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오만하여 죽은 것이다
[기고] 오만하여 죽은 것이다
  • 신아일보
  • 승인 2024.06.16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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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탄/동국대 출강·서래사 주지
 

어떠한 고비를 만나지면 안에서 밖에서 마주치는 존재를 다 죽이면 살수가 있다. 난 살기위해서는 되도록이면 모든것을 다 죽이려고 줄기차게 분투를 하였지만, 어떤 변명이나 해명으로도 나를 합리화하거나 나를 해한 자들에게 복수의 칼날 따위를 들이밀고 싶지는 않았었다.

인생의 실패를 딛고 성공을 향한 노력도 결국 인생은 그토록 무의미했음이라는 결단에서, 이를테면 어떤 사다리를 딛고 높이 오른 뒤에 그것을 내던져 버려야 한다는 지극한 명제를 극복해야 한다는 아주 작은 깨우침을 이제서야 얻게 되었다. 

인간세계를 곧 직시해 본다면 마냥 올라 가는데에만 혈안이 되어 그토록 갈망하여 필요했던 사다리는 내려올 때에도 요긴한 것이기도 한데, 토사구팽이 늘상 일상인 아수라 같은 중생계의 싸움터일 뿐인 이 사바에서 늘 죽이고 싶었지만, 죽일 수도 없었던 권부의 한 화신이 있어, 그의 충실한 사냥개가 되어, 사냥터를 누비며 한때 그의 더러운 곳도 마구 핥으며 구차하게 살기를 염원했었다지만, 술자리나 어떤 모임에서 그네의 치부를 말하고 싶어서 안달이 난 그 어떤 사람들처럼,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 한마당이 벌어지고 복잡 미묘한 스토리에 스토리를 살붙여 흥미진진하게 리얼한 전개를 한다고 해도 도통 귀담아 들어주는 이는 없어도 저홀로 신명난 그 어떤 덜떨어진 화자는 어느덧 술잔이 오고 가고 취기가 올라 오기 시작하면 더욱 지인들의 관심을 끌기위해서 자꾸만 더 목소리 톤을 올리고 조금씩 허풍을 섞어가며 부풀어 대어 과장되게 목소리를 높이는 어제의 허망한 그 술자리에서의 그러한 부류가 있었듯,어디 인생에서의 성공이란, 남보다 더 남에게 보여주려고, 막 그런 출세를 하여 번듯한 자신의 또 다른 일면을 자랑하려는 부분도 없지는 않다는 것이 내 순 개인적인 의견이라는 것이다.

양쪽 어깨에 무겁도록 별을 붙여 달고 가슴에는 덕지덕지 훈장을 매어달은 인민무력부장도 존엄(尊嚴)이란 백두혈통 최고위의 심복중의 한명일 뿐이고 부하중의 하나이지, 존엄에게서 어느 한날은 밉보이는 날이면 하루 아침에 똥개사냥의 희생물이 되지를 않던가?

우리 사회에서 저 높디 높은 자에게 잘 보이려는 무수한 경쟁에 뛰어들지 않아 늘 주변부나 맴돌으며 한발짝 구석에서 소외되거나 떨어져 있는 잠재적으로는 실패한 인생들이여! 성공한 그네들의 그 잘난 성공스토리 이면에는 어떤 본질을 담고 있는가를 직시해보거나 관찰을해보면 모두 다 말못할 기나긴 사연을 견고하게 내포하고 있는 그 이유이다.

나도 어느 때는 순간의 모욕감을 느낀 적도 여러번 빈번했었더라, 어떤 자가 쏟아내는 빵 한조각 때문에 허기진 배를 채워주려 그 비열함을 직시하고도 적당이 눈을 감아야 할 때도 있었지만, 부딪히면 산다는게, 서로의 취약성과 찌질함을 덮으려 들거나 시덥지도 않은 양 서로가 주고 받기도 하지만서도 그안에 잦아들거나 들어나는 거부할 수 없는 어떤 욕망의 형태도 강물에 돌달린 시체 떠오르듯 불식拂拭간에 떠오른다 하더라.

