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달청 'LH 설계공모' 뜻밖의 장점에도 심사 비리 걱정 여전
조달청 'LH 설계공모' 뜻밖의 장점에도 심사 비리 걱정 여전
  • 천동환 기자
  • 승인 2024.08.04 1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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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고·선정·계약 과정 대체로 원활…지체 않고 다음 단계로
심사위원 선택 수 관계없이 합산 점수로 최종 당선 결정
건축업계 "점수 몰아주기·폭탄 가능한 구조…개선 필요"
지난 4월1일 조달청이 LH 공동주택 설계공모 공고·심사·업무를 맡으면서 시행한 공공주택 입찰·심사 제도 개선 내용. (자료=조달청)
지난 4월1일 조달청이 LH 공동주택 설계공모 공고·심사·업무를 맡으면서 시행한 공공주택 입찰·심사 제도 개선 내용. (자료=조달청)

조달청이 LH 공동주택 설계공모를 심사하면서 공모 공고부터 업체 선정, 계약에 이르는 절차가 빨라졌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나온다. LH가 직접 심사했을 때와 비교해 특별히 불편한 점이 없다는 게 건축설계업계의 일반적인 의견이다. 하지만 조달청의 결선 채점 방식에 대해선 적잖은 우려가 있다. 심사위원 개개인 점수 영향력이 큰 만큼 LH 때보다도 비리 개입 가능성이 높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 4월부터 나라장터로

4일 조달청 주간평가동향에 따르면 조달청은 6일 정부대전청사 3동 1층 공공주택 심사마당에서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의뢰한 '괴산미니 A3블록 공동주택 설계용역' 응모 작품을 심사한다. 추정 설계용역비 약 21억8600만원 규모 공모 사업에 대한 심사다.

조달청은 LH 공공주택사업 이권 카르텔 해소 목적으로 지난 4월1일자로 LH 공공주택 설계·시공·감리업체 선정·계약 업무를 LH로부터 이관받았다. 정부는 지난해 LH 아파트 철근 누락 사태 후 LH 혁신 방안을 마련했는데 LH의 권한이 과도하다고 보고 공공주택 관련 일부 업무를 조달청에 넘겼다.

조달청 공공주택계약팀 관계자는 "4월1일 이후 신규로 공고를 내야 하는 건이 있으면 조달청을 통해서 한다"며 "계약 체결 통보까지 조달청이 하는데 다른 사업과 동일하게 계약서에 조달청장 이름을 넣지만 계약 체결 후에는 LH가 계약 당사자가 된다"고 설명했다.

국가종합전자조달시스템 '나라장터'에 따르면 조달청은 지난 4월16일 '하남교산 S-4블록'을 시작으로 지난달 16일 '행정중심복합도시 5-2생활권 L3, UR2블록'과 '부천대장 A-15블록'까지 총 13개 LH 공공주택 설계용역을 공고했다. 이 중 9개 용역에 대한 심사가 완료됐고 나머지는 심사를 앞두고 있다.

건축설계업계 관계자들은 조달청이 LH 대신 심사 업무를 진행하는 것일 뿐 전과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한다. 다만 조달청의 업무 특성상 긍정적인 부분과 개선할 부분 몇 가지를 언급했다.

조달청이 나라장터에 공고한 LH 공동주택 설계용역. (자료=나라장터)
조달청이 나라장터에 공고한 LH 공동주택 설계용역. (자료=나라장터)

◇ 당선작 선정 후 바로 계약

빠른 업무 처리 속도는 나아진 부분이다. 조달청은 심사를 마치고 설계 업체를 선정하면 지체하지 않고 계약 후 LH로 넘긴다. 과거 LH가 직접 심사할 때는 업체 선정 후 계약까지 수개월이 걸리기도 했다는 게 설계업계 관계자들의 얘기다.

A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LH는 계약하는 데 2개월이 더 걸리기도 했다"며 "그런데 조달청은 바로 계약해서 LH에 연결해 준다"면서 조달청의 행정 절차가 빠르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B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LH 때는) 사업승인 받고 나서 계약할 때도 있었다"고 말했다.

LH는 응모 작품을 경남 진주시 본사에서 접수했는데 조달청은 정부대전청사에서 받기 때문에 물리적 접근성이 좋아졌다는 평가와 LH가 심사 업무를 넘기면서 각종 논란에서 벗어났다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었다. 

조달청이  LH 공동주택 설계용역 업체 선정에 적용하는 심사 방식. (자료=행정중심복합도시 5-2생활권 L3, UR2블록 공동주택 설계용역의 '공공주택 제안공모 심사 및 공모안 작성지침')
조달청이 LH 공동주택 설계용역 업체 선정에 적용하는 심사 방식. (자료=행정중심복합도시 5-2생활권 L3, UR2블록 공동주택 설계용역의 '공공주택 제안공모 심사 및 공모안 작성지침')

◇ 또 다른 불공정 걱정

반면 당선 업체를 정하는 최종 심사 단계의 채점 방식을 두고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조달청으로 심사 기능을 이관한 가장 큰 이유가 공정성 강화인데 LH 때보다 오히려 불공정이 개입할 여지가 크다는 시각도 있다.

LH는 최종 경쟁 심사에서 1위 작품 점수를 그대로 두고 2위 작품에는 1위 작품 점수에서 만점의 10%를 뺀 점수를 부여하는 '강제 차등' 방식을 적용해 왔다. 이 때문에 더 많은 심사위원으로부터 더 높은 점수를 받은 업체가 당선되는 게 일반적이었다. 이 방식은 실질적으로 투표와 비슷한 효과를 냈다는 게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하지만 조달청은 결선에서 심사위원 점수를 강제 차등 없이 합산한 후 고득점자를 당선자로 정한다. 이 때문에 몇몇 심사위원이 특정 업체에 점수를 특별히 많이 주거나 경쟁 업체에 점수를 특별히 적게 주면 더 많은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고도 탈락하거나 더 적은 심사위원의 선택을 받고도 당선되는 업체가 나올 수 있다.

A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점수를 높이 주고 낮게 주고 할 수 있다는 심사위원 개인의 재량권 때문에 금품화 될 수 있다"며 "그래서 '이건 문제가 있겠다' 싶은 거다"라고 말했다.

C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LH는 선택을 많이 받은 업체가 당선될 수 있게 심사위원별 점수가 사실상 한 표 차이가 나게끔 했는데 조달청은 점수 그대로 반영되는 구조다"며 "조달청에선 선택받은 수로 보면 2등인 업체가 당선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강제 차등 점수를 적용했던 LH 공공주택 설계 공모 최종 심사. (자료=대전연축 A-1블록 공동주택 설계공모 심사표)
강제 차등 점수를 적용했던 LH 공공주택 설계공모 최종 심사. (자료=대전연축 A-1블록 공동주택 설계공모 심사표)

LH가 나름대로 최적화된 설계공모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순간 심사에서 손을 뗀 상황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다는 시각도 있다.

D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사실은 LH에서 굳이 조달청으로 (심사 기능을) 넘길 이유는 없었다"며 "지금까지 오랜 세월 LH 일을 해봤는데 굉장히 효율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cdh4508@shinailb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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