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우리는 왜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가
[기자수첩] 우리는 왜 그들의 얼굴을 볼 수 없는가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3.06.06 08: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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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토라인 앞에 선 ‘또래 살인’ 피의자 정유정은 마스크와 모자로 얼굴을 모두 가렸다. 정유정은 과외앱으로 또래 여성을 유인해 잔인하게 살해하고 시신을 유기한 혐의로 신상 공개가 결정됐지만 우리가 볼 수 있었던 건 모자 아래로 드러난 머리카락 정도가 전부였다.

물론 신상 공개 결정과 함께 증명사진이 공개되기는 했다. 문제는 지금까지 신상 공개 사례를 통해 보면 공개된 증명사진과 현재 모습은 괴리가 크다는 점이다. 신상 공개 제도의 실효성에 또다시 의문이 제기되는 이유다.

앞서 전 남편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고유정 역시 검찰 송치 당시 긴머리로 얼굴을 가렸다. 택시 기사와 동거녀를 살해한 이기영도 사진이 공개됐지만 실물과 달랐고 검찰 송치 당시 마스크로 얼굴을 가려 논란이 됐다.

신상정보 공개 제도는 잔인하고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흉악범의 이름과 얼굴 등을 공개해 유사 범행을 막고 재범 위험성을 낮추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 피해자의 유족에게는 범죄자가 국민들 앞에 얼굴을 드러내고 공개적으로 비난을 받는 순간이 조금이나마 억울함을 풀 수 있는 시간이다.

하지만 피의자들 대부분은 구속 전 피의자심문과 송치 등을 위해 이송할 때 모자나 마스크 등으로 얼굴을 가린다. 경찰 내부 지침상 경찰관 등도 피의자들이 얼굴을 가리는 행위를 제지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피의자의 인권을 위한 규정이 공공의 이익을 위한 신상공개 제도를 형해화시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때문에 머그샷 공개 관련 규정도 손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머그샷은 범인을 구금하는 과정에서 촬영하는 얼굴 사진을 의미하는 데 피의자 동의가 있을 경우 해당 사진을 신상 공개 시 사용할 수 있다.

머그샷 공개가 활성화된다면 증명사진과 실제 모습의 괴리에서 오는 실효성 논란을 잠재울 수 있다. 하지만 대다수의 피의자들이 머그샷을 동의하지 않는다. 택시기사를 살해한 이기영 역시 머그샷 촬영을 거부한 바 있다.

신상공개 실효성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제도적으로 호송 시 피의자들이 얼굴을 가리지 못하게 하거나 머그샷을 적극적으로 공개하는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피의자의 인권, 물론 중요하다. 하지만 얼굴 공개 결정은 피의자가 그 죄를 범했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있을 때 결정된다는 점을 고려하면 공익에 좀 더 무게를 둔 실효성 제고 방안이 필요하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