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소통부재에 멈춘 ‘근로 개편안’
[기자수첩] 소통부재에 멈춘 ‘근로 개편안’
  • 권나연 기자
  • 승인 2023.03.16 1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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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최대 69시간 근무가 가능한 ‘근로제도 개편’이 MZ 세대를 필두로 한 노동계의 반발에 부딪히면서 표류하고 있다. 노동자들은 개편안이 장기근무를 유발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부의 입장은 다르다. 노동부는 개편안이 근로시간 유연성을 부여해 ‘주 52시간제’에서 발생하는 업무 비효율을 개선하고 노동자의 충분한 휴식권을 보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근로시간저축계좌제’ 도입도 약속했다. 이 제도는 연장근로를 휴가로 적립한 뒤 기존 연차휴가와 합쳐 장기 휴가를 쓸 수 있도록 한다.

개편안이 발표되자 중소기업계와 노동계의 반응이 극명하게 엇갈렸다. 중소기업계는 연장근로 단위기간 선택지가 넓어지면 업종 특성과 현장 상황에 맞는 근로시간 활용이 가능해져 납기준수와 구인난 등의 경영애로가 해소될 것으로 기대했다.

노동계는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악용될 가능성을 제기했다. 연장 노동만 제공하고 휴가는커녕 수당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사례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개정안에서 임금 지급을 ‘갈음’해 휴가를 줄 수 있다고 한 부분이 문제가 됐다. 현행 근로기준법에 따르면 연장·야간·휴일 근로는 통상임금의 50%를 가산해 지급하도록 하고 있는데 근로시간저축계좌제가 사용자에게 연장근로 수당에 대한 부담을 없애준다는 주장이다.

사용자는 일을 시킬 때는 ‘휴가’를 이유로 수당을 지급하지 않고, 막상 휴가를 요구할 경우 ‘회사 사정’을 이유로 휴가 사용 자제를 요구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노동계의 반발이 이어지자 윤석열 대통령은 제도 보완 검토를 지시했다. 몰아서 쉬는 것이 가능해져 청년층이 해당 정책을 선호한다는 정부의 설명과 다르게 MZ 노조마저 개편안에 반대하자 한발 물러난 모습이다.

대통령실도 이번 개편이 ‘노동 약자의 권익 보호’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충분한 의견 수렴 후 ‘근로시간 선택권 확대’를 추진할 것을 약속했다.

문제는 정부가 근로시간 선택의 전제로 깔고 있는 ‘노사의 자유로운 협의’가 가능한가 하는 부분이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은 철저한 갑을 관계다. 고용인이 제시한 근로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근로계약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 만큼 대등한 협의가 거의 불가능하다.

실제로 직장인 10명중 3명은 자신의 연차를 쓸때조차 눈치를 본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과로’가 ‘성실함’으로 포장되는 우리 사회에서 과연 ‘장기 휴가’를 자유롭게 얘기할 수 있을까. 제도를 재검토하기로 한 만큼 노동자와 고용인의 이익이 잘 조율된 개편안이 나오길 기대한다.

kny0621@shinailb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