모든 어떤 완벽하지 않은 인간관계에서는 약한 부분을 곧 드러내는 것이 그 관계의 실마리가 아니었을까? 처음 본 누군가와 일방적으로 알몸을 들러내는 수치스러움을 자행하지 않으려는 위선도 부려보고 할테지만, 그 어떤 예민한 주제를 던져도 흔들리지 않는 편안함으로 침착하게 미소만을 띠고 있었지만, 그자의 흉흉한연애는 과연 로맨스였는지, 불륜이었는지는 객관적인 판단에 맡겨두워질 뿐이다. 그날 이후에 나는 그를 경계하게 되었으며 그도 나를 멀리했다.

한편 가끔은 문득 이러한 생각이 들게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늘상 수많은 선택을 하고 그선택 속에서 살아온 시간들, 그 순간에 내 나름의 판단력으로 얻어진 오늘이 만나지는 것 이리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던 헛된 젊음의 한때는 지나고 나면 절대적으로 후회스러울 뿐이었다. 

누군가와 대화를 해야하는 자리에서 누구나 자신을 억지로라도 들어내야 한다며 자기포장에나 열중했던 나는 과연 인생의  승리자였었나?, 패배자 인가?, 이제까지 그렇게 나태함에 젖어 살아 온 자는 이제 어떻게 처신해야 옳았다고 항변을 할 문제가 아니다. 남의 일에 왜 그는 관심을 두어야 하며 인생의 해답은 이미 정해진 것이며 상대를 향한 에고에서 그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불운했던 그의 성장과정이며 복잡하게 얽혀있는 치열한 감정선은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휘어져 돌아가기도 하듯, 나는 나름의 방식대로 그는 그나름의 방식대로 물흐르듯이 그렇게 이제는 각자의 방식대로 흘러가지면 되는 것이다.

반드시 합류해서 흘러갈 필요가 이제는 없지 않은가? 선가(禪家)에서는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 나면 조사를 죽이고, 부모를 만나면 부모를 죽이고, 나한을 만나면 나한도 죽여버리고, 친척 권속을 만나면 친척 권속을 다 죽여버려라, 그리하여 비로소 해탈(解脫)에 이르게 하며 어떤 것에도 구속받지 않고 모든 것에서 완전히 벗어나 자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다",라고 하는데,사실 말 할 수 있는 걸 말하지 말라하니,또 말하지 못하는 걸 말하라 하니,여간 답답한 이 노릇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어떤 재미로 살라고 하는 건지, 그 어떤 말로 나 자신이나 조직을 위해 마구 쏟아내고 싶은데 나의 조동이가 하도 근질근질하여 참을수 없을 지경에 이르렀다.
내 아침마다의 면멱수도(面壁修道), 이 거대한 벽을 하루속히 허물어 통과하기 위해서 나자신에게 끊임없이 묻고 답하며 마주하고 있는 벽을 부수기 위한 뭉특한 도끼보다는 예리한 칼이 절실하게 필요한 이유이다.

그래서 최고의 강한자에게 들이밀고 그 강한 자에게는 굽힐수 밖에 없다는, 한 패배주의자의 작의적이고 나약할 뿐인 의식에서 탈피하여져 나자신의 어떤 고정된 관념에서도 벗어나려니,당분간은 답답해도 묵언(默言)중 인 것이며, 임제(臨濟)와 고승의 대화에서처럼 명징한 화두인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여야 할 처지"에 닥친 것이다. 전기도 나간 내집은 어두컴컴하건만 또 다른 불은 활활 타고 계절의 끝에서 그는 그렇게 절명(絶命)해간 것이다.

어딘가에 한 뭉치의 초가있어 이어둠밝힐 것인가?. 명치끝으로 부터 치밀어 오는 자기부정 일뿐. 그날부터 홀연히 불탄 자리에도 새싹이 돋아나고 싱그런 나무들이 자라나면 새들이 모여 기고만장(氣高萬丈)한 그의 지나간 헛된 삶을 지저귀며 아무도 없는 빈 숲을 노래하리라.

/탄탄/동국대 출강·서래사 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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