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TF' 발족…상반기 내 '손질'
중대재해처벌법이 1월27일 시행 1년을 맞았다. 기업 오너, 대표들이 산업현장 안전에 신경을 쓰는 계기가 됐지만 사고 발생 건수는 크게 줄지 않았다. 그럼에도 대기업들의 기소사례는 아직 없다. 반면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기소된 최고경영자(CEO) 대부분은 중견·중소기업이다. <신아일보>는 중대재해법 시행 1년을 맞아 현 상황을 짚어보고 개선 방안을 제시한다. 세 번째 시간은 ‘보완책 마련’이다.<편집자주>
<글 싣는 순서>
① 사고는?- 되려 늘어난 중대재해, 처벌은 없다
② 중기는?- 대응력 없어 ‘난감’...우리만 ‘쩔쩔’
③ 개선은?- 경영계, 법률 개정 목소리 높인다
1년새 중대재해처벌법(중대재해법) 개정 목소리가 더 커졌다. 실제 재해 예방효과는 미미하고 ‘CEO 처벌법’에 그친다는 평가 때문이다. 경영계는 예방보다 처벌에 무게를 둔 모호한 법 조항을 개정하고 보완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2일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에 따르면, 2022년 12월까지 중대재해법 위반으로 피의자(경영책임자) 입건(82건) 및 기소(11건)된 대상은 모두 대표이사다.
노동청과 검찰은 최고안전보건책임자(CSO)를 선임한 기업에서 중대재해사고가 발생한 경우 CSO를 경영책임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경영계는 “중대재해법은 최고경영자(CEO)를 겨냥한 처벌법”이라고 비판했다.
경총은 ‘사업 대표’와 ‘이에 준하는 자’ 중 경영책임자로서 안전에 관한 권한과 책임을 지고 의무를 이행한 이를 특정하기 어렵다고 분석했다. 이들은 “법률상 경영책임자 개념과 범위가 불명확한 상황에서 수사기관이 형사처벌의 대상을 자의적으로 판단·해석해 나타나는 현상”이라며 “이는 법 제정 당시 경영계가 끊임없이 문제제기한 법률의 모호성과 형사처벌의 과도성에 따른 부작용이 현실화된 것”이라고 말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처벌 대상으로 적시된 경영책임자의 대상범위가 모호하다는 점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전경련은 중대재해에 대한 권한과 책임을 모두 위임받은 CSO를 경영 책임자 범주에 명시적으로 포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아울러 하청업체 근로자를 구체적으로 지휘·감독할 위치가 아닌 원청이 그에 대한 의무까지 지는 것은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전경련 측은 “중대재해법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형사처벌과 병과되는 이중 제재”라며 “이는 국내 법 체계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도 기업이 CSO를 선임한 경우 이를 법적 책임 주체로 인정해야 한다고 밝혔다. 기업 대표이사가 사업장 운영 관련 모든 사항을 빠짐없이 관리하는 게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대한상의는 안전보건확보의무도 명확히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부전문기관, 종사자 의견청취 등을 통해 유해·위험 요인을 확인하고 개선했다면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또 중대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보건 전담 조직·예산배정 △전담조직 구성원 권한 부여·업무 평가 △위험성 평가 실시 △종사자 의견 청취·조치 이행 △협력업체 평가 기준 마련을 제시했다.
대한상의 관계자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에도 재해 사망이 줄지 않았다”며 “재해 예방이라는 제정 취지에 맞게 입법적 보완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중소기업계도 부담을 호소했다. 중소기업중앙회에 따르면, 중소기업 77%는 중대재해 대응여력이 부족하다. 중기중앙회는 “안전에 대해 투자할 여력이 없는 중소기업이 대다수”라고 토로했다.
한국중견기업연합회는 중대재해법의 일부 법 조항이 산업 현장 혼란을 초래할 것으로 주장했다. 중견련은 지난 2021년 중대재해법 제정안 국무회의 의결 당시 “고려할 수 있는 모든 현상을 폭넓게 검토해 ‘오류투성이 급조된 법’이 아닌 ‘사회 발전에 필요하고 좋은 법’으로서 보완 작업을 서둘러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영계는 중대재해 사고 수사와 기소 장기화도 문제점으로 꼽았다. 실제 중대재해법 관련 수사는 진척이 더딘 상황이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지난해 12월까지 법 적용 대상 중 법 위반 혐의로 입건해 수사에 착수한 사건은 229건이다. 이중 수사를 마친 사건은 22.7%(52건)에 불과하다. 나머지 177건은 여전히 수사 중이다. 중대재해법 특성상 수사 범위가 광범위해 수사가 더뎌졌다는 지적이다. 경영계는 법의 모호성을 줄이고 현실적인 방면에서 법 개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이같은 허점을 인정하고 보완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부가 법령 정비에 앞장서 눈길을 모았다. 고용부는 지난 1월 전문가들로 구성된 ‘중대재해처벌법령 개선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TF는 처벌대상·수준 등 제재방식 개선, 처벌요건 명확화 등을 거쳐 올해 상반기까지 구체적인 개선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권기섭 고용부 차관은 “법 적용 사업장에서 중대재해가 줄지 않은 것이 우리가 직면한 현실”이라며 “입법 취지와 달리 중대재해법이 한계가 있는 건 아닌지 냉철하게 살펴봐야 한다”고 당부했다.