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데스크칼럼]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얻을 수 있다
  • 이종범 기자
  • 승인 2024.06.10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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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뉴스를 보면 어질어질하다. 의대교수에 이어 의협도 집단휴진을 예고하면서 의정 갈등이 언제 끝날지 모르게 이어지고 있다. 한 켠에선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내려 보내자 우리 정부가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다하고 다시 북한이 오물 풍선을 내려 보내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같은 사안으로 주장만 되풀이 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이 저절로 나온다. 왜 그들의 고집에 애먼 국민들이 걱정하고 불편을 감수해야하는지 말이다.

사안의 주체인 그들은 나름 절실하고 진중하겠지만 양보없이 주장만 하는 과정을 보는 입장에서는 아이들 싸움 같이 유치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공감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다. 18세기 애담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이라는 책을 통해 인간은 타인의 처지에서 보는 능력이 타고났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것을 "상상속에서 고통받는 자와 처지를 바꾸어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많은 사람이 공감 결핍증에 걸려있는 듯하다. 공감 능력이 부족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의 상처를 준다. 

우리는 왜 공감하지 못할까. 문화 사상가이자 라이프스타일 철학자인 로먼 크르즈나릭은 그의 저서 '공감하는 능력'에서 우리가 공감하지 못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우리 앞에 공감적 상상력을 가로막는 것에는 네 가지 근본적인 사회적, 정치적 장벽이 있기 때문인데 그 장벽의 이름은 편견, 권위, 거리, 부인"이라고.

불행하게도 우리는 타인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전원을 끄듯이 꺼 버릴 수는 없다. 편견과 선입견이 우리 생각에 깊이 심어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무의식으로 편견과 선입견을 가지고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못한다.

이 때문에 우리는 편견과 선입견이 행사하는 힘을 서서히 줄여나갈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야 한다.

공감과 동감은 둘 다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에 대해 이해하거나 동의하는 것을 뜻하는 말로 언뜻비슷하게 생각되지만 미묘한 차이가 있다.

공감(Empathy)은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그 감정을 자신도 느끼는 것, 친구가 슬퍼할 때 그 친구의 슬픔을 자신의 슬픔인 것처럼 느끼는 것이다.

동감(Sympathy)은 다른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에 동의하거나 지지하는 것. 친구가 슬퍼할 때 슬픔을 이해하고 위로하지만 그 슬픔을 자신의 감정처럼 느끼지는 않는 것이다. 

또 '동조'하면서 '공감'한다고 말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공감'과 '동조'가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것은 같으나, 상대방의 감성에 매몰되는 '동조'와는 다르게 '공감'은 상대의 감성을 포용하지만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다.

예전에 시의회 의장과 술자리를 한 적이 있다. 그 자리에서 의장에게 “정치하실 때 꼭 공감을 기억해 달라”고 당부한 얘기가 기억난다. 

상대방을 이해할 생각도 없이 맞장구 쳐주는 건 동조지 공감이 아닐 것이다. 동감은 듣는 것만으로도 상대의 마음을 얻고 이야기를 풀어갈 수 있다. 

편견과 권위, 그리고 거리, 부인을 걷어내고 상대방에게 관심을 가진다면 어떠한 대립에서든 해결책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이종범 스마트미디어부장

baramssun@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