 있다.

반면 5촌 조카로 같은 범현대가의 정의선 회장은 스포츠 후원은 물론 사업쪽에서도 현대차그룹을 글로벌 3위까지 올리며 저력을 보여주고 있다.

오래전으로 거슬로 올라가면, 아버지 고 정세영 명예회장은 형 고 정주영 명예회장의 장남 정몽구 명예회장에게 현대차를 넘겨야만 했다. 30여년이 훌쩍 지난 지금은 아들 정몽규 회장이 자칫 여론에 밀려 축구협회장 자리를 정몽구 명예회장의 아들 정의선 회장에게 넘겨야할 지도 모른다. 겸손 리더십과 자만 리더십 차이의 결과다.

[신아일보] 송창범 기자

kja33@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