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꽁이 타령
맹꽁이 타령
  • 홍 승 표
  • 승인 2010.07.15 15: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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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방이라도 한바탕 소나기가 쏟아질 듯 검은 구름이 낮게 드리운 저녁, 공릉천을 걸었습니다.

아내와 함께 소화도 시키고 운동도 할 겸 나선 것이지요. 유난히 맹꽁이 소리가 요란했습니다.

공릉천을 한 바퀴 돌고 시민농장을 지날 때였습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 세 명이 맨발로 도랑으로 들어가더군요. 오리를 잡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아마도 맹꽁이 소리가 오리 우는 소리로 들렸던 모양입니다.

“얘들아! 그건 오리가 아니고 맹꽁이야. 괜한 고생 하지 말고 나와라.” “아저씨는 무슨 맹꽁이라 그러세요. 오리가 맞아요.” 아이들이 한심하다는 듯 저에게 말하더군요. 아이들은 오리라는 확신을 가진 듯했습니다.

아니 맹꽁이 자체를 모를 거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니래도….” “여보! 왜 그래요. 애들과 똑같이….” 아내의 면박을 듣고 나서 돌아서며 속으로 중얼거렸습니다.

‘그래 그냥 지나치면 될 걸, 왜 맹꽁이같이 아이들 일을 참견해 뭔 망신이니 이 바보야!….’ 모처럼 맹꽁이 소리를 들으니 반가운 마음이 든 것도 사실입니다.

그래서 저도 모르게 애들과 말다툼을 벌이는 맹꽁이 같은 짓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맹꽁이는 느리고 굼떠서 행동이 느리거나 눈치 없는 사람을 놀리거나 핀잔을 줄 때 인용되기도 하지요. 사실 맹꽁이를 보면 움직이는 것도 느리고 뒤뚱뒤뚱 하는 모양이 답답하기 그지없습니다.

생긴 것도 다소 징그러워 가까이 하기는 부담스러운 것이 사실이지요. 제가 어릴 때만 해도 맹꽁이가 많았습니다.

맹꽁이들이 목 터져라 외쳐대면 틀림없이 비가 왔습니다.

방송국 일기예보보다 더 정확했지요. 비가 오는 날, 맹꽁이들이 떼를 지어 울어대면 가뜩이나 우중충한 마음이 더욱 심란해지곤 했습니다.

요즘엔 맹꽁이들의 서식처가 많이 사라지고 농약으로 인해 맹꽁이를 만나보기가 어려워졌습니다.

맹꽁이가 멸종위기 2급으로 지정된 것이 이를 잘 말해줍니다.

그런데 최근 저의 고향마을에 5,000마리가 넘는 맹꽁이 서식처가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팔당대교와 미사리 조정경기장 사이 한강변으로 생태 환경이 좋은 곳이지요. 환경단체에서 3년 간 모니터링을 해서 얻은 결과라니 확실할 것이라는 믿음을 갖게 됩니다.

이곳에서 맹꽁이들이 한꺼번에 울어대면 백만 관중이 함성을 지르는 것 같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최대의 맹꽁이 서식처인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렇다면 이제는 환경부 보호종으로 지정된 맹꽁이 집단 서식처가 훼손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지요. 그것도 일시적인 보호책이 아니라 영구적이고 실제적인 대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집단 서식처를 방치하여 맹꽁이가 몽땅 사라지게 하는 맹꽁이 같은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소망해 봅니다.

맹꽁이만 귀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도 영악해져서 맹꽁이 같이 어수룩한 사람은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지요. 이런 약아빠진 사람들이 판치는 세상에 살면서도 가끔 맹꽁이 같은 일을 저지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면 저 스스로를 자책하고 때로 회한에 빠져들기도 합니다.

그런데 나이를 먹다보니 이제는 맹꽁이 같은 일도 주변 사람들에게 웃음을 줄 수 있어 좋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할 때가 있지요. 그때 마다 어릴 적 즐겨보던 <맹꽁이서당>이라는 만화가 떠오릅니다.

간결한 그림으로 조선시대 학동들에게 역사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해학적으로 그려낸 만화지요. 맹꽁이서당에는 사고뭉치도 있지만 잔꾀가 많은 학동도 등장합니다.

그들이 벌이는 장난질은 대개 황당하지만 제법 그럴듯한 기지와 풍자와 유머가 번득이지요. 때론 배꼽이 빠질 만큼 재미와 해학이 담겨있는 그런 책입니다.

학동들은 서당 안팎에서 온갖 말썽을 피우는데 토끼나 노루 사냥은 물론 절에 몰려가 구걸을 하기도 합니다.

때론 호랑이가 등장하는데 학동들에게 멱살도 잡히고 꼬리가 잘리는 등 친근하지만 다소 맹한 캐릭터로 그려지고 있지요. 그러나 이 만화의 핵심은 딱딱한 역사적 사실들을 재미있게 그려내고 흥미를 더해 준다는 데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맹꽁이 서당에는 맹꽁이 같은 일뿐만 아니라 세상에 대한 풍자와 해학, 그리고 역사의식과 철학이 담겨있다는 사실입니다.

맹꽁이서당 학동들이 사랑스러운 것은 나름대로의 삶을 통해 세상일을 해학으로 풀어 사람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는데 있지요. 저의 맹꽁이 같은 행동도 그러할 것이라고 믿으며 살아가는 오늘이 그저 행복하기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