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위' 신세계L&B 송현석, K위스키 사업 접고 본업 집중…마케팅 강화
'상장 1호' 나라셀라 마승철 회장, 위스키·전통소주 포트폴리오 확장
국내 와인시장이 쪼그라들고 있다. 코로나19를 거쳐 경기침체, 혼술 감소와 함께 주류 트렌드를 주도하는 MZ세대가 위스키, 전통주에 관심이 쏠린 탓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2010년대 초반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이 국내에서 큰 인기를 끈 이후 꾸준한 성장을 보였던 와인시장이다. 하지만 10여년 만에 시장 상황은 바뀌면서 와인업계의 고민이 크다. 국내 와인사(社) 1위 ‘신세계L&B(엘앤비)’와 업계 상장 1호 ‘나라셀라’는 시장 정체 속 한 쪽은 본업 집중, 다른 한 쪽은 외연 확장이라는 각기 다른 카드를 꺼냈다.
9일 와인업계에 따르면, 신세계L&B와 나라셀라 모두 작년 실적은 부진했다. 신세계L&B의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액은 전년보다 13% 줄어든 1806억원에 그쳤다. 2021~2022년 2년 연속 연매출 2000억원대를 기록했으나 다시 1000억원대로 주저앉았다. 영업이익은 7억원으로 전년 116억원 대비 94%가량 급감했고 53억원의 순손실을 냈다. 이마트가 지분 100%를 보유한 신세계L&B는 한 때 알짜 계열사로 분류됐으나 지금은 ‘아픈 손가락’으로 전락한 상황이다.
지난해 와인 상장사 1호 타이틀을 거머쥔 나라셀라 역시 비슷한 처지다. 이 회사의 2023년 매출액은 853억원, 영업이익은 약 2억원으로 전년보다 각각 20.4%, 98.4% 급감했다. 나라셀라는 상장 당시 작년 매출액을 전년보다 16% 높인 1200억원 이상을 기대했지만 역성장하면서 체면을 구겼다.
두 회사의 실적 부진은 침체된 국내 와인시장과 연관이 깊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와인 수입량은 5만6542t으로 2022년 7만1020t과 비교해 20%가량 줄었다. 2021년 7만6575t으로 정점을 찍은 후 감소세가 이어졌다. 수입액 또한 2021년 5억5981만달러(약 7579억원), 2022년 5억8128만달러(7869억원)에서 지난해 5억602만달러(6852억원)로 줄었다. 와인업계는 올해도 경기침체 우려가 높은 만큼 시장규모는 작년과 비슷할 것으로 예측한다.
◇마케팅通 송현석, 브랜드 큐레이션팀 등 조직 재정비
신세계L&B를 이끄는 이는 송현석 대표다. 작년 9월 신세계그룹 임원인사 때 발탁됐다. 송 대표는 신세계푸드 대표도 맡으면서 그룹 주요 식음료 사업을 전담하고 있다. 송 대표는 ‘마케팅통(通)’으로 알려졌다. 2018년 신세계푸드 마케팅담당 상무로 오면서 그룹과 인연을 맺기 전까지 CJ, AOL-타임워너 워너뮤직, 맥도날드, 피자헛, 오비맥주 등 국내외 대형 소비재 기업들의 마케팅 노하우를 쌓아온 전문가다.
신세계L&B는 올해 와인 본업에 집중하겠다고 선언했다. 특히 마케팅에 방점을 찍었다. ‘로버트 몬다비’ 등 주력 와인을 중심으로 브랜드 마케팅에 주력하는 한편 오프라인 매장 ‘와인앤모어(WINE&MORE)’를 주류 전문 소매점에서 프리미엄 주류 라이프스타일 브랜드로 육성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송 대표는 본업 경쟁력 강화 차원에서 ‘브랜드 큐레이션팀’을 신설하고 외부에서 마케팅 전문가를 영입해 조직을 재정비했다. 이에 따라 업계 1위 와인 포트폴리오와 신세계L&B만의 큐레이션 노하우를 더해 차별화된 제품을 선보이고 신세계백화점 등 계열사 협업으로 프리미엄 와인 카테고리를 강화한다. 와인앤모어의 경우 특색 있는 콘셉트의 점포 리뉴얼과 소비자 접점을 높일 수 있는 브랜드와 컬래버레이션으로 소비자에게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신세계L&B는 늘어난 위스키 수요에 대응해 K위스키 개발을 위한 전담 조직 ‘W비즈니스팀’을 꾸렸으나 작년 말 해체했다. 본업에 집중하기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신세계L&B 관계자는 “엔데믹으로 와인 수입시장이 축소되고 K위스키 사업을 재검토하면서 일부 영향을 받았지만 와인 등 기존 사업은 원활히 진행되고 있다”며 “본업에 집중해 수익성을 개선하고 국내 1위 와인 수입사로서 입지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재무通 마승철, 외연 넓혀 와인 의존도 낮추기
마승철 회장이 경영하는 나라셀라는 신세계L&B와 다른 행보로 지금의 위기를 타개하겠다는 구상이다. 마 회장은 글로벌 주류기업 디아지오코리아 CFO(최고재무책임자) 등을 역임한 인물로 지난 2015년 12월 나라셀라를 인수한지 약 7년 7개월 만에 코스닥에 상장시켰다. 나라셀라는 상장 당시 공모자금을 종자돈 삼아 와인 제품 및 판매채널 확대, ‘와인픽스’ 등 자체 리테일숍 강화, 와인복합문화공간 조성 등에 역량을 집중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마 회장은 이를 토대로 7년 내 시총 1조원 기업으로 거듭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나라셀라는 상장과 함께 ‘2025년 연매출 2500억원, 영업이익 250억원 달성’이라는 목표를 세웠다. 다만 작년 실적과 비교하면 마 회장 입장에선 2년 만에 매출은 3배 이상, 영업이익은 125배 달성해야 하는 부담이 클 수밖에 없다. 최근 위스키 사업을 키우고 전통소주 개발 및 생산에 나선 건 외연을 확장해 와인에 치중된 사업 포트폴리오 다변화와 함께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풀이된다.
나라셀라는 지난해 말 독립법인 나라스피릿 위스키 사업을 편입한데 이어 미국프로농구(NBA) 최고 스타 스테판 커리를 앞세운 나파밸리의 프리미엄 버번위스키 ‘젠틀맨스 컷’을 독점 수입했다. 또 전통 증류식 소주 자체 개발 및 생산을 목표로 동탄에 소주 제조 파일럿 시설을 완공하고 관련 인력을 채용했다. 시제품 생산도 마쳤다. 지난달 정기주주총회에선 사업 목적에 ‘주류 제조업’을 추가했다. 전통소주 생산을 본격화하면 국내 판매는 물론 수출도 검토하고 있다.
나라셀라는 단순히 주류 수입사에 그치지 않고 외연 확장으로 기업 가치를 높이겠다는 복안이다. 마 회장은 “해외에서도 통하는 전통소주 제조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며 “중장기 목표인 수입·유통·제조까지 아우르는 종합주류기업으로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신아일보] 박성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