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다 KTX 때문이다
[기자수첩] 다 KTX 때문이다
  • 남정호 기자
  • 승인 2024.04.02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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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동쪽 바다에서 나고 자랐다. 험준한 태백산맥 탓에 철도와는 거리가 먼 삶이었다. 무궁화호를 타고 태백, 제천을 지나 청량리역까지 5시간여가 걸리는 여정은 발을 떼기 쉽지 않았다. 

서울과 부산을 3시간 내로 달린다던 KTX도 10년 넘게 남의 얘기였다.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이 아니었다면 아직도 철도와 큰 상관 없는 삶이었을 테다.

어느덧 경강선이 개통한 지도 7년이 지났다. 그사이 태어난 아이에게 '파란 KTX'(KTX-이음)는 '꼬꼬 할아버지·할머니 집'에 갈 때 타는 당연한 교통수단이다. 차 타고 가면서 먹었던 휴게소 음식보다 서울역이나 청량리역에서 즐기는 역사 내 먹거리를 더 찾는다. 산과 터널을 지나 잠시 귀가 먹먹해진 뒤 왼쪽 차창으로 동해 바다가 보일 때면 탄성을 내며 창가에 매달린다. 

매년 두 번씩 하는 명절 티켓팅은 우리 가족의 가장 중요한 연례 일정 중 하나가 됐다. 실패하면 하루 종일 코레일톡 앱을 새로고침하며 빈자리 찾기에 매달린다. 출근한 아내는 아침부터 예약 상황을 묻는다. 어린이집에 다녀온 아이도 재차 예약이 잘 됐는지 확인한다. 먼 길 다녀와서 피곤하다는 핑계도 입 밖으로 잘 나오지 않는다. 다 KTX 때문이다.

이처럼 KTX는 지난 20년간 한국인들의 일상을 바꿨다. 속도 혁명으로 주요 도시를 반나절이면 오갈 수 있게 되면서 심리적 거리가 줄었다. 이에 따라 오송역과 광명역 등 KTX 역 주변은 허허벌판에서 도시가 되기도 하고 강릉 등 주요 관광지는 사람들이 몰리며 새 도약기를 맞기도 한다.

전국 구석구석을 더 빠르고 안전하게 연결하기 위한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 인천·수원발 KTX, 춘천-속초 동서 고속철도 등 전국 각지에서 고속철도 노선 공사가 한창이다. 시속 370km로 달리며 더 많은 승객을 실어 나를 차세대 고속철도 차량도 개발 중이다. 서울-부산을 2시간 내로 오갈 수 있는 날이 그리 멀지 않았다. 

현재 포화 상태인 평택-오송 구간도 오는 2028년 말 2복선화 사업이 마무리되면 선로 용량이 두 배로 늘어난다. 이 구간을 지나는 경부고속선과 호남고속선 등에서 고속열차 운행을 크게 늘릴 수 있게 돼 더 편리하게 KTX 등 고속철도를 이용할 수 있게 된다.

올해 스무 살을 맞은 KTX가 앞으로 양적·질적 성장을 거듭해 더 많은 국민의 마음을 잇고 일상을 함께하는 '국민의 발'로 계속 자리매김하길 기대한다.

참, 이제 아이는 2시간쯤 차를 타면 언제 도착하느냐고, 아직 멀었냐고 묻기 시작한다. 다 KTX 때문이다.

south@